지난번에 '필스너 우르켈은 어쩌다 일본 맥주가 되었나'를 쓰고 놀라웠던 점은 대중들의 일본 맥주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혹은 생각만큼이랄까?) 지대했다는 점이다. 물론 관심이라기 보단 반감이겠지만. 하루 평균 고작 2~300명에 불과한 나의 브런치에 이틀 연속 만 명이 넘게 접속했다. 이틀 동안 다음 메인에 올라와 있었고, 그로 인해 브런치 인기글에 장기간 노출되어 있었던 탓이다. 그런데 독자들이 어떤 경로로 글을 읽게 되는지 살펴보다가 이외의 키워드를 발견했다. 브런치에는 유입 경로와 유입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심심찮게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칭다오 일본 맥주'라는 키워드이다.
생각지도 못한 유럽 맥주가 아사히 맥주이고, 특히 대중의 인기가 있었던 필스너 우르켈과 코젤에 속다 보니 '혹시 칭다오도?'라는 생각이 스며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상에는 칭다오가 일본 맥주라는 잘못된 정보도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때 아사히 맥주는 칭다오 맥주의 지분을 일부 소유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전량 매각하고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가 되었다.
칭다오 맥주가 국내에서 너무 유명하다 보니 대중들이 오해하고 있는 두 가지가 있다. 칭다오 맥주가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일 것이라는 생각과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는 설화 맥주이고 두 번째가 칭다오 맥주이다 - 설화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은 하얼빈 맥주로 1900년에 세워졌다. 반면 칭다오 맥주는 1903년에 세워졌다.
대부분의 아시아 맥주는 식민지의 슬픈 역사 속에서 출발하였다. 필리핀의 산 미겔은 스페인의 식민 역사에서, 베트남과 라오스의 맥주는 프랑스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인도네시아의 빈땅은 네덜란드의 맥주에서 출발하였다.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면 한 번도 외세에 정복당하지 않았던 태국 정도일 것이다. 칭다오는 한때 독일의 조계지였다. 조계지란 외국 열강이 관리할 수 있도록 빌려준 땅으로 외국인이 거주하거나 상업활동을 할 수 있는 지역을 말한다. 오늘날의 대사관처럼 치외법권도 인정받는 곳이다. 한마디로 칭다오는 독일의 땅이었고, 독일인들은 그곳에 맥주 공장을 세웠다. 그것이 칭다오 맥주의 시작이었다.
칭다오 맥주 Tsingtao Brewery,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맥주 양조장으로 중국 내에서는 1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도시 칭다오는 1897년 청나라가 해남 지역의 방어를 위해 작정하고 새운 요새였다. 이 과정을 일일이 지켜보고 있던 독일은 칭다오 요새를 점령하였고 청나라에 칭다오 지역을 넘겨줄 것을 요청하였다. 현대화하지 않은 방어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청나라는 독일 제국에 칭다오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칭다오를 점령한 독일인들은 그들의 전통대로 맥주를 즐겼다. 원래는 본국에서 맥주를 수입하여 마셨으나 지역의 맥주를 소비하는 그들의 전통에 따라 도시에 맥주 공장을 짓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던 중에 주변의 라오산이라는 곳에서 질 좋은 지하수가 나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 도시에 맥주 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1903년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독일과 영국의 합작 증권 회사인 앵글로-저맨 브루워리 Anglo-German Brewery가 칭다오 브루워리를 설립하였고, 독일의 설비와 원재료를 들여와 1904년 12월 처음으로 칭다오 맥주를 생산하였다.
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칭다오의 브루워리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1916년 상하이에서 열린 총회에서 독일이 가지고 있던 칭다오 브루워리의 70%의 지분을 일본의 '대일본맥주'에 넘기는 걸로 결정되었다. 대일본맥주는 지금의 아사히 맥주와 삿포로 맥주 그리고 에비스 맥주 회사가 합작한 기업으로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맥주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칭다오를 인수한 일본은 맥주 공장을 대규모로 증편하는 한편 지역에서 보리를 재배하여 수확한 보리로 맥주를 만들어 보기도 하는 등 맥주 생산량을 늘려갔다. 하지만 일본도 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항복하여 칭다오 맥주는 또다시 표류하기 시작했다. 칭다오 맥주는 잠시 동안 중국의 쯔이Tsui 가문이 소유하고 민족주의 정부가 감독하는 형태로 유지되었다. 1949년 내전 후 정권을 잡은 중화인민공화국은 칭다오 맥주의 모든 사유 재산을 금지하고 국가 소유의 기업으로 전환하였다.
칭다오 맥주는 90년대에 들어 민영화되었다. 1993년 칭다오에 있는 다른 세 개의 양조장과 합병하여 칭다오 맥주 유한 회사Tsingtao Brewery Company Limited라고 하였다. 글로벌 맥주 기업인 AB InBev는 칭다오 맥주의 지분도 26.9%나 소유하고 있었는데, AB InBev는 이 지분을 2009년 일본 아사히 맥주에 19.99%를 매각하고 남은 7%도 중국의 거물 첸 파슈 Chen Fashu에게 팔았다. 대일본맥주로 시작한 일본의 중국 맥주 시장 진출은 대일본맥주에서 분사된 아시히 맥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사히의 관여는 그리 길지 않았다. 2017년 아사히 맥주는 칭다오 지분을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일본이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관계가 악화되고 있었고, 이미 가지고 있는 유럽 브랜드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사히의 지분 19.99%는 결국 중국의 포선 그룹 Fosun Group에 팔렸다. 칭다오가 설립된 지 100여 년만에 독일과 미국, 일본을 돌고 돌아 온전히 중국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