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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Aug 07. 2019

필스너 우르켈은 어쩌다 일본 맥주가 되었나?

일본 맥주가 되어버린 유럽 맥주, 필스너 우르켈 이야기




최근 들어 본의 아니게 논란의 중심에 선 맥주가 있다. 평소 맥주에 관심 있는 삶을 살다 보니 많은 지인들이 내게 묻는다. ‘필스너 우르켈은 왜 일본 맥주냐’고. 필스너 우르켈은 체코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맥주이지만, 지금은 아사히 맥주의 지주 회사인 아사히 그룹 홀딩스가 소유하고 있다. 세계의 맥주 회사들은 최근 수 십 년 동안 어떤 산업분야보다도 극심히고 격렬한 인수 합병의 시기를 겪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오비맥주의 카스는 한국 맥주일까? 기네스는 과연 아일랜드 맥주일까? 벨기에 맥주로 유명한 스텔라 아르뚜아나 호가든, 레페는 벨기에 맥주일까?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모두 아니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맥주를 생산하는 지역은 그대로여도 그것을 소유하는 기업은 바뀌었다. 황금색의 맑고 청량한 라거의 시대를 연 필스너 우르켈도 맥주 회사 간 인수 합병의 회오리를 피하지 못했다. 필스너 우르켈의 역사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뒷면에 숨겨진 인수 합병의 역사도.


라거의 역사, 더 크게 본다면 맥주의 역사는 필스너가 발명되기 이전의 시대와 이후의 시대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스너가 발명되기 이전의 맥주는 검게 볶은 맥아의 색을 닮아 검고 어둡거나 붉었다. 밝고 엷은 황금색의 필스너가 나왔을 때 반신반의하며 마셨던 당시의 사람들은 맥주의 색만큼이나 청량한 맛에 크게 감동했다. 맥주는 입으로도 마시지만 눈으로도 마신다고 했던가? 청량한 맥주는 맥주를 담는 글라스도 투명하게 만들게 했다. 투명한 맥주 글라스가 유행하게 된 계기도 황금색 맥주가 탄생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아무튼 이 황금색 맥주는 향후 맥주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는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0가지 맥주는 모두 필스너 혹은 필스너에서 파생된 페일 라거 스타일이다.


필스너 우르켈 Pilsner Urquell. 영어식으로 읽으면 '필스너 우르켈'로 읽히지만, 독일식 발음으로는 '필스너 우어크벨'에 가깝다[forvo 발음 가이드 참조]. 독일어에서 지명에 ‘er’이 붙으면 그 지역의 사람 혹은 그 지역에서 생산된 물건을 말할 때가 많다. 독일 맥주 중에는 유독 이런 이름이 많다. 예를 들어 에딩거 Erdinger는 에딩에서 생산된 맥주, 크롬바커 Krombacher는 크롬바크에서 생산된 맥주를 말한다. 필스너는 필젠 지방에서 생산된 맥주를 뜻한다. 우르켈은 ‘원천 original’이라는 뜻의 독일어이다. 그렇다면 필스너 우르켈은 우리말로 하면 ‘원조 필젠의 맥주’ 쯤으로 해석된다.


필젠은 체코의 수도에서 서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이다. 체코의 서쪽에 독일이 있어, 독일에서도 가까운 곳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로 유명한 보헤미아가 체코이고 바로 이곳 필젠이다. 그런데 이 맥주 이름, 체코어가 아니라 독일어이다. 체코에서는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 Pilzensky Prazdroj’라고 불린다. 플젠스키는 역시 '플젠의'이라는 뜻이고 프라즈드로이는 오리지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이 맥주는 체코어보다 독일어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일까?


필스너는 원래 플젠 지방에서 생산된 맥주만을 의미하는 고유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맥주의 인기가 좋다 보니 옆 나라 독일에서 여러 브루어리들이 따라서 양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보니 필스너는 고유한 맥주 이름보다는 홉을 강조한 황금색 라거 맥주를 모두 일컫는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에 플젠 지방의 브루어리들이 독일 법원에 소송을 냈는데 판결의 결과는 필젠 지방의 필스너는 원조로 인정되지만 필스너가 너무 대중적으로 되어버려서 라거의 스타일을 나타내는 맥주의 한 종류로 쓸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체코에서는 플젠스키 프라즈드로이로 쓰지만 독일로 수출할 때는 '내가 원조야'라는 의미의 독일어를 필스너 우르켈이라고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맥주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라거 맥주는 원래 독일에서 처음 양조되었는데 체코에서 필스너가 발명된 것도 재미있다. 플젠 지방의 맥주가 원래부터 맛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1840년 이전에 이 지역에서 생산된 맥주는 따뜻한 온도에서 발효된 에일이었고, 어둡고 탁했으며, 일정한 수준의 품질이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플젠 시의회는 36개의 맥주통을 버리라고 명령했고, 시민들은 맥주를 길바닥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결국 플젠 지방의 시민들은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기로 하고 시민 양조장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라거 맥주의 원조인 독일에서 라거 맥주의 기술자인 요제프 그롤 Yosef Groll을 영입했다.

이미지 출처 : https://alchetron.com/Josef-Groll


요제프 그롤은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양조업자로 당시 제들마이어에 의해 만들어진 라거 맥주의 양조 기술을 알고 있었다. 라거 맥주는 하면 발효의 맥주로 발효를 위해서는 탱크를 섭씨 4 ~ 9도에서 식히는 것이 필요한데 그롤은 플젠의 기후가 바이에른의 기후와 유사하여 겨울철 얼음을 저장하면 일 년 내내 하면 발효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842년 그롤은 체코에서 재배되는 모라비아Moravia 맥아와 사츠Saaz 홉, 플젠의 연수 그리고 뮌헨에서 가져온 효모를 사용해 지금과 같은 필스너 타입의 맥주를 만들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처음 보는 이 황금빛 맥주를 보고 의구심이 들었지만 한번 마셔보고는 기존에 없던 청량함에 바로 열광했다. 필스너는 시대의 유행과 맞아떨어져 점점 유럽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그럼 어쩌다가 필스너 우르켈은 일본 맥주가 되었을까? 여기에는 대단히 복잡하고 치열한 글로벌 맥주 회사들의 인수 합병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주인공은 사브밀러SABMiller와 AB InBev이다. 조금 복잡할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사브밀러는 1895년에 설립한 남아프리칸 브루워리 South Africaan Brewery와 밀러 브루잉 컴퍼니 Miller Brewing Company가 합병한 회사이다. 이 회사는 1999년 필스너 우르켈의 지분을 사들여 이때부터 필스너 우르켈은 사브밀러의 소유가 되었다. 한편, AB InBev는 2015년 사브밀러를 사들여 AB InBev SA/NV가 되었는데, 이 합병은 당시 맥주 회사 1위와 2위 간의 합병으로 공룡 기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AB InBev의 인수 합병의 이력은 더욱 화려한다. 세계젹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버드와이저를 생산하는 미국의 대표 맥주 회사는 1871년에 설립한 앤하이저-부쉬 컴퍼니Anheuser-Busch Company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2008년 벨기에와 브라질의 다국적 기업인 인베브InBev에 매각됐다. 인베브 또한 스텔라 아루뚜아, 호가든 등으로 유명한 벨기에 맥주 회사 인터브류Interbrew와 브라질의 국민 맥주 브라흐마Brahma를 생산하는 앰베브Ambev가 2004년에 합병한 기업이다.


AB InBev의 인수/합병, 출처 : 위키피디아


다시 2015년 돌아가서, AB InBev가 사브밀러를 사들이면서 필스너 우르켈은 잠시 동안 AB InBev의 소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 합병으로 AB InBev는 미국에서 독과점 기업이 되어 일부 맥주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대상이 바로 필스너 우르켈을 포함한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의 동유럽 맥주였다. 2016년 AB InBev는 아시히 그룹 홀딩스에 필스너 우르켈이 포함된 동유럽 맥주를 미화 78억 달러에 팔았다. 아사히 홀딩스는 이미 국내 시장의 한계를 해외 시장으로 돌리고 있는 시점에서 서유럽의 일부 맥주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동유럽 맥주까지 소유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현재 아사히가 소유하고 있는 유럽 맥주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풀러스 fuller's

이탈리아의 페로니 Peroni

네덜란드의 그롤쉬 Grolsch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 Pilsner Urquell

코젤 Kozel

감브리너스 Gambrinus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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