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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준 Jul 26. 2022

19. 어서와 무균실은 처음이지?(1)

 무균실은 무인도였다. 해로운 균뿐만 아니라 사람,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다. 옮긴 C병원에서도 골수검사와 요추천자를 했다. B병원에서 너무 아팠던 기억 때문에 겁을 많이 먹었는데 검사해주는 젊은 의사가 나를 안심시켰다. 그 분은 골수검사를 자주하는 사람처럼 헤매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수행했다. 엎드려서 눈을 감고 있는데 따끔한 마취가 허리에 느껴졌고 굵은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와 뼈에 박혔다. 뻐근한 느낌이 몇 십 초 들었고 굵은 바늘이 다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요추천자도 전에 했던 방법과 같이 옆으로 누워 등을 새우처럼 만 후에 얇은 바늘이 척추로 들어왔다 나갔다. 두 검사를 진행하는데 15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모래주머니를 바늘이 들어왔던 자리에 댄 상태로 누워있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 말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굵은 주사바늘이 뼈에 박히는 고통보다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더 힘들 정도로 통증이 거의 없었다. 도대체 B병원 의사들은 왜 그렇게 미숙했던건지 의문이 들었다. 걱정했던 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검사를 무사히 받고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환자로서 혈액내과 병동에 입원했다. 내가 입원한 곳은 무균실이었다. 그곳에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나 만성 백혈병 환자도 있었다. 나보다 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었는데 나를 조카나 동생처럼 잘 챙겨주셨다. 나처럼 혈액수치가 안 좋거나 안 좋아질 위험이 있는 환자들이어서 병실에 보호자나 문병객이 들어올 수 없었고, 하루에 한 번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면회가 가능했다. B병원에서는 아버지가 보호자로 있으면서 말동무도 되어주셨는데, 막상 안계시니 심심하고 불안했다. 면회도 제한적이어서 친구들이 가끔 문병 와서 수다떠는 시간도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새로 입원한 C병원에 적응해야했다. 옆 베드의 환우분들과 의지하며 생활했는데, 서로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주고 누가 아프거나 이상이 있으면 의료진을 불러주기도 했다. 다들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했다. 모두들 나처럼 아픈 병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중 무균실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다른 취미를 찾았고 그것은 공부와 버킷리스트 작성이었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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