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균실은 무인도였다. 해로운 균뿐만 아니라 사람,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다. 옮긴 C병원에서도 골수검사와 요추천자를 했다. B병원에서 너무 아팠던 기억 때문에 겁을 많이 먹었는데 검사해주는 젊은 의사가 나를 안심시켰다. 그 분은 골수검사를 자주하는 사람처럼 헤매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수행했다. 엎드려서 눈을 감고 있는데 따끔한 마취가 허리에 느껴졌고 굵은 바늘이 살을 뚫고 들어와 뼈에 박혔다. 뻐근한 느낌이 몇 십 초 들었고 굵은 바늘이 다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요추천자도 전에 했던 방법과 같이 옆으로 누워 등을 새우처럼 만 후에 얇은 바늘이 척추로 들어왔다 나갔다. 두 검사를 진행하는데 15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모래주머니를 바늘이 들어왔던 자리에 댄 상태로 누워있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 말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굵은 주사바늘이 뼈에 박히는 고통보다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더 힘들 정도로 통증이 거의 없었다. 도대체 B병원 의사들은 왜 그렇게 미숙했던건지 의문이 들었다. 걱정했던 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검사를 무사히 받고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환자로서 혈액내과 병동에 입원했다. 내가 입원한 곳은 무균실이었다. 그곳에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나 만성 백혈병 환자도 있었다. 나보다 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었는데 나를 조카나 동생처럼 잘 챙겨주셨다. 나처럼 혈액수치가 안 좋거나 안 좋아질 위험이 있는 환자들이어서 병실에 보호자나 문병객이 들어올 수 없었고, 하루에 한 번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면회가 가능했다. B병원에서는 아버지가 보호자로 있으면서 말동무도 되어주셨는데, 막상 안계시니 심심하고 불안했다. 면회도 제한적이어서 친구들이 가끔 문병 와서 수다떠는 시간도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새로 입원한 C병원에 적응해야했다. 옆 베드의 환우분들과 의지하며 생활했는데, 서로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주고 누가 아프거나 이상이 있으면 의료진을 불러주기도 했다. 다들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했다. 모두들 나처럼 아픈 병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중 무균실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다른 취미를 찾았고 그것은 공부와 버킷리스트 작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