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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Mar 09. 2021

글쓰기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방식


글쓰기가
우리를
성장시키는 방식




오래도록 나는 이렇게 생각해왔다. 글쓰기를 통해 인간이 성장하는 이유는 내가 쓴 글들이 내 안에 쌓여서라고. 그 글들이 내게 영양분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글을 씀으로써 생각과 감정이 정리되면서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과 감수성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글쓰기가 나에게 부여한 이러한 영양분을 먹고 나의 내면이 자라났기에 그래서 글쓰기란 건 밥 같은 것이라고 여겨왔다.


쓸수록 글쓰기는 밥이 아니라 차와 같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밥은, 먹는 행위의 결과로써 내게 영양분을 준다. 하지만 차는, 마시는 과정 그 자체로써 내게 양분을 준다. 차는 마시고 난 결과가 아닌, 마시는 행위 그 과정이 주는 선물이어서 차를 마시는 동안 내 마음은 정돈되고 내면은 명상을 경험한다. 글쓰기라는 행위 또한 그 자체에 의미가 깃든 일이다. 책상에 홀로 가만히 앉아 노트북을 열고 고요하게 내면의 것들을 끄집어내어 활자로 옮기는 과정은 마치 차를 따르는 행위와 같아 수행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 글쓰기는 수행과도 같다. 글이 막혀서 안 써질 때 우린 인내심을 발휘하고, 그 인내심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결국 아무 글도 못썼더라도 무언가를 쓰려고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견뎌내고 고뇌하는 그 과정으로 이미 그 사람은 쓰기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어떤 글을 씀으로써 가시적으로 생겨난 글자의 합이, 그 내용이 우리 정신을 고양시키기도 하지만 글쓰기를 행하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 자체가 인간 영혼을 고양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도를 닦는 과정과 같다.


이런 이유로 쓰기는 다도와 비슷하다.


다도[ 茶道 ] : 차를 마시는 일과 관련된 여러 다사(茶事)를 통하여 심신을 닦는 행위... (중략)... 일상생활의 도를 끽다(喫茶)와 관련지어 차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정동효·윤백현·이영희, <차생활문화대전> 중)


위의 설명에서 '끽다'는 평상심(平常心)인데, 평상심은 곧 도이자 선(禪)이다. 조주는 도(道)를 묻는 제자에게 “끽다거(喫茶去)”라고 대답했다. 끽다거는 선가의 오랜 화두로 전해지고 있다. 차를 마시는 건 섭취 이상의 활동이다. 차는 정신이 마시는 음료다. 차를 마시는 풍습이 주로 선가(禪家)에 퍼져있는 건 차도의 정신과 선의 정신이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를 다선일미설(茶禪一味說)이라고 일컫는데, 다선일미 사상은 고려시대 이후 우리나라의 선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차를 우려내고 따를 때의 태도를 상상해보라. 몸짓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마음은 단 하나가 되어 정성을 다한다. 맑게 우려내며, 온도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정함을 취한다. 글쓰기는 종이 위에 글을 따르는 일이니, 어찌 도와 별개로 볼 수 있겠는가.       


“따는 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 데 그 정(精)을 다하고, 물은 진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에 이르면 다도는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 (초의, ≪동다송≫ 중)


글쓰기는 쓰는 사람 자신과의 대면이다. 그 과정에서 내면을 스스로 북돋우고 보살피므로 우리는 안으로 뿌리를 내리듯 성장한다. 그러니 무엇을 쓰든 크게 상관없다. 무엇이든 당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이, 의자에 앉아서 차분해진 마음으로 글의 차를 따른다는 사실이, 그 다도의 행위가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그러므로 글 쓰듯 살고 싶다. 도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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