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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an 26. 2021

자기만의 세계의 글쓰기



구본웅 작 '친구의 초상'(1930년대). 이상을 그린 작품이다.



조앤 롤링은 활자로 <해리포터> 시리즈를 썼지만 그것은 네모난 책보다 거대한 세계가 되었다. 글자들은 모여서 세계를 이룬다. 글을 쓰는 일은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보다 멋진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글을 쓴다.


요즘은 매일 이상의 세계에 출근도장을 찍는다. 이상의 소설 <날개>를 배우 김태리가 읽은 오디오북이 있는데, 그걸 밤낮으로 틀어놓고 들은 지 두 달 정도 됐다. 백 번은 족히 들은 것 같다. 그 오디오북을 틀면 나는 이상의 세계로 입장하는 것이다. <날개> 속의 화자가 바라보는 것을 나도 바라보고 화자가 느끼는 것을 나도 느낀다. 무기력하고 지질하고 어색한 세계. 그게 이상이라는 한 인간의 세계였고, 그것은 활자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나의 뇌리 안에서 하도 견고하게 설계되어 활자보다 현실적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선 묘한 분위기가 풍긴다. 그것은 자기만의 것이다.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하여 날마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너인듯, 네가 나인듯 대중 속의 하나가 되어 반쯤 유령으로 희미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 희미할 순 없다. 씀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요새처럼 단단해져 가는데 어떻게 물에 물 탄듯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글을 쓰는 건 자기만의 방을 갖는 일이어서 이 방은 다섯 평보다 거대한 세계가 된다. 그 방 하나를 가지지 못한 사람 천지다. 나의 세계 안에 나 하나를 놓는 일, 내가 어디에 가든 그 세계를 튀김옷처럼 두르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비밀스럽고 또한 공공연한 자부심인지 모른다. 나를 사방으로 둘러싸며 지켜주는 성령의 빛처럼 나는 내 세계 속에서 존재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순 없다. 나의 튀김옷은 타인의 불손하고 유치한 거품들로부터 나를 거뜬히 지켜낸다.


그 무엇이든 쓰는 사람. 그런 사람과 이야기하는 건 그 사람 겉을 스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안으로 입장하는 일이어서 보다 큰일이 돼버리고 만다. 그 사람의 세계를 나는 거닐 수 있다. 시간도 꽤 걸리고, 무엇보다 볼 게 많아 즐겁다. 오솔길이나 정원처럼 걸을 만한 면적을 지닌 그 세계를 유영하며 그 공기에 스며든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자기 세계의 고유한 색으로 타인을 물들이는 일이다.


씀으로써 세상의 유일한 오직 내가 된다.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건 세속적이고 허영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리라. 타인의 창작물을 흡수하여 그의 세계에 물들고 차츰차츰 나의 세계 또한 세워나가는 건 어디까지나 99도의 일이다. 나머지 1도는 씀으로써 얻어진다. 마지막 한 걸음은 오직 스스로의 움직임으로 내디뎌야 한다. 조앤 롤링의 영향을 받는 것도, 이상의 영향을 받는 것도 좋지만 나는 나로 인해 만들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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