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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2. 2019

글쓰기는 '취미'가 될 수 있을까?




A: 취미가 뭐예요?

B: 독서요.

A: 독서 말고는요?

B: 음악 감상이요.

A: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B: 안 가리고 이것저것 다 들어요.



B는 A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 B가 A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독서와 음악 감상이 설령 진짜 취미일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제3의 취미를 댔을 것이다. 저는 기어다니면서 방 닦는 게 취미예요. 우유 숨 안 쉬고 한 번에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요. 책 사놓고 하나도 안 읽고 책장에 진열해놓는 것도 무척 좋아하죠. 그밖에도 한 손으로 공중 모기잡기, 손날로 과일 내려쳐서 두 조각내기 등이 제 취미예요, 라고.


나랑 대화하기 진짜 싫었나 보다, 라는 오해를 살 만큼 독서와 음악 감상은 만인의 취미다. 음료자판기의 레츠비 같은 존재랄까. 만인의, 만인을 위한, 만인에 의한 취미다. 이런 나의 잡생각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다.


독서는 만인의 취미인데, 왜 글쓰기는 만인의 취미가 아닌 걸까?


이하 사진 출처_ Unsplash



자, 한번 잘 생각해보자. 국어시험이나 영어시험을 보면 모두 독해와 작문 파트가 있다. '읽기'와 '쓰기'는 마치 정찬우 있는 데 김태균 있고, 송은이 있는 데 김숙 있는 것과 같은 꼴이다. 그런데 왜 글쓰기는 독서에 비해서 소수의 취미이거나, 혹은 취미가 아닌 특기인 걸까 이 말이다.


모기를 잡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이 문제를 연구해본 결과,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글쓰기는 심심할 때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므로 만인의 취미가 될 수 없음.


내가 정의 내려본 취미란 '심심할 때 하는 것', 혹은 '심심하기 때문에 하는 것', 혹은 '심심할 것 같을 때 하는 것'이다. 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냥 하고 있는 것이 취미다. 그런데 글쓰기에는 항상 해야 할 이유가 따라붙었던 게 사실이다. 일기 쓰기가 겨울방학 숙제여서, 리포트 쓰기가 전공 과제여서, 어버이날 편지 쓰기가 자식의 도리여서 글을 썼다. 여기 브런치 플랫폼 위를 유영하는 사람들은 해당이 없을 수도 있겠으나, 한국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 사람들은 전혀 안 심심할 때 글을 써야만 했던, 뿌리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테다.


그럼, 제목으로 돌아가서. 과연 글쓰기는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위의 연구결과로써 도출한 조건들을 반대로 충족한다면 취미가 될 수 있을 거다.


심심할 때 쓰다. 심심하기 때문에 쓰다. 심심할 것 같아서 쓰다.




언제부턴가 나는 '취미'란 걸 꼭 만들어야만 하는 숙제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집을 자가로 사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처럼. 그래서 피아노 학원도 다녀보고, 검도도 배워보고, 기타도 배워봤다. 이 중에서 내가 심심할 때 한 건 기타뿐이다(기본만 튕긴다). 그러므로 기타 치기는 나의 취미가 맞지만 피아노와 검도는 나의 취미가 아닌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취미 찾기 노력마저도 안 하고 있다. 왜냐하면 글쓰기가 내 취미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나 취미로 글 써요, 말하면 뭔가 먹물 흘리기 좋아하는 지적 허영 가득한 사람 같아 숨겨왔는데, 내 취미는 확실히 글쓰기가 맞는 것 같다. 퇴근하고 할 게 없어 심심할 때 뭔가가 쓰고 싶어지고, 그래서 쓰기 때문이다. 집에 책장을 여럿 사놓았는데 (위에서 고백했듯) 열독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 난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것을 더 즐기고, 또한 읽는 것보다 쓰는 행위를 더 즐긴다.


쓰는 게 재밌다. 그래서 쓰고 있다.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기자 일을 하면 하루 종일 기사를 쓸 텐데, 퇴근하고 글을 또 써? 지치지 않아? 그러면 나는 이 정도로 대답할 수 있겠다. 낮에는 안 심심한데도 글을 썼으니 밤에는, 안 심심한데 글을 쓰면서 생긴 일종의 갈증을 '심심할 때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푼다고. 기사 쓰기와 에세이 쓰기는 다른 느낌이기 때문에 밤낮으로 쓰는 게 가능하다고.


나는 '취미'라고 하면 뭔가 대단히 멋있어야 하는 줄 알았다, 여태까지. 예를 들면 스쿠버 다이빙이라든지, 트래킹이라든지, 스노보드라든지, 목공예라든지, 바이올린이라든지... 그런데 취미라고 부르기엔 너무 사소하거나 거창하다고 모 아니면 도로 생각했던 글쓰기를 내 취미노라 당당히 말하고 있는 지금, 이 배경에는 어떤 계기가 있다. 문화예술 기자로 일하다 보니 가수들 인터뷰를 종종 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꽤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취미가 없는데... 음... 그냥 혼자서 곡 만드는 게 취미인 것 같아요."


이 말이 계기였다. 사실 처음엔 갸우뚱... 의아했다. 아니, 노래 만드는 게 '일'인 가수가 그걸 취미라고 말해도 되는 거야? 그 교집합이 존재 가능함? 이거 반칙 아님?... 그럼 나는 글 쓰는 게 직업이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글쓰기가 취미인 거겠네?? 라고, 농담처럼 혼잣말하고 보니...


Why not? 글쓰기가 취미가 되면 안 될 이유가 없었다. 퇴근하고 카페 가서 음료만 마시고 있기 심심해서 글을 쓰니까 그럼 내 취미는 커피 마시기랑 글쓰기 뭐 그 정도로 해둬도 문제 없어 보인다.


당신이 만약 폼나는 취미를 갖고 있지 못하거나, 진짜 독서랑 음악 감상이랑 영화 감상만이 유일한 취미라면, 브런치나 일기장 혹은 휴대폰 메모장에 매일 아무 글이나 끄적이고 "내 취미는 글쓰기"라고 공언해도 된다. 의무감 같은 건 버리고 심심할 때 쓴다는 공식만 지킨다면, 문제 없다.


나도 이 글을 그렇게 쓰고 있다. 휴대폰을 너무 오래 봤더니 눈 아프고, 책 읽기는 이상하게 안 내키고, TV는 없고, 맥주는 다 마셨고, 오늘은 라디오도 별로 안 듣고 싶고, 잠은 안 오고... 그래서 이걸 쓰고 있는 나는 이제 조금 덜 심심해져서 이만, 마무리 짓는다.


(귓속말): 더 나다워지기 위해 글을 쓴다고 지금까지 나는 말해왔지만, 쓸수록 내가 되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말해왔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모두 쓰고 난 후의 '결과'다. 그 출발점, 그러니까 내 글쓰기의 '원인'은 알고 보니 정말 별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심하다/ 심심한데 딱히 할 것이 없다/ 뭐라도 쓰면 좀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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