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저장소

몸의 지층에 담긴 기억,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보내는 연가

by 쓰임

요가원에서는 수많은 언니들과 어쩌다 한 두 명의 오빠들이 각자 특색에 따라 OO언니 혹은 OO오빠로 호명된다. 그 중 예쁜 언니는 초등학교와 이런저런 기관들에서 제주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이란성쌍둥이 손자와 손녀를 돌보며 요가하는 중간중간 숨 못쉬도록 웃긴 발언을 스스럼없이 내 뱉어 여지없이 동작을 포기하고 등을 들썩이며 자지러지게 웃게 만드는 입담이 끝내주는 제주토박이 할머니이다. 봄을 잔뜩 품은 어린 쑥을 모아 한 가득 넣은 녹빛이 영롱한 쑥송편을 기가 막히게 빚어내는 예쁜 할머니. 은행직 월급으로 14만원 받던 시절에 만난 공무원 남편(옛날엔 공무원 월급이 코딱지만치였다고)의 지갑에 만원짜리 몇 장 두둑하게 넣어주고 싶어 열심히 일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주워 들으며 그 대상이 꼭 남편이어서 인것은 아니고...왠지 철렁했다. 사심이 없이 고운 마음은 비단 남편의 몫 만은 아니고 곁에 있는 이들을 , ('이들'의 목록에는 아들, 손자, 손녀, 며느리, 우리아방(남편)에 요가원 식구들과 성당에서 봉사하러 다니며 이어지는 인연들 외에도 역시 귀동냥으로 전해듣는 그녀의 일상 속 수많을 존재들이 포함된다.) 보듬는 마음결이 보드랍고 따뜻한, 시대를 거슬러 온 유물과 같은 인물. 예쁜 언니는 요가원을 나설 때면 항상 배꼽에 손을 얹고 모두에게 '감사합니다'하며 허리를 굽히는 것을 단 하루도 잊지 않는다.


예쁜언니는 몇 주 전에 계단에서 고꾸라지며 왼쪽 무릎을 다쳤다했고, 무릎을 꿇는 요가자세들에 머무는 것이 힘들어보였다. 계속 신경이 쓰이고 시선이 닿아 혹시 침이 도움이 될까싶어 가져갔고, 흔쾌히 몸을 내어주어서 침을 놓아드렸다. 침을 꽂은 예쁜 언니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건강에 관해서라면 본인이 '맹신'이라는 이름으로 잔뜩 사랑했던 인연, 한의사 동생 생각이 흥건하다고 했다. 나 역시 '항상 의심하라', '땅으로 돌아가라'하던 그러고는 돌연히 세상을 떠난 나의 침뜸스승 돌쑥을 가슴에 묻었으므로 그 말은 타인의 이야기같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던 돌쑥은 폐병을 앓았고, 임플란트를 거부하고 남은 이로 먹을 수 있는 (스스로 이를 뽑아낸 몸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음식만) 취하겠다고 결심했으므로 가진 이가 몇개 없었다. 전국 각지로부터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침을 놓았고, '침뜸 공부에 앞서 생명에 대한 존경심을 되찾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인문학이 사람 중심주의를 넘어서기를, 환자와 의사로 만나는게 아니라 그저, 생명과 생명 ,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 길동무와 길동무로 만나는 것, 관계를 되찾아 삶을 바꾸는 것, 옷짓기나 농사짓기나 집짓기처럼 침뜸 역시 삶의 기술이고 예술이기를(<내 몸에 침뜸하기>, 돌쑥의 서문 중)' 말하고 소망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쑤시고 다니며 강의하던 그는 스스로의 몸에 소홀했다. 아니, 그보다 응당 해야 하는 일을 해서 그만치라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위급상황에서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한 평생 부르짓던 '의료자립공동체'에 기대고, 그것을 보살피며 살았던 그가 땅을 일구듯 긴 시간 일구어낸 서로를 돌보는 예술공동체인들이 사그라들어가는 그의 몸을 주무르고, 침을 꽂고, 사혈하며 꺼져가는 그의 삶에 불길을 살려내고자 후-후- 불어댔다. 온 몸으로 삶과 죽음을 받아낸 그의 마지막 문장은 '쓰벌. 이제 갈란다.' 그러고는 그는 마지막 숨을 천천히 내보내었다. 라고 현장을 지킨 이들에게 전해들었다. 부고를 받고 한달음에 찾은 육신에 담긴 그를 마지막으로 마주하며, 그의 얼굴이 평온을 담고 있었으므로 신념에 따라 산다는 것을 완고하다고 해야할지 숭고하다고 해야할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프면 응당 병원에 간다. 그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의 선택도 아니다. 그는 몸을 스스로 돌보고 싶어했다. 서로가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기를 바랬다. 그는 한 평생 몸을 담은 집에 폭삭 담겨 생의 마지막을 맞던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병원 침대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차갑다고 했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그대로 껴안는 그의 방식을 마다앉는 이들이 그의 마지막을 동행했다. 살아생전 그는 침을 놓기 시작하면 몸도 마음도 아픈이들이 찾아올텐데 그들의 발걸음 체취, 눈동자의 빛과 흔들림, 음성, 움직임을 두루 관심을 갖고 살피며 '보고 듣는 것'이 치료와 치유의 시작이라고 했다. 그것은 '청견과 같은 것이다'라고,10년도 훌쩍 흐른 지금에서야 연결해 내었다. 그의 청견에 푹 담겨본 이들은 온 마음으로 그가 아끼던 나무 아래 땅 깊숙이 그를 돌려보내는 것을 기꺼이 했다.


침쟁이 돌쑥은 용했다. 그는 100명의 침쟁이가 있다면 적어도 100가지의 침법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의 손끝이 표현하는 돌봄의 예술을 그의 것으로 한정 짓지 않았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이의 예술행위에 기뻐했다. 몸을 돌보고 마음을 살피는 것을 전문가의 영역으로 한정짓지 않고 스스로를 믿고 배우고 수행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의 침뜸강의는 기술을 전수받는 자리이기보다는 삶의 예술을 다루는 인문학수업과 같았으므로, 삶을 이루는 것들의 깊이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일과 같았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씨실과 낱실의 엮임으로 형태를 이루어 가는 것과 같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을 돌보는 마음을 담아 침으로 짓는 예술을 마다할 이유가 내게 없었다.


물론 그에게 배운 기술들도 특별하고 살벌하게 아름답다. 전문용어로 '제삽한다'하는 것은 필요한 자리에 침을 놓고 다시 찔렀다 뺐다하는 기술. 혹은 침끝이 피부아래서 빙글빙글 돌리며 '쑤시기'가 있다. 예쁜언니는 나의 침끝을 받아내는 본인의 피부 아래 조직들의 감각으로 그립던 그녀의 동생을 소환해냈다. 올해 2월 마지막 환자 진료를 보고 진료실로 돌아와 그대로 쓰러졌고, 사인은 심장마비였던 아깝고 아까운 한의사 동생은 내가 그날 손에 쥐고 간 같은 침자루를 썼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침도 예쁜언니가 아플 때마다 언니의 몸뚱이 이곳저곳을 제삽하고 쑤셨고 그러고나면 씻은 듯 아픈 몸이 나았다고 했다. 예쁜언니는 접어지지 않던 무릎을 꿇어 앉을 수 있게 되었다고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그리움을 말했다. 몸은 기억한다. 상상이상의 것들을. 겹겹이 포개진 몸의 지층에 가늠할 수 없는 용량의 기억이 담겨있다. 그녀의 무릎이 한결 편안해 진 것은 침끝이 그녀가 그립던 대상을 생생하게 건드려 보였주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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