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티없이 자라는 중입니다.

아이들이 트는 손길과 눈길을 따라걸으며.

by 쓰임

집에 널부러져 있어도 되는 수요일이지만 그대로 이불 속에 녹아버리기에는 볕이 아름다운 날 이었다. 육지로 출장가는 반려인 공항에 데려다주며 아주 오랜만에 찾은 도두봉. 두 아이들은 여전히 토끼풀밭만 만나면 주저앉아 네잎클로바를 찾는다. 하도 네잎클로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보니 거짓말처럼 운전하는 차 안에서도 잠시 정차하는 순간에 토끼풀밭만 보이면 네잎클로버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특별한 것을 찾으면 그대로 나에게 직진해온다. 거칠 것이 없다. 둘째는 여간해서는 피아노레슨을 마치고 내가 수업하고 있는 공간으로 돌아오는 길에 갖가지의 보라빛 꽃을 한 송이씩 꺽는 것을 잊지않는다. 그것을 손 바닥에 아주 살짝 쥐고 와선 수업하고 있는 내 손에 조용히 건네고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첫째는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쩌다 하나씩 찾아내는 네잎클로버를 나에게 건넨다. 물론 파도에 닳은 유리조각도 뻣뻣하게 바른 산호도 온갖 크기의 돌들도.


나는 어느 해를 지나가며 네잎클로버를 발견할 때의 환호가 가슴에 가득 차던 것을 잃고, 시시해지고, 그런 것들이 그렇다할 의미를 퇴색한 것을 대신 발견한다. 아이들이 그것들을 건네며 내 얼굴을 살피는 것은 왜 그 순간에 보이지 않고 ,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선명해지는 걸까.


다행인 것은 그렇다할 감흥 없이 받은 그것들을 나는 그저 버리는 일은 없다. 한 권의 책을 진득하게 마지막장 까지 읽는 일도 잘 없다. 동시다발적으로 이곳 저곳에 펼쳐둔 이 책 저 책에 발 길 닿는데로 손 닿는 데로 뻗어 읽는 습관이 있다. 그 때 그 때 붙잡힌 책에 아이들에게 받은 잎이나 꽃 한 송이를 끼워두고선 결국 그것이 어디 있는지도 잊고 있다가 어느날 문득 펼쳐진 책장 앞에 팔랑- 떨어지는 물기를 잃은 그들을 손에 놓고 아- 하는 때가 되어서야 엄마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색을 보고싶은 아이들의 눈망울이 반짝거리는 것이다. 듬뿍 웃어줄걸. 하는 빛이 바래버린 시간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도 같이.


아아 예쁜 아이들. 아이들이 어여쁜 것이 더 이상 내가 나의 부모를 어떻게 사랑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로서는 상상조차할 수 없는 크기와 용적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때로는 결코 대하지 않고 싶은 방식으로 혼내고, 짜증을 던지고, 소리를 내지르더라도 그들은 왠만해서는 나를 꼭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고 심지어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무결한,에 속수무책 흠뻑- 나도 모르는 사이에 푹 젖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받은 이는 티가 없다는데 나는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통에 티없이 자라고 있다. 아니 어쩌면 티를 벗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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