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 다양한 사람들

다름의 다른 말은 아름다움일지도

by 밝음

동생이 거주하는 마을은 70%가 외국인이다. 미국은 워낙 다인종 국가라서 진짜 미국인 찾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특히나 이 마을에 머무는 사람들은 단기 거주를 목적으로 집을 렌트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보스턴에서 일을 하기 위해 모여든 각국의 주재원 사람들, 연수 기간을 보내는 의사들, 대학원 학위를 위해 공부 중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외국인들을 위한 외국이라고 해야 할까. 조카와 함께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놀았을 뿐인데 오늘 하루만 해도 한국, 태국, 멕시코, 우크라이나, 스웨덴. 많은 나라의 친구와 인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는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놀고 배우며 자라는 중이다. 지금이야 친구들, 선생님과 소통이 원활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늘어서 즐겁게 지내고 있지만, 처음 부모를 따라 이국의 땅으로 왔던 과거 6살의 조카는 무척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안 본 사이에 영어 실력이 훌쩍 큰 조카에게 “캐빈!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영어를 잘하게 돼?”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하루에 6시간 동안 계속 영어만 듣고 지내면 이렇게 돼요.”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도 아직 어려운 어린아이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낯선 나라의 언어를 하루 종일 듣고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또 어렸기 때문에 어른들이 느끼는 답답함이나 어려움 없이 그저 또 하나의 세상으로서 신기하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기도 했겠다 싶었다. 다행히 미국인 사이에 홀로 한국인이 아니라 다양한 나라 아이들 속의 또 하나의 다름일 뿐이었을 테니, 살아가면서 꽤 유용한 경험을 한 셈이기도 하다.



오늘은 처음으로 물놀이를 하기로 한 날이다. 마을 내에는 주민들이 회원권을 끊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용 수영장이 있다. 물놀이하기 위해서 워터파크나 바다, 계곡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집 앞 공원을 산책하듯 집 앞에 나가서 수영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높아질 것 같았다.

난생처음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나서는데 기분이 묘했다. 마치 금기를 깨는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 차림으로 우리 동네를 돌아다녔다면 미친 사람 취급받거나 신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영장이 있는 동네에서 수영복은 평상복, 러닝복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옷일 뿐이었다. 자유로운 차림새 하나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다니 색다른 경험이다. 어른인 나도 이렇게 신이 나는데 초등학생인 두 아들은 오죽할까. 특히 평소에도 물놀이를 좋아하는 저학년인 둘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아이는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매일 물놀이를 하겠다고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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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수영장은 시설도 깨끗했고, 안전요원도 상주해 있었다. 파라솔 탁자와 선베드도 여러 개 비치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다인종 동네답게 수영하는 사람들도 여러 나라의 사람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긴 래시가드를 입은 사람은 한국 사람뿐이다. 차림새만 봐도 한국 사람은 구분할 수 있었다. 래시가드를 입거나 수영복 위에 긴 카디건을 입고 있다. 더불어 선캡은 필수. 우리나라 사람 성격 특성상 노출을 꺼리기도 하지만 검은 피부보다 하얀 피부를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피부는 잘못 노출했다가는 뜨거운 햇빛에 살갗이 벗겨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하니 어쩌면 래시가드와 모자는 개성 없음이 아니라 삶의 지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해 가을에 가족들과 베트남에 여행 갈 때 과감하게 수영복 한 벌을 샀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래시가드와 작별을 해보고자 과감하게 챙겨 오지 않았다. 일단 울룩불룩 살이 튀어나온 내가 수영복을 입고 돌아다닌다고 한들 이상하게 볼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자유를 느낄 것이다. 더군다나 집에서부터 수영복을 입고 동네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우리의 기이한 모습이 낯설기도 했지만, 분명히 이 삶이 더욱 자유로운 것은 맞았다. 평소와 다른 삶을 경험하고 불가능한 행동이 당연한 행동이 될 때의 자유는 새로움과 동시에 행복감을 맛보게 해 주었다.



낯선 외국에 왔다는 긴장감을 내려놓고 가족 모두 즐겁게 물놀이했다.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를 가득 만났다. 높은 기온에 비해 바람과 물은 조금 차가운 듯 시원했고, 우리를 비추는 태양은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빛났다. 꿈속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듯한 기분도 들면서 동시에 결국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해진 판결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그 순간이 좋았다는 방증이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같이 물속을 공유하며 굳이 같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와 편안함을 느꼈다. 다른 것이 당연한 것 속에서의 다름은 배척과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다름이 아니라 개성과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다름이었고 다름은 곧 다양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라와 인종, 언어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그것은 높낮이를 나누는 구분이거나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게 아니라 다름 그 자체의 다름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철저히 같은 공통분모를 가졌으니 그 다름조차도 따지고 보면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낯설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그러니 차별은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하고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역시 물놀이 후에 먹는 라면은 진리이자 일종의 법칙이다. 그런데 분명히 같은 브랜드의 한국 라면인데 맛이 다르다. 중요한 MSG를 빼놓고 만든 것 같은 맛이었다. 아무래도 라면을 현지화했기 때문에 조미료의 종류와 사용량이 다를 것이다. 만약 미국에서 계속 산다면 한국에서만큼은 라면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맛이었다. 이것도 나의 입맛이라는 기준이 있기에 그럴 것이다. 한국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 사람으로 살아온 나라는 사람이라서 갖는 ‘맛있는 라면 맛’.


보스턴에 있는 동안만은 다양한 다름을 기꺼이 즐겨보려 한다. 종국에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게 정답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는 걸 이미 알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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