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영원히 계속된다.
어느덧 마흔이 되었다. 이젠 청년이라고 하기엔 다소 어려운, 중년기의 초입 정도의 나이대가 된 것이다.
또래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자연스레 '요즘 애들'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 요즘 애들의 카테고리의 기준은 대체 뭘까. 어떨 때는 우리들이 키우는 청소년기 시기의 아이들이 된다. 또 어떨 때는 직장에 함께 있는 조금 어린 20~30대의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
그 요즘 애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공통적인 부분은 '개인성'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과 가치관이 지금의 우리들과 많이 다르고 부딪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준에 따라서 그 '개인성'은 '이기성'이 되기도 하고, '주도성'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장에 따라 시각에 따라 판단될 때가 많아 보였다. 참 어려운 문제.
분명 함께 맞춰가야지 전체가 더욱 잘되고 효과성이 높아질 때가 있다. 조화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불편해도 전체를 위해 거기에 맞추는 것, 내 업무 외 부분이지만 함께를 위해 기꺼이 참여하는 것, 같은 부분을 과연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볼 수 있을까. 그건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따로도 중요하고 함께도 중요한 것일 텐데, 그 중간 어디쯤, 조화에 해당되는 지점이 대체 어디인지 찾기는 어렵다. 서로의 기준과 욕구가 다르기에.
'우리'라는 공동체성이 강한 시대를 지나, '나'가 중요한 개인성이 강한 시대가 되었다. 어른들은 종종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러나'라고 하지만 그동안 함께 가 중요해서 필요치 않게 견뎌온 희생의 날들이 많았던 것도 인정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극이 강해서, 반대편의 극이 발현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세상의 이상한 꼴이 아니라 곧이어 우리는 조화의 꼴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중년인 우리가 말하는 그 '요즘 애들'을 보며 생각해 본다. 우리들의 과거가 과연 건강했다고 볼 수 있는 건 맞을지, 조금 더 지켜나가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고 오히려 그 요즘 애들에게 배워야 할 부분이 있진 않은지 말이다.
절대적으로 옳거나, 절대적으로 그른 건 없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의 사람들도 그 옛날의 어른들에겐 아마 이해하지 못할 '요즘 애들'이었을 텐데.
이해 못 할 요즘 애들이 생겨나면 '아, 내가 꽤 나이를 먹었나 보다.'라는 잣대는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 발언 속에서 '요즘 애들'이라는 단어는 등장시키고 싶지 않다. 어른의 행세를 하려면, 젊음은 포기해야 하니까. 영원히 마음은 젊고 싶다. 어차피 요즘 애들은 영원히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