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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Nov 08. 2022

과거를 돌아보기 힘든 당신에게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던 반 년 전의 날로 시간을 돌린다

  Writing Therapy,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내건 이름이다. '치유의 글쓰기'라고 적었다가 똑같은 이름의 글쓰기 강의가 있는 걸 알고는 잠시 고민하다 영어로 이름을 붙였다. 우리말로 글을 쓰는 모임에 영어 이름을 붙였다는 게 뭔가 모순돼 보이지만, 한 눈에 들어오는 모양새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치유를 내건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반 년이 흘렀다. 반 년이라니. 


  늘 이른 아침에 모임을 하는데, 이번에는 저녁시간에 모임을 하게 되었다. 빈 숙소가 있다는 한 멤버의 말에 우리들은 모조리 그곳으로 향했다. 전직 디자이너였던 멤버의 손길이 닿은 숙소는 소박하고 아늑했다. 몸을 감싸는 듯 따뜻한 불빛 아래, 폭신한 하얀 침구와 널따란 나무 식탁, 직접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들었을 하늘하늘한 커튼, 작은 책장 안의 다정한 제목의 책들까지. 잔뜩 먹을 거리와 따뜻한 차가 놓인 넓은 식탁에 마주 앉으니 글에 대한 합평보다는 와인을 들이키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만 싶었다. 밤을 새서 뒹굴거리며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귀한 시간을 내어 모였으니 또 서로의 글을 들여다 봐야지.    


  이번 글감은 '시간'이었다. 내가 낸 소재였는데 글감 때문인지 유독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말하는 글이 많았다. 보통은 같은 글감이어도 주제가 겹치지 않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후회스러운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야기들. 시간은 후회를 낳는 걸까. 완벽하지 못한 인간에게 후회는 결코 뗄 수 없는 꼬리표 같은 것일까. 어제보다는 오늘의 내가, 작년보다는 올해의 내가 한 뼘쯤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인 나는 평소 잘 하지 않는 생각이어서 더 신기하게 느껴졌다. 글쓰기 모임의 한 멤버가 모임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과거를 돌아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맞아요. 힘들죠.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나는 하나마나한 메아리 같은 대답만 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과거를 돌아보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그 자리에서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에세이가 결국 나의 이야기를 담는 글옷이기에, 글감과 연관된 과거를 떠올려 글을 쓴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강요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왜 글쓰기가 치유라고 했던가. 과거는 왜 꺼내놓아야 하는가. 우리는 왜 함께 모여 에세이를 쓰는가. 나는 그 멤버의 말에 답을 찾고자 다시 반 년 전, 모임을 시작하던 때로 시간을 되돌려야만 했다.  


  수많은 글을 썼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아끼는 글이 있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다시 읽게 되는 나의 글. 그런 글들의 공통점은 '진짜 나'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글에는 '지금의 나'가 아니라 '과거의 나'가 담겨있다. 길게는 수십 년 전, 짧게는 수개월 전까지. 그 시절의 부끄러웠던 나, 방황했던 나, 안쓰러웠던 나가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떤 모습이든 그 시절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글에 담음으로써 나는 과거의 나를 '후회'가 아닌 '화해'의 대상으로 바꿔나갔다. 과거를 글로 쓰면 스스로를 토닥이게 된다. 그럼에도 살아내서 다행이라고, 어떤 모습이었든 괜찮다고, 이제부터 잘 살아가자고. 에세이를 쓰는 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행위인 것.


  결국 공개적인 에세이 쓰기는 힘겹게 과거를 꺼내어 놓고 햇볕에 말리는 것과 같다. 축축하고 곰팡내 나는 그 시절 이야기들을 바삭거리는 햇살 아래 꺼내두고서, 이제는 더이상 그렇게 아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겠다고 더는 방황하지 않겠다고, 바짝 말린 포근하고 뽀송한 기억으로 바꾸는 과정인 것. 이런 과정은 자칫 과거를 변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실 현재를 바꾸는 일에 더 가깝다.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타임머신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아무리 후회한다 해도 과거를 뜯어고칠 수 없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 과거를 바라보는 지금의 나일뿐.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는 바꿀 수 있기에 과거를 바라보는 지금의 나를 바꾸면, 우리는 비로소 후회와 방황으로 얼룩진 과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내가 에세이 쓰기를 권한 건 누구보다 나 자신이 그렇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통스럽고 부끄럽지만 그 시절의 나를 끄집어내 활자화할수록 달라진 자신을 마주했다. 폐기처분하고 싶었던 과거를 글쓰기로 반추하면서, 과거는 더 이상 지금의 나를 '흔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받쳐주는' 이야기가 되어간 것이다. 그렇게 내가 쓴 나의 이야기가 늘어갈수록 나를 떠받치는 기둥도 늘어갔다. 


  기둥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더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었다. 상처가 깊은 과거일수록 글로 써 소화를 마치면, 더 굵고 튼튼한 기둥이 되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 되었다. 나는 이 과정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도 좋다고, 어떤 고통도 수치도 모두 꺼내놓아도 괜찮다고, 그런 용기를 주고 싶었다. 과거를 마주하기 어려울 때마다 그럼에도 나를 믿고 다시 정면으로 바라보라고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모임을 시작해놓고 정작 힘들어하는 멤버 앞에 입을 떼지 못했던 것이다. 반 년이란 시간 탓일까, 어느덧 익숙해진 모임으로 초심을 잊은 탓일까. 하얀 종이를 펼치고 고해성사하듯 글을 쓰는 나의 삶과 글을 써온 멤버들의 지난 시간들을 하나하나 되짚고 나서야, 나는 다시 초심을 또렷이 기억해낼 수 있었다. 간절하게 시작했던 봄날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뇐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기를. 혹 그 과정에 혼이 쏙 빠지도록 눈물을 쏟거나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게 되더라도, 결국 씀으로써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분명 한결 맑아진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나를 믿어도 된다고. 길을 잃은 멤버의 두 손을 꼭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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