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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Apr 25. 2023

문장에 기댄 하루

  컨디션이 엉망이다. 혓바늘이 돋았고 자꾸 잠이 온다. 이게 다 목 때문이다. 분명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그래서 매운 게 당기기에 불닭볶음면도 오랜만에 해먹고 신이 나 있었는데. 지난 주 학교 모임에서 말을 좀 많이 한 다음 날부터 목이 다시 이상하더니, 계속 밤마다 기침을 한다고 잠을 설치고 있다. 말을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래 하는 건 무리다. 한 번씩 켁켁 걸리는 느낌이 들면 기침을 멈추기가 어려워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따뜻한 차와 목캔디를 달고 산다. 커피는 몸 속 수분을 줄인다 해서 오늘은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잘 때는 꼭 가습기를 틀고, 자주 환기를 하고, 말도 아끼고. 나름 신경을 쓰는데도 쉽게 낫지 않는다. 이번 감기가 코로나나 독감보다 독하다, 오래 간다, 말들이 많던데 참 징하다. 이젠 정말 감기가 지긋지긋하다.


  "완전 봄빈데!"

  첫째가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며 말했다. 바람 없이 내리는 비는 봄비답게 차분하고 곧게 하강하고 있었다. 아이도 봄의 느낌을 아는 걸까. 그렇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내게는 겨울비처럼 느껴진다. 온몸이 물에 젖은듯 축 처진다. 기온도 제법 내려가 3월의 느낌이 감돈다. 손님도 영 없고 붙들고 있는 책의 책장은 잘 안 넘어가고, 취향에 대해 미리 써놓은 글을 퇴고하다 접어버렸다. 왜 이렇게 눈에 안 들어올까. 영 집중이 되질 않는다.


  카페에 꽂혀있는 책들로 시선을 돌렸다. 거의 다 읽은 책들이지만, 몇 권은 읽지 않았다. 그 중에 김훈 작가의 <연필로 쓰기>가 눈에 띈다. 몇 년 전 나오자마자 신이 나서 사두었는데 이상하게 문장들이 잘 읽히지 않았다. 몇 줄 읽다가 책을 덮어버렸다. 내 취향이 달라진 걸까, 작가가 변한 걸까. 답을 찾지 못하고 손님들과 함께 보는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몇 년을 놔두었더니 제법 세월의 흔적이 쌓였다. 이 책을 거쳐간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김훈 작가의 문장들에 탄복하며 글을 읽어내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짧은 호흡의 글은 리듬과 힘이 있었다. 온통 줄 치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했다. 나도 이런 문장을 쓰고 싶다, 이런 문장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쓰는 걸까, 한껏 부러워 했다. 분명 그렇게 좋아하던 문장들이 읽히지 않은 건 왜일까. 몇 년이 지났으니 이번엔 혹시 읽힐까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쳤다.


  일산 호수공원을 이리저리 뒷짐지고 기웃대며 호기심 많은 눈망울로 사람과 사물과 동식물을 관찰하는 김훈 작가가 그려진다. 머리가 벌써 새하얘졌고 나이는 이미 일흔을 넘겼다. 문장마다 쉼이 있다. 고집은 적어지고 통찰은 깊어지고 시선은 따뜻하다. 술술 읽히는 글을 따라가다 의문이 든다. 나는 몇 년 전에는 왜 이 문장들이 읽히지 않았을까.


  더듬어 보면, 당시 아이들이 모두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카페로 나왔다. 몇 주는 문을 닫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했고, 손이 많이 가는 메뉴를 조금씩 늘려갔다. 반응은 이전 같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 집중하는 사이 개업한 카페 숫자가 곱절로 늘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에는 남편과 나 모두 카페에만 매달릴 때라 하루하루 매출에 큰 심리적 타격을 받던 시기였다. 그 즈음 산 책이었기 때문일까. 사물과 일상을 느리게 응시하는 글들이 그때의 조급한 내게 사치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취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매일 갈대처럼 나부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글도 쓰지 못하고 매일 먹고 살 걱정에 치여 멘탈이 가루처럼 흩날리고 있었을지도. 한 푼이라도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온다는 건 내게 무척 큰 영향을 미쳤다. 남편의 연봉이 얼마든 상관없이 그저 같은 날 일정 금액이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쉽게 안정감을 되찾았다. 자영업 수 년의 결과가 월급의 소중함이라니. 물질이 중요하지 않다고 자주 말하면서도, 결코 물질을 무시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먹고 사는 건 이렇게 항상 절실하다.


  김훈 작가의 오래 전 인터뷰에서 왜 쓰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밥벌이 때문“이라고. 작가의 작가라 불리는 사람의 입에서 툭 터져 나온 한 마디의 말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먹고 사는 건 이렇듯 절절하고 그 앞에서는 어떤 짓을 해도 너그러워지고 만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큰 죄가 되는, 생명이 붙은 자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먹고 사는 것의 굴레. 문득 남편이 취업을 안 했다면 난 더 열심히 글을 썼을까 하는 공상을 해본다. 아예 놔버렸거나 죽기 살기로 썼거나 둘 중 하나겠지. 지금처럼 내 속도에 맞게 쓰지는 못했겠지.


  예전에는 김훈의 문장이 개인기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사람, 잘난 사람, 타고난 사람이 쓰는 문장. 그런데 이제 보니 김훈의 문장이 남다른 건 삶이었다. 깊이 들여다보는 삶, 오래 걷는 삶, 사유를 멈추지 않는 삶. 노인의 삶을 동경한다. 나의 노년을 그리며 글을 쓴 적도 있고.​ 지금보다 더 넉넉하고 너그러운, 몸은 점점 무거워져도 삶에 대한 미련이나 욕심은 훨씬 가벼워진, 잘 늙어가는 삶을 꿈꾼다. 호수공원의 산신령이 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나의 노년을 그려본다. 나는 어떤 할머니로 늙어갈까. 많이 듣고 적게 말하는, 조금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나저나 오늘 밤에는 기침 없이 푹 잘 수 있으려나. 나는 이제 책을 덮고 나의 일상에 안착한다. 잘 먹고 사는 것, 잘 자고 일어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지 하며. 오늘 밑줄 친 문장을 나누며 나의 하루를 닫는다.


나이를 먹으니까 나 자신이 풀어져서 세상 속으로 흘러든다. 이 와해를 괴로움이 아니라 평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온전히 늙어간다. 새로운 세상을 겨우 찾아낸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연필로 쓰기, 김훈 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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