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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우 Feb 05. 2022

꿈을 꾸는 엄마의 삶

아내, 엄마, 딸, 며느리, 그리고 바리스타. 나를 형용하는 수식어들이다. 모든 수식어가 나를 가리키지만 그 어느 것도 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아내이자 엄마이자 딸이자 며느리이고 동시에 바리스타지만, 무엇보다 나는 내 자신이다. 아무 수식어도 필요없는, 그저 타고 태어나 수없이 밀려드는 파도에 깎이고 깎여 결국 지금의 내가 된 나. 나는 글을 쓸 때 가장 나다운 내가 된다고 느낀다.


아직 내 삶에 있어 글은 최우선 순위가 되지 못한다. 아이들이 어려 육아가 가장 위에 놓이고, 그 아래는 먹고 살아야 하니 밥벌이가 따라온다. 그 다음으로 식사 준비,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이 차지하고 글은 제일 바닥에 놓여있다.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고 싶기에 글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가고 싶지만, 그러기에 아직 아이들은 어리고, 밥벌이는 늘 절실하다.


내가 가진 수식어 중에 가장 무거운 건 엄마라는 자리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나는 하나의 우주다. 아이들은 수시로 엄마를 부르고 세상에 대해 일상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그런 무겁고 촘촘한 일상 속에서도 글은 항상 내 머릿속을 장악한다. 두서없이 문장이 떠오르거나, 생각이 깊어지면, 어떻게든 활자화하려, 어떻게든 놓치지 않고 새기려 안간힘을 쓴다.


아이들은 내게 가장 소중하고 좋은 엄마가 되는 건 내가 가진 꿈 중 하나지만, 그럼에도 나는 결코 나를 놓지 못한다. 쓰는 사람이란 꿈이 너무나 소중한 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도 종일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꿈에 대해 글에 대해 세상에 대해 내가 켜켜이 느끼는 삶의 결에 대해 놓치지 않고 감각하고 기록하고 싶다.


첫째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엄마는 바리스타인데 왜 또 꿈을 꿔? 직업이 있어도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거야. 아이들은 날 이해할 수 있을까. 온통 자신의 꿈에 빠져있는 엄마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꿈을 꾸는 멋진 엄마로 기억할까. 자식보다 자신이 먼저인 엄마로 기억하는 건 아닐까. 혹시 그런 기억이 서운함이 되진 않을까. 수많은 걱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힌다. 아이들은 엄마에게도 엄마의 삶이 있다는 걸 느끼며 자랄 것이다.


엄마이면서 동시에 쓰는 사람으로 살면서 죄책감은 느끼고 싶지 않다. 아이들과 나의 삶은 다르다. 아이들은 내게서 나왔지만 나와는 다른 존재다. 그들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잘 사는 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내가 당당히 나의 길을 가야 아이들도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로 걸어갈 수 있다. 나의 길을 찾지 못하면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엄마로서의 삶과 쓰는 사람으로서  사이의 균형찾기는  내게 숙제와 같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삶의 우선순위에서 글의 위치도 조금씩 높아질  있지 않을까. 다른 역할들과 쓰는 사람 간의 균형도   잡아갈  있지 않을까. 꿈을 꾸는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분명  꿈에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꿈을 꾸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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