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아일기

한국 사람, 김치.

by 글로즈Glose

한강 열풍이 불어 나 역시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있던 <채식주의자>를 빼내 들었다. 몇 해 전에 앞부분만 읽고 덮어놓았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다. 읽다 보니 채식을 하겠다는 영혜와 그 앞에 선 가족들이 영혜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달려드는 모습이 마치 언젠가 본 듯하다. 마녀 사냥을 하듯 한 사람에게 벌떼같이 몰려드는 모습. 맞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유치원생 때의 일이다. 겨울에 들어가기 전 김장 담그기를 했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김치를 먹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김치의 젓갈 냄새가 꽤나 역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상도 지방의 김치니 더 그럴 것이다. 남들은 갓 담근 겉절이를 맛나게도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먹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속에선 울렁거림이 올라오곤 했다.

문제는 김장은 어찌어찌 담갔으나 먹어야 하는 시간이 와서부터였다. 옆에 친구들은 매워서 “쓰읍, 하~"하면서도 ‘선생님, 저 선생님 지시에 잘 따르고 있지요?’란 눈빛으로 경쟁하듯 먹고 있었다. 하지만 난 도저히 입 안에 넣을 수가 없었다. 특히 만드는 내내 젓갈 냄새를 맡아온 터여서 더욱 속이 매스꺼웠다. 담임 선생님이 다가왔다.

“장미야, 김치 먹어야지?”

내성적이었던 나는 정말로 먹지 못하겠어서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내 앞에 바짝 다가왔다.

“한국 사람이면 김치를 먹어야지. 왜 안 먹겠다는 거니? 자, 어서 먹어, 어서!”

“편식은 정말 나쁜 짓이야. 편식하면 안 돼."

“한국 사람은 김치를 먹을 줄 알아야 해. 너 한국 사람 아니니?”

선생님이 김치 한 조각을 코 밑에 들이대니 더욱 미칠 지경이었다. 싫은 마음에 냄새까지 더해지니 말아 넣은 입술엔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윽고 선생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떻게든 오늘 나에게 김치를 먹이리라고 다짐한 듯했다. 그때부터 선생님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채식주의자> 속 영혜와 영혜 가족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옆에 있던 친구들은

"야, 쟤 김치 못 먹는대."

“김치 못 먹는 사람도 있어?”

“김치를 왜 못 먹어?”

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실랑이가 얼마동안 벌어진 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꽤나 긴 시간이었다. 어느새 그날의 수업 주제는 ‘김장 담그기’가 아니라 ‘편식하는 아이, 김치 먹이기’가 되어 있었다.


일일 도우미로 김장 담그기에 참여했던 한 학부모가 나섰다.

“얘야, 먹어봐. 이거 별 것 아니야. 알았지? 선생님, 친구들, 장미가 이제 김치를 먹겠다 하네요~ 박수 쳐 주세요, 박수!“

나는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먹지 않겠다고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뒷걸음질 쳐봤지만 그 학부모는 나의 손목을 잡고 교실 앞으로 끌고 갔다. 박수가 나왔다. 이젠 모두가 흥미진진한 눈치였다. 그 엄마는 내 입에 김치를 갖다 댔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더욱 굳세게 말아 넣었다. 울고 싶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걸까. 모두의 눈이 나의 입에만 모여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니 그 학부모도 빨리 먹으라고 들이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김치를 입에 넣는 순간 마늘과 생강의 향이 물큰 입천장을 타고 코 안을 찔러댔다. 한입 씹는 순간 이전에 맛본 적 없었던 향과 식감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우-웩’하면서 헛구역질과 함께 모두 뱉어냈다.


그때였다. 별안간 내 머리 위로 주먹이 세게 날아왔다. 순간 눈앞에 별이 번쩍했다. 선생님이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친 것이다. 일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렇게 나의 김치 먹이기는 주먹이 날아오고 나서야 끝이 났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김치를 억지로 먹인 게 서러웠다. 머리에 혹도 꽤나 크게 났다. 하지만 더 울분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의 구경거리가 되어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들이, 어린 마음에도 치욕스러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웅성웅성하며 내가 어찌할 것인지 바라보는 그 몇 십 명의 눈빛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생생하다. 그때의 한 장면, 장면이 여태껏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꼭 물리적인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난 그날 선생님께 실제로도 폭력을 당했고,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 눈빛으로도 흠씬 두들겨 맞았다. 여러 개의 시선이 날 에워쌌을 땐 정말 공포였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나가 타인에게는 재미난 볼거리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한강의 작품들이 너무 끔찍하고, 삼류소설이라고도 평한다. 이런 잔혹성과 선정성을 그린 작품은 청소년들에게 유해물이라고도 말한다. 이런 게 어떻게 세계적인 상을 받을 수 있냐고도 한다. 그러나 작품 속 그려지는 모습들은 실제 삶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이다. 그중 하나가 내 경험과도 꽤나 비슷하지 않은가. 본인은 남을 위한다는 전제 하에 저지르는, 그래서 정당화되는 폭력들. 이것이 나는 늘 삶에서 의문점이다. 걱정 어린 마음으로 한다는 말들이 정말 걱정을 내포하고 있긴 한 걸까? 이런 말들이야말로 대부분 제일 잔인한데 말이다. 이게 바로 폭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소설 속 영혜의 가족들이 채식을 하면 몸에 영양소가 골고루 가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는 척 가르치려 들고, 자신의 식대로 끌고 가려는 모습이 내가 그 후로도 줄곧 들었던 말들과 흡사하다. 한국 사람이기에 김치를 먹어야 하고, 몸이 튼튼해지려면 김치를 먹어야 한단다. 편식하는 어린이는 아주 나쁜 아이란다. 그들은 정말로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던 걸까.


<채식주의자> 속 영혜의 모습을 보니 잊은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끔찍한 장면이 아직도 겹쳐 떠오른다. 치유되지 않은 채 아픔으로 기억되는 것을 보니 결론은 났다. 결국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일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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