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야. 너는 내 안에 있어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다.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의 뇌는 타인을 자신보다 더 사랑할 수 없다고. 심지어 자신만큼 사랑하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늘 손익을 따지고, 감정을 계산하며, 그렇게 이기적인 선택을 반복한다.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구조다. 그런데 가끔, 그 구조를 무력화시키는 사람들을 만난다. 자기 것을 내어주고, 시간을 건네고, 마음을 포개는 사람들. 자신을 덜 어내며 웃는 얼굴로 타인을 안아주는 사람들. 그들은 본능을 거스르는 걸까,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본능을 확장한 걸까.
신기한 건, 그들의 뇌를 들여다봤을 때다. 구조적으로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나’의 경계를 조금 더 멀리까지 확장해 두었을 뿐이었다. 타인을 나와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나의 일부, 나의 연장선처럼 여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위하듯 타인을 돌봤고, 자신을 지키듯 타인을 감쌌다. 이기적인 구조 안에서도 이타적인 행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결국 타인을 향한 강력한 동일시, 연결감, 그리고 경계의 해체 때문이었다.
‘자기(自己)야’라는 애칭이 있다. 친밀한 사이에서, 혹은 연인 사이에서 부르는 말. 자기야,라는 부름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상대를 부르는데, 그 단어엔 '나'가 들어 있다. ‘자기야’하며 부른다는 건, 어쩌면 너를 나로 받아들이겠다는 무의식적인 선언일지도 모른다. 너는 나야. 너는 내 안에 있어. 그러니 너를 아끼는 일은 나를 아끼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조용한 동의. 많은 사랑을 주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한마디 속에서도 자신을 넓혀온 게 아닐까. ‘자기야’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건넬 수 있다는 건, 이미 마음의 경계를 타인에게 내어주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부르는 말에서조차, 그들은 조금씩 ‘나’를 확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사랑이란 결국 ‘나’를 확장하는 일이 아닐까. 타인을 품고, 그의 감정을 통과시키며, 나의 울타리를 조금씩 넓혀가는 일. 그 안에서 우리는 때로 다치고, 때로 흔들리지만, 그 모든 진동이 결국 ‘나’를 키운다. 사랑은 나를 무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하게 만든다. 너를 이해하려 애쓰는 만큼, 나는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니까. 결국 우리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사랑해야만 할 거 같다. 더 크고, 더 단단하고, 더 따뜻한 내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