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다 1
트럭이 모퉁이를 돌아 나가자 골목이 조용해졌다. 어려운 손님들이 떠난 것처럼 긴 한숨이 나왔다. 홀가분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나 때문에 가족들이 저렇게 슬퍼하는데, 다시는 가족과 함께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념일을 함께 보낼 수도 없는데. 죽으면 사이코패스가 되는 건가? 내가 가족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나?
“생각보다 별 느낌 없지?”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흰 칼라가 달린 검정 교복을 입은 양갈래머리 학생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누, 누구...?”
“이 동네 토박이. 여기 판자촌일 때부터 살았던. 딱 보니까 방금 죽었네?”
“그렇긴 한데...”
“뭘 말끝은 흐리고 있어. 말 까. 나도 놨잖아. 하여간 신입들은 고지식하다니까. 죽어서까지 나이 따지고 반말 존댓말 따질래? 이제 좀 편해질 때도 됐잖아.”
양갈래는 주차된 승용차 보닛에 올라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꼰대 같긴 하지만 악의는 없어 보였다. 나는 슬그머니 옆차에 걸터앉았다. 남의 차에 막 올라가서 앉다니, 살아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해본 일이다. 뽀드득 하고 폭 들어가는 쿠션감이 나쁘지 않았다.
“너무 안 슬퍼서 이상하지? 귀신이 되면 뭐랄까, 만사에 좀 심드렁해지거든. 하나하나 일희일비하는 건 살았을 때나 그렇지.”
“아아, 원래 그런 거였어? 난 또 내가 이상한 줄.”
“원래 그렇다니까 마음이 편한가봐? 네가 이상한 거면 뭐 어때서? 이래서 신입들은...”
“아, 알았어. 말끝마다 신입 신입. 고지식한 신입한테 말은 왜 걸었는데?”
"택시, 언제 어디로 온다디?"
"택시...?"
"그래, 내릴 때 기사가 말해줬을 거 아냐."
그랬던가...? 그러고 보니 내릴 때 기사가 내 등뒤에 대고 뭐라고 외쳤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땐 이삿짐 트럭을 보고 뛰쳐나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못 들었는데."
"야, 너 바보냐?"
양갈래가 보닛에서 펄쩍 뛰어내리며 소리를 쳤다. 이렇게 대놓고 바보 소리를 들어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택시기사가 뭐라고 했든 지가 무슨 상관이라고 화를 내?
"그 기사도 정신이 빠졌네. 도착하기 전에 미리 설명해줘야 되는 걸 내리는 뒤통수에 대고 말하냐."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야?"
"중요하지! 원래 신입들한테는 딱 한 번 더 선택의 기회를 준다고. 맨 처음 내린 결정은 후회하기 마련이니까, 한참 후에 다시 데리러 와서 여기 계속 있을지, 딴 데로 갈지 물어본단 말야. 그러면 십중팔구는 당장 데려가 달라고 하지."
"글쎄... 난 이승에 계속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가보고 싶은 데도 많고, 저승은 이승보다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신입..."
"신입 소리 그만."
"네가 몰라서 그래. 여기가 과연 귀신이 살기에 최적의 장소일까? 내가 50년 넘게 살아봐서 아는데..."
"그러니까 네 말은, 택시가 오면 너도 합승해서 여길 뜨고 싶다는 거야?"
"그래. 아까 너 도착할 때 택시를 잡았어야 했는데, 한 발 늦어서 얼마나 억울했다고."
"왜 떠나고 싶은 건데?"
"에휴, 말로 해봐야 뭘 알겠냐. 어차피 하루이틀 안에는 안 올 테니까, 따라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