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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현 Nov 08. 2021

입술 위에 검지를 대고  

2019 8 31일의 일기


볕이 좋은 초가을의 토요일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카페에 남편과 유은이와 함께 찾았던 날이다. 입구부터 허브와 과일나무로 가득한 유럽풍 정원이 반겨주었다. 정원에 한가로이 앉아 커피 잔을 바라보고 있자니, 소풍에 온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남편은 주말이면 늘 그렇듯, 의자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잠깐이라도 편하게 졸 수 있도록 유은이를 데리고 카페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카페 정원의 한 구석에는 작은 소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평소 작은 가게를 좋아하는 나는 반가운 마음에 가게 문에 적혀있던 ‘No kids zone’을 미처 읽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 순간, 느껴지는 가게 직원의 싸늘한 시선. 본능적으로 이 곳은 우리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들어오시면 안 돼요.” 직원의 목소리였다. 지난 4년간의 경험으로 상황이 파악됐다.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려는데, 등 뒤로 직원의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만지지 않게, 손을 꼭 잡아주시면 괜찮아요.”

직원이 괜찮다고 했으니 들어가볼까, 싶은 마음이 왜 들었을까. 다시 가게로 향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했다. 그래도 이번엔 직원에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내서 유은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유은아, 여기에서는 뭐 만지면 안 돼. 엄마 손 꼭 잡고 있어야 돼.”


아이에게 이런 당부가 쉽게 지켜질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어리석었다. 육아 4년 차라는 경력이 무색했다. 아마도 오랜만의 핫플레이스 방문에 아이 엄마라는 것을 망각했나 보다.


가게는 갤러리 같은 분위기가 돌았다. 판매 상품들은 전시 작품 같은 태도로 진열되어 있었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숨소리도 작게 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느낌은 나만이 가졌던 것 같다. 처음 보는 물건들에 둘러싸인 강아지, 아니 4세 아이는 눈은 반짝거리며 들뜨기 시작한 상태였다. 유은이의 눈빛에 감도는 호기심을 읽는 순간, 좀 전의 불안이 현실화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은 되돌릴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유은이는 내 손아귀를 벗어나 상품 진열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계속되는 유은이의 손 뻗침과 나의 제지가 짝을 이루어 벌어졌다. 중간중간 직원의 눈치를 살피며, “안 돼, 안 돼. 그건 만지지 마. 여기에 올려놔(속닥속닥)”, “이리와. 엄마 손 잡아(소곤소곤)” 라며 속삭여댔다.


실제로 상품이 진열대의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거나, 망가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매장 안을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를 내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이미 전쟁터의 한가운데였다.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엄마 사람의 습관성 과대망상과 걱정 탓이리라.


그리고 잠시 후, 핫한 아이템이나 하나 겟 할까 싶었던 난 바가지 아이템 하나를 겟 하게 될 위기에 몰렸다. 유은이는 작은 손뜨개 인형을 집더니 자기 것인 듯 안고 다녔다. 아무리 내려놓으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조용히 상황을 마무리할 방법은 결제 뿐이었다. 손뜨개 인형의 가격을 물었고, 직원은 가격을 알아보러 카운터로 향했다. 잠시 후 돌아온 직원은 인형의 가격이 2만8천원이라고 했다. 가격에 합당한 물건인지 이모저모 따지던 평소와 달리, 바로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막상 결제를 위해 카운터에 갔더니, 직원은 가격을 잘 못 알았다면서 4만원이라고 정정했다. 잠시 머리가 어지러운 듯 했다. 들고 있는 카드는 남편 카드였다. 의자에서 한가로이 졸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은이는 여전히 손뜨개 인형을 안고 가게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카드가 기계에 긁힌 후에야 우리는 가게 문을 나설 수 있었다.


*


8월의 마지막 토요일의 기록이다. 이 작은 사건은 토요일의 남은 오후를 마음 편히 보내지 못하게 했다. 토요일을 지나 주말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불편함의 이유는 단순히 4만원의 지출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지출의 이유가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 키즈 존에 아이와 들어와서, 가게의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것은 아닐까. 아이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주변에 피해주고 다니는 엄마로 보이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들로 스스로에 대한 시선을 만들어낸 나는, 지출을 함으로써 떳떳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물건을 만지거나 돌아다니는 것으로 가게 분위기에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한 보상을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런 사실에 자신이 세속적으로 느껴졌다. 쿨한 결제로써 맘충이 아닌, 세련된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걸까. 밑바닥에서부터 실망감이 몰려왔다.


엄마가 되고 얼마 후,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레 집순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좁아진 활동반경과 함께 핫플레이스와는 기약을 알 수 없는 작별을 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시절에는 더 했다. 입구에 문턱이나 계단이 있는 가게 앞에서는 돌아서는 일이 많았다. 힘들게 찾아갔는데 출입문에서 ‘노 키즈 존’ 네 글자를 보기라도 할 때면, 왠지 모르게 서러웠다.

출입에 제한이 없는 곳일지라도 아이의 소음까지 관대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불행히도 아이와 함께 다닐 때는 주변의 눈치를 보는 게 습관이 됐다. 아이 때문에 시끄럽다는 이야기를 듣게될까 두려운 마음에 입술 위에 검지를 대고 “쉿~” 하는 게 일상이었다. 때로는 아이를 조용히 시키는 매일이 미안해져, “쉿. 비밀이야~” 라는 말로 바꾸기도 했다. 비밀이니까 작게 말하자고 둘러대면서.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순간을 모면하며 지내왔다. 변명하자면, 생각할 여유가 없기도 했다.


이런 나, 맘충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과 다른 게 무얼까. 아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내가 다른 아이 엄마를 보고 손가락질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무서웠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나를 가두는 것으로 모자라, 아이마저 가두려 했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의 나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보다는 남들 눈에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바빴던 게 아닐까. 사람들에게 맘충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동안,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들은 흘려 보내 버리고 있었다.


분명히 아이의 소음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술 한 잔 하신 아저씨들의 큰 목소리의 대화나, 신나게 떠드는 수다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기준은 유독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날카로운 것 같다.


아직은 물음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모두들 조금만 너그러울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를 아직  모르고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준다면 너그러울  있지 않을까. 우리가 노약자를 보호하듯이, 장애인을 배려하듯이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고 배려해주는 마음을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작은 배려만으로도,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들은 조금   곳이 많아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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