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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Oct 09. 2022

추억이 불꽃처럼 빛나요

서울 불꽃 축제


오늘 여의도 불꽃 축제가 있었다. 코로나로 작년과 재작년에는 볼 수 없었다. 뉴스 사진을 찾아보니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있다. 공중에서 찍은 사진 속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강 변에 펼쳐놓은 돗자리들이 마치 여러 색의 작은 헝겊을 이어 붙인 커다란 조각 이불 같다.

      

나도 저기에 저렇게 돗자리를 펼치고 불꽃 축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아들이 열두 살 때 그리고 열세 살 때 연이어 두 해 동안 불꽃 축제에 갔었다. 한 번은 아들과 둘이 갔었고 또 한 번은 아들 친구와 셋이 갔었다. 

    

공부방을 하던 때라 일을 마치고 가느라 일찍 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지는 못하고 이미 어두워진 다음에 갔었다. 정말 사람이 많았다. 이미 낮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린 사람들로 빼꼭해서 우리 세 사람이 앉을 돗자리를 펼만한 작은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어찌어찌 겨우 자리를 잡고 구경을 했다. 

     

툭툭. 공연이 시작되고 하늘 높이 붉은색의 커다란 공이 만들어진다. 붉은 공 주변으로 작고 노란 공들 여러 개가 나타난다. 투두둑 툭툭. 검은 허공으로 쏘아 올려진 빛줄기가 분수처럼 다시 흘러내린다. 빨강과 파랑의 불꽃이 휘돌면서 태극 문양을 만든다. 투두 두두두두두 공연의 마지막에 이르자 아주 많은 폭죽이 동시에 터지면서 밤하늘은 온통 하얀 불꽃으로 뒤덮인다. 끝날 것 같으면 또 터진다. 계속 터진다.

      

폭죽 터지는 소리와 불꽃이 겹쳐지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도 터져 나온다. 사람들의 이마가 환해지는 순간이다. 반짝이는 불꽃이 사람들의 눈동자로 스며들어 기억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강물 위로 떨어지는 수많은 불꽃과 사람들이 쏘아 올린 감탄사가 밤하늘에서 만나 찬란한 추억의 입자로 변하는 순간이다. 

     

아들에게 불꽃 축제에 갔던 것을 기억하냐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기억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에게 떠밀리듯이 걷던 일도 기억난단다. 서 있어도 저절로 걸어질 만큼 사람이 많아서 신기했단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은 해장국도 기억난단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열세 살 사내아이 둘이서 뚝배기 가득한 순댓국을 국물까지 싹싹 핥아서 먹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면 된 거다. 이렇게 십 년이 지나서도 그때 그날 하늘에서 터지던 불꽃을 기억한다면 된 거다. 다시 십 년이 지나고 또 십 년이 더 지나서도 ‘불꽃 축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열세 살 소년 시절 가을 어느 날 밤하늘에 무수히 터지던 꽃불을 기억한다면 된 거다. 

     

어두운 밤하늘에 폭죽이 터지면서 하늘을 온통 환하게 밝히는 것처럼 아들이 사는 동안 어느 날 문득 앞이 캄캄해질 때 아주 잠시라도 불꽃이 팡팡 터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앞이 다시 환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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