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Dec 19. 2022

씩씩하게 첫 출근

‘일어났니?’     

새벽 다섯 시 반에 보낸 문자에 딸아이에게서 일어났다는 답이 왔다. 마음과 몸이 다 바쁠 테니 더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밥 챙겨 먹고 가라는 말과 오늘 정말 추우니 단단히 입으라는 말, 그리고 늦지 않게 서두르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문자를 보내지는 않는다. 내 말에 답을 하느라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준비해야 할 뭐라도 하나 놓칠까 봐.     


여섯 시다. 날씨를 알아보니 영하 십오 도란다. 오늘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더니 진짜네. 어떡하나. 두 시간 걸려 처음 가는 길인데 어떡하나. 마음이 쓰인다. 나는 부엌에 서서 무를 납작하게 썰어 넣고 맑은 국을 끓인다. 쌀을 씻어 새로 밥을 안친다. 달걀을 두 개 휘저어 노랗고 부드러운 달걀찜을 만든다. 시간을 보면서 한다. 먹을 사람은 없다. 괜히 부엌을 서성거리면서 마음으로만 끓이고 안치고 만든다. 오늘 아침 딸에게 먹여 보내고 싶은 밥이다.     


여섯 시 반. 이제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잘 다녀오라는 문자를 보낸다. 알았다는 간단한 답이 온다. 현관문을 나서면 추위에 뺨이 따갑겠다. 마스크를 썼을 테니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덜 차갑겠네. 버스 정류장으로 후다닥 빨리 걷는 걸음이 보인다. 큰 키로 성큼성큼 걷겠지. 출근 시간이라 버스에 사람이 많겠네. 지금쯤이면 버스를 갈아탔겠다. 한 시간은 걸린다고 했지. 그리고 다시 전철을 타야 한다고 했고. 아휴 멀다.      

여덟 시가 넘었다. 어디만큼 갔는지 문자를 해보고 싶지만 사람 많은 버스에서 답장하기 곤란할 것 같아 참는다. 첫날의 긴장감을 같이 느끼면서 아침을 맞는다.     


정장을 사주려고 어제 낮에 서울의 쇼핑몰에서 딸을 만났다. 셔츠도 몇 장 더 사고 구두도 새로 사줄까 묻는 내게 딸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가방은? 가방은 준비했니?’ 다급하게 묻는 내게 아빠가 보내준 돈이 있어서 그걸로 샀다고 한다. 날이 너무 추워서 어떡하냐고 걱정하니까 대신 맑은 날이라고 웃었다. 폭설 예보는 없다고 얼마나 다행이냐며 웃었다.      


어제 딸이 한 말이 생각나면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그래 그렇게 씩씩하게 시작하면 되는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이여 내 이야기를 들어다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