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Dec 17. 2022

세상이여 내 이야기를 들어다오

  

지난 일 년간 학교로 시(詩)를 배우러 다녔었다. 학생들은 여러 개의 수업 중에 각자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듣는다. 그중 수요일 마지막 수업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그분들은 밤 열 시가 다 되어 끝나는데도 결석 없이 꼬박꼬박 참석하신다. 멀리 지방에서 오신 분들도 있다.      


이미 여러 해 동안 썼던 분들도 있고 시라고 하기에는 많이 서툰 분들도 있다. 이제 겨우 문장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있다. 시는 평범하다.      


교수님께선 젊은 이십 대 문창과 학생들을 오래 가르치신 분이다. 그러니 한 줄만 읽어도 잘 쓰고 못쓰고를 알아보실 수 있다. 하지만 이분들의 서툰 부분을 대놓고 지적하지는 않는다. 그냥 허허 웃으면서 열심히 격려하신다. 내가 보기엔 그게 좀 답답했다.    

 

나는 교실 맨 뒤에 있는 책상에 혼자 앉아 수업을 듣는다. 이 수업을 처음 시작한 가을에는 약간 실망도 했다. 내 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계속 들을까 말까 고민했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한 분이 자기가 아팠던 일을 써오셨다. 나이가 아주 많은 분이셨다. 최근에 암으로 큰 수술을 하셨던 이야기였다. 시라고 하기에는 어설펐다. 자기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어온 수준이었다. 어찌어찌하여 병을 알게 되고 수술하게 된 사연이었다. 그간 살아온 이야기였다. 글은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꽤 있고 표현도 많이 어색했다.     


그분이 써온 시를 읽기 시작했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읽으셨다. 중간쯤 읽었을 때 교실이 아주 조용해졌다. 여러 사람의 숨소리가 동시에 멎으면서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거의 다 읽어 갈 무렵 누군가의 짧은 한숨이 들렸다. 그것은 마치 울먹거림 같았다. 글을 써 오신 분은 차분하게 읽어 나갔지만 듣는 이들의 먹먹함이 교실에 가득했다. 잠시 잠깐 교실 안의 공기가 뜨거우면서도 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가 갖는 감각적이고 재미있는 표현 하나 없고 잘 다듬어진 문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분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아픈 몸을 추슬러 시를 쓰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나 할까. 세상에게 살아온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고픈 마음이 순수하게 전해졌다.    

 

아무도 그 글에 대해 잘 썼다 못 썼다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누구도 흔히 하는 평을 내놓지 않았다. 교수님도 앞으로 열심히 써보라고 하셨다. 그건 시를 잘 쓴다는 칭찬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오셨으니 앞으로도 잘살아 보라는 격려였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응원이었다.      


교실 맨 뒷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대충 듣고 있던 나도 마음이 뜨거워졌다. 마음이 뜨거워지면서도 대충 듣던 내가 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교실 안을 가득 채웠던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던 순간이 잊히지 않았다.      


그날 밤 차를 세우고 짐을 챙겨 집으로 향하는데 주차장에 달빛이 흥건했다. 아파트 마당에 는 여름내 커다란 꽃송이를 자랑하던 수국이 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여전히 커다란 꽃송이인 채였다. 달빛이 가을에 접어든 꽃송이를 보듬어 안아주고 있었다. 푸른 꽃 색을 잃은 꽃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짝반짝 오르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