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Apr 27. 2023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인생의 깜짝 선물



자다가 새벽 여섯 시에 벌떡 일어나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고 쌀을 씻어 새 밥을 했다. 예뻐 보이라고 노란 기장을 조금 넣고 했다.


국이 끓고 밥이 익는 동안 앞장엔 색연필로 꽃을 칠하고 뒷장엔 축하의 글을 적은 카드를 만들었다. 왜 ‘그리고’가 아니라 ‘칠하고’인가 하면 밑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였다.


기장밥과 미역국을 밀폐용기에 담고 김치를 조금 챙기고 꽃 그림 카드를 집어 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딩동딩동 딩동딩동”


우리 집에서 십 분 거리에 사는 그는 자다가 부스스한 몰골로 나온다. 아침에 미역국 배달이 올 줄 전혀 생각지 못했겠지. 얼른 종이 가방을 주고 내려왔다.



나는 오늘이 생일인 그에게 미역국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새벽 여섯 시에 눈을 떴고, 오늘이 생일이라는 글을 봤고, 그가 사는 곳이 내 집에서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집 냉동실에 국거리용 소고기가 있었고, 수납장에는 미역국을 끓이기 좋은 미역이 있었다.


마침 카드를 만들 수 있는 예쁜 종이가 있었고 곱게 색칠할 수 있는 색연필이 있었던 것도. 차로 가면 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로 그가 이사를 온 것도 모두 모두 오늘의 깜짝 선물을 위해서인 것 같다. 내가 어제부터 쉬는 날이라 새벽에 집에 있었던 것조차 딱 오늘 이 순간을 위한 것 같다.


좋은 우연과 다행한 우연이 만들어낸 포장지로 선물을 할 수 있었으니 나 또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코로나인 줄 모르고 심한 몸살이라고 생각하며 끙끙 앓던 날 나도 전혀 뜻밖의 깜짝 선물을 받았다. 목장에서 직접 만든 요구르트가 택배로 도착했다. 내가 주소를 알려 준 적도 없는데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분을 통해 주소를 알아냈다고 한다.


후각도 잃고 미각도 단맛, 짠맛 외에는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희한하게도 이 요구르트는 입에 맞았다. 벌컥벌컥 마셨다. 물기도 적당히 많고 단백질도 많은 유제품이니 못 먹고 힘들 때 버티는 힘이 되었다.



살다 보면 깜짝 선물이 도착하는 그런 때가 있다. 사람이 주는 일도 있고 시절이 주는 때도 있고 나무나 꽃과 같은 자연이 주기도 한다.


이런 선물은 아주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와서 웅크린 어깨를 두드려 준다. 굽은 등을 쓰다듬어 준다. 젖은 가슴을 두 팔로 안아주기도 한다.


나도 이런 깜짝 선물을 받아봤다. 처음에는 받은 사람에게 갚으려고 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오늘처럼 선물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준다. 내가 착해서 이러는 거 아니다. 그런 선물을 받아보면 안다. 나도 누군가에게 깜짝 선물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자란다는 것을.



------------------------



담쟁이덩굴



꽉 잡아


옳지, 옳지 그렇게 올라가는 거야

무서워하지 마


크고 작은 이파리들

바람에 맞춰 짝짝짝 손뼉 치면서

새로 돋은 어린잎 응원해 주고 있다


담쟁이덩굴 그렇게 하늘로 뻗어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향기가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