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카푸치노군!

2021 겨울, 다시 문을 연 카페에서

by 최희정




아침에 일어나 멍하니 앉았다가 멍하니 가방을 챙겨 산책을 나섰다. 빌라 단지 담장에 지난여름에 피었던 꽃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뜨거운 팔월 아침마다 빰빰 거리던 나팔꽃은 줄기마다 동그란 복주머니 같은 씨앗주머니가 달려 달랑거린다. 훔쳐가고 싶다. 씨앗 도둑이 되어볼까? 금붕어 같은 노란 꽃잎들을 달고 하늘을 헤엄치던 해바라기는 삐죽한 줄기 끝에 유행지나 버려진 낡은 방석 같은 씨앗 덩어리를 달고 있다. 공원 입구 계단에는 지난 폭설에 만들어진 눈사람이 흔적만 남아있다. 하늘은 맑고 새들은 햇살을 물고 이 나무 저 나무로 날아다니고 있다. 드디어 짧은 산책의 종착지인 동네 카페에 도착했다.


극성을 떠는 코로나 때문에 카페 내에서 음료 섭취가 불가능했던 기간 동안 이 집 카푸치노를 먹지 못했다. 아니 먹지 않았다. 1회용 컵에 담아서 먹고 싶지 않아서였다. 오늘 드디어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내가 애정 하는 카페 총각 싸장님께서 정성껏 빚어주신 카푸치노를 앞에 놓고 앉으니 좋다.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는 도자기잔에 마시거나 일회용 종이컵에 마시거나 상관없다. 그러나 카푸치노는 아니다. 둥그렇고 통통한 잔에 진득하게 추출된 커피를 넣고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붓고 빵실 봉긋하게 부푼 거품을 올리고 사르락 사르락 계핏가루가 뿌려진 모양을 눈으로 흡족하게 감상하고 싶다. 마치 추운 날 집에 돌아와 스르륵 이불속에 몸을 누이면서 이불의 포근함을 만끽하듯 카푸치노의 첫 모금을 들이켜면서 부드러운 거품이 혀를 감싸는 포근함을 느끼고 싶다.


야근이 끝나고 성긴 낮잠을 자다가 휘적휘적 걸어 나와 마시는 카푸치노는 휴식이었다. 지금 그 휴식을 다시 누릴 수 있어서 감격 중이다. 아유, 오랜만입니다, 두 사람의 손님이 인사를 하면서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그분들의 목소리에도 작은 감격이 들어있다. 연이어 젊은 연인 한 쌍이 들어온다. 달콤한 디저트와 커피를 시켜 앉는다. 웃으며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휴일 아침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