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객 전문 상담원 (특징: 일본어 못 함) 1화

by 우나

거짓말은 언제나 단순한 계기에서 시작된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열었고, 관광객들도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중앙역 근처에 살던 나는, 매일 아침 문 앞에 쌓인 쓰레기와 누군가 토해놓은 자국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했다. 밤이면 취한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초인종을 마구 누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월세가 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팬데믹 동안 여행이 뚝 끊긴 틈을 타 관광객용 에어비앤비에 저렴하게 살고 있었던 내겐,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처음에 집주인은 조심스레 월세를 조금 더 낼 수 있냐고 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정도 금액을 못 내면 나가달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다시 네덜란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스물넷, 한국에서는 아직 졸업도 못 한 휴학생 신분이었다. 네덜란드에서의 경력이라 해봐야, 이력서에 쓰기도 애매한 전신마비 환자 간병인이나 성인용품 사이트에서 작가로 일한 경험 정도가 전부였다.


네덜란드에 왔으면 네덜란드어, 적어도 영어로 일을 해야 한다. 내 신조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재고 따질 여유는 없었다. 나는 이때부터 구직 플랫폼에 한국인, 아시안 같은 것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왕 경쟁을 할 거라면, 조금 더 수가 적은 사람들과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었다. 두 번 다시 집에서 쫓겨날 수는 없었다.


일본인 고객 전문 상담원
일본어 가능자 우대 (페이 추가 지급)



그러니 이 공고를 발견했을 때, 거짓말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일하고 싶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유명한 호텔 체인에서, 일본인 고객을 전문으로 하는 단기 콜센터 상담원을 구하고 있었다. 집과도 가까웠고, 일본어를 할 줄 알면 돈까지 더 준다고 했다.


내 이름은 영어로도 발음하기 쉽고, 얼핏 보면 한국 이름인지 티도 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스펠링 표기를 바꿔서, 최대한 '전형적인 아시안 이름'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던 친구를 떠올리며, 취미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상이라고 썼다.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경험을 어학연수 경험으로 바꿔서 적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거짓으로 채워진 이력서였다.




면접 연락은 하루 만에 왔다. 그도 그럴 것이 팬데믹을 피해 고향으로 돌아갔던 외국인들이 대부분 돌아오지 않은 때였기 때문이다. 리쿠르터는 무척 정중하게, 괜찮다면 최대한 빨리 면접 일정을 잡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면접에서 분명 일본어 실력을 확인할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일본어라고는 고등학교 때 배운 몇 마디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면접관으로 일본인이라도 나오면, 그땐 정말 끝장이었다.


나는 리쿠르터의 이름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네덜란드식 이름이었다. 회사 링크드인에도 들어가서 '야마모토', '나카무라' 같은 이름이 있는지 샅샅이 뒤졌다. 중국계, 베트남계 이름은 있었지만, 일본인의 이름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날부터 난 이틀밤을 꼬박 새우며 일본어를 공부했다. 아마 챗지피티라도 있었다면 좀 더 수월했을까? 기본적인 인사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나는 일본어로 자기소개하는 법부터, 면접에서 써먹을 수 있을 말까지 최선을 다해 외우려 애썼다. 그리고 겉보기에 일본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도 하나 찾아냈다.


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냈던 곡의 제목으로, 어째서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라는 뜻이었다.




면접 당일. 그들은 혹시 내가 길을 잃을까, 면접 사실을 잊었을까 아침까지도 친절하게 문자를 보내왔다. 그게 정말 미안했다. 그들이 이토록 기다리는 사람은,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헛된 사람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면접을 보는 날까지도, 집주인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곧 월세를 내야 했다. 그리고 그걸 다 내고 나면, 난 길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몰랐다.


회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항상 역 근처를 지나다니며 본 곳이었다. 규모가 있는 회사엔 가본 적이 없어서,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로 된 문 뒤로 여러 대의 컴퓨터 책상이 겹겹이 늘어서 있었다. 칸막이마다 사람들이 앉아 끊임없이 뭔가 말하느라, 공간 전체가 웅성거렸다. 벽에는 커다란 전자 액자 같은 게 걸려 있었는데, 진행 중인 전화와 대기 중인 전화 숫자가 실시간으로 빠르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기둥 곳곳마다 대형 화분들이 보였다. 공기 정화용인 것 같았다.


리쿠르터는 네덜란드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차를 한 잔 내주더니, 곧 면접관이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넣어둔 쪽지를 꺼내 일본어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이 순간 모든 언어를 다 까먹어도 좋으니, 일본어를 잘할 수 있다면! 그렇게 기도했다.




이때를 떠올리면, 정말 다행이었다고 느끼는 건 두 가지다. 첫째는 내가 네덜란드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아시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내가 네덜란드에서 외국인으로 살며, 유럽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소한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코로나를 핑계 삼아 공격당하던 아시안들의 뉴스로 가득하던 시절과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일본어 문장을 두어 번 정도 읽었을 때, 금발 머리의 남자가 들어왔다. 내 면접관이었다.




그는 원래 담당자가 출산 휴가를 갔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녀, 혹은 그는 일본인이었을까? 어쨌거나 내겐 잘된 일이었다. 그가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한다는 걸 알게 되자, 면접은 거짓말처럼 간단해졌다. 그가 내게 일본에 대해 물은 건 단 한 가지였다. 내가 일본 어디에 있었는지. 난 언젠가 투니버스에서 본, 도쿄의 어딘가 역을 말했다. 실기 테스트를 했어야 했는데, 프로그램이 고장 나는 바람에 그마저도 이메일로 따로 제출하기로 했다.


함께 일하게 된 걸 환영합니다. 그는 영어로 말하며 악수를 건넸다. 어째서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나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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