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편: 도시락 미스터리 쇼퍼

by 우나

네덜란드로 떠나기 직전,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했던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내가 구하던 아르바이트들은 대부분 일주일 이내의 단기 알바였다. 한국에 머무를 날이 얼마 남지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내가 가진 책임감의 길이가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지루한 자동차 안에 몇 시간째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하루라도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 위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싶었다. 딱 그런 심정이었다.


면접 전화를 받게 된 건, 도서관에서였다. 차마 남자친구 때문에 휴학하고 한국을 떠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난, 대학원 준비를 한다는 거짓말을 자주 했다. 어차피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에 갈 생각이었으니,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남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편했다. 학교 도서관은 5층 전체가 문학층이었고, 그곳이 그 시절 나의 주말이었다.


“면접 보고 싶으시죠?”라는 문자를 받은 건, 바로 그 문학층 한켠에 앉아 있을 때였다. 도서관이라고 말하자, 상대는 상관없다는 듯 조용한 계단 쪽으로 나와주실 수 있냐고 했다. 잠깐 통화만 하면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통화에서, 나는 ‘미스터리 쇼퍼’라는 일자리를 얻게 됐다.


업종은 도시락. 일당은 이만 원. 도시락 가게에 가서 미스터리 쇼퍼로 '몰래' 도시락을 먹고 오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미스터리 쇼퍼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간단했고 또 생각보다 복잡했다. 일단 내가 살던 동네에 맞춰 가게가 배정됐다. 가깝다고는 했지만,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노선에 따라 정해지는 시스템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오래 일하다 보면 가끔 집 앞 매장이 걸릴 수도 있다는데, 어차피 오래 일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웃었다.


전달받은 서류에는, 도시락 가게에 도착하기 전부터 ‘찍어야 할 것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그냥 도시락만 먹고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가게 앞 보도의 청결도, 홍보 포스터 위치, 심지어 빗물받이까지 촬영 대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점원들 중 누가 얼마나 빠르게 인사하는지 체크해야 했고, 액세서리를 착용했는지도 체크 대상이었다. 가게 안 의자의 개수, 정수기 컵의 위치, 심지어 바닥의 얼룩 상태까지 적어야 했다.


도시락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해봐야 오 분 남짓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도대체 어떻게 모든 걸 다 찍으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휴대폰을 들고 가게 안을 빙빙 돌다 보면,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일 게 뻔했다.


도무지 자신이 없다고 하자 미스터리 쇼퍼들을 알선하는 팀장, 그러니까 나와 면접을 봤던 그녀가 다급하게 말했다. 몇 년씩 일하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간단한 일이며, 하다 보면 다 요령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 안되면 통화하는 척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통화하는 척,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촬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었다. 혹시라도 사진 화질이 흐리거나, 구도가 어긋나면 전부 다시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점을 꼭 강조하며 꽤 긴 메시지를 따로 보내왔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두 번 오가는 건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영상통화였다. 실제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리며 가게를 보여주는 듯 행동하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연기를 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또 사람들을 속이는가?


퇴근 시간에 걸린 탓에, 도시락 가게까지 가는 데는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계산해도, 이미 최저시급보다 손해였다. 게다가 도시락 가게에 도착한 후에 해야 할 말과 시켜야 할 메뉴까지 정해져 있었고, 그걸 외우면서 가는 내 모습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지하철 안은 각자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 사이에서, 나만 반대로 가고 있었다.


도시락 가게가 있는 곳은, 한 시장 안쪽 구석이었다. 서울에 산다고는 해도 학교 근처나 번화가 쪽만 다녔던 내겐 꽤 낯선 풍경이었다. 이런 서울도 있다는 걸, 서울을 떠나기 전에야 알게 됐다. 길에서 할아버지가 시계를 고치고 있었고, 누군가는 달력 종이를 깔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 사이 난 길을 두어 번 잘못 들었다. 수상해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들고 나온 책은, 그저 무겁기만 했다.


이윽고, 멀리 도시락 가게가 보였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영상통화 준비를 시작했다. 카메라를 켜고 미리 설정해 둔 상황, 그러니까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한국의 도시락 가게를 보여주는 통화를 위해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여긴... 한국의 도시락 가게야.


나는 서류에 쓰여있던 대로 가게 앞 이곳저곳을 촬영했다. 카메라 화면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영상통화를 하면 내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은 손가락으로 가리고, 가상의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가게 앞을 설명했다.


통화가 길어지자, 가게 안에서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유리문 너머로 나를 슬쩍 내다보는 게 느껴졌다. 시장 한복판에서 외국어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지나가던 상인들도 한 번씩 나를 힐끗 바라봤다. 내 일당이 이만 원이라면, 이미 값을 모두 치른 것이 아닐까?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으로,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도시락 가게 안은, 생각보다 비좁았다. 학교에서 시켜준 도시락을 먹은 적은 있어도, 직접 가게에 들어가서 사본 건 처음이었다. 다행히 내 앞엔 먼저 주문하고 있는 손님이 한 명 있었고, 나는 그 틈을 타 조용히 ‘영상통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오 분 남짓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류에 적힌 항목들을 전부 찍어야 했다. 키오스크 안내문, 결제 안내 책자, 정수기, 음료수 냉장고, 의자의 개수, 점원들의 액세서리 착용 여부, 머리망 유무까지.


그때 내 머릿속엔 온통 남자친구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내 가상의 영상통화 상대도 네덜란드에 있는 남자친구였다. 최대한 진짜처럼 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음이 급해지자 내가 설정해 뒀던 상황도 잊은 채 엉뚱한 말만 튀어나왔다.


이건... 한국의 정수기야.


괜히 외국어를 떠벌이며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다 보니, 점원들이나 사장님이 나를 슬쩍슬쩍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아랑곳하지 않는 척하며, ‘그’에게 한국의 음료수 냉장고와 한국의 키오스크, 한국의 바닥재, 한국의 화분, 그리고 한국의 천장을 보여줬다. 형광등을 찍어야 할 땐, 정말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오 분 남짓이 지난 후, 난 어색하게 주문하고 어색하게 도시락을 받을 수 있었다. 소불고기 도시락이었다.




무거운 도시락을 들고 집까지 오는 길, 또 다른 한 시간. 포장 상태까지 꼼꼼히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섣불리 뜯어볼 수도 없었다. 핸드폰을 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손가락이 아팠다.


역 앞 델리만쥬 가게 앞에서는 두 남자가 싸우고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누가 새치기를 했다는 모양이었다. 둘은 고래고래 욕을 퍼붓고 있었고, 그 앞에서 아르바이트생은 곤란한 얼굴로 델리만쥬를 굽고 있었다. 묘한 풍경이었다.




겨우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홉 시. 자정까지는 보고서를 보내야 했다. 배가 고팠지만 보고서를 쓰는 게 먼저였다. 밥을 사 먹을 돈을 받으려면, 이 보고서를 써야 했고, 보고서를 쓰려면 도시락을 먹지 말아야 했다.


나는 침대 위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일단 사진을 찍었다. 단무지 개수와 햄이 일정하게 잘린 크기, 소불고기에 야채가 꼼꼼하게 들어있는지 같은 내용을 함께 썼다. 한 시간여 길을 오느라 도시락은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고, 혹시라도 그게 그 가게 사장님에게 악영향이 갈까 봐 나는 도시락을 다시 정리했다.


그 후에는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을 다운 받아 캡처를 했다. 가게 밖부터 안, 심지어 화장실까지 다 내가 찍은 것들이었다. 가게 안이 좁았던 탓에, 영상 곳곳마다 사장님과 점원들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친절도 같은 것을 최대한 좋게 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모든 보고서 작성을 끝내고, 내가 사 먹은 소불고기 도시락의 영수증과 계좌 정보까지 보내자 이미 열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책상 한편에 놓아두었던 소불고기 도시락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렇게 먹는 소불고기 도시락의 맛은, 그날 내가 번 돈 이만 원의 맛 그 이상이었다.


그 후 팀장에게서 몇 번 더 연락이 왔으나, 답장은 하지 않았다. 정말 이 일을 몇 년이나 꾸준히 하는 사람이 있긴 한 걸까? 더 이상 서울에 갈 일도, 그 시장을 갈 일은 더더욱 없겠지만. 그날 내가 연기하고, 숨기고, 평가했던 모든 장면 위에 남은 건 식은 소불고기 도시락 하나였다.


이상하게도 그 맛은 내가 벌어본 어떤 이만 원보다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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