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했던 기이한 아르바이트들 중, 기억나는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때는 2017년, 내가 네덜란드로 떠나기 직전의 일이다.
그 무렵,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R. 내가 그동안 알고 지냈던 친구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예체능 계열이었던 걸 생각하면, 인터넷 방송을 준비 중이던 그녀는 꽤나 낯설고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야말로 '조막만 한 얼굴'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은 얼굴이나, 두꺼운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화려한 이목구비가 그랬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R과 나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랑에 대한 무모함이나, 세상 앞에 그대로 버티고 서있는 모습 같은 것들. 그래서 더 마음 놓고 많은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때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하던 내게, R은 아르바이트 하나를 소개해줬다.
아프리카라는 방송에서 채팅 치는 일인데, 한번 해볼래?
그녀가 곧 '여캠'으로 데뷔를 하는데, 회사 차원에서 채팅을 쳐줄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유튜브나 몇 편 보던 게 전부였던 난, ‘아프리카’라는 플랫폼이 뭔지도 잘 몰랐다. 당시 우리 학교 출신 중에 꽤 유명한 인터넷 방송인이 있다는 얘기를 몇 번 들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집에서 채팅만 치면 돈이 들어온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R의 회사에서 그녀에게 필요한 카메라 장비며 방송용 인테리어를 정비해 주는 동안, 나 역시 ‘아프리카 여캠 채팅 알바’로서의 준비를 착실히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지는 일이었다. R은 섹시 컨셉으로 데뷔할 예정이라고 했고, 그런 방송을 여자가 본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지만, 어설프게 티가 나면 되려 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리에 섞여야 했다. 다시 말해, 남자가 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웠다.
여캠 방송을 시청하는 남성들의 말투를 흉내 내기 위해, 온갖 커뮤니티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터넷에 익숙한 남자들이 자주 쓰는 말들, 유행어 같은 것들을 익혔다. 보통 2, 30대의 남자들이 서로를 '형님'이라고 부르거나, 반말 섞인 존댓말을 쓴다는 사실도 배울 수 있었다.
R은 하루에 5시간 넘게 방송할 계획이었고, 난 그 시간 동안 매일 그녀의 채팅방에 들어가 채팅을 쳐야 했다. 나는 그녀의 ‘열성팬’이 되어야만 했지만, 흔히 말하는 별풍선 후원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난 어디까지나 아르바이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일 방송에 참여하면서도, 후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바로 미성년자 남학생이었다.
나는 그렇게, R의 방송 안에서 ‘10대 초반의 남학생’이 되었다. 학원에 가기 전 방송에 들러 학업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인터넷 방송, 그중에서도 ‘여캠’이라고 하면 따라붙는 편견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그들이 돈을 아주 쉽게, 그것도 아주 많이 번다는 것이다. R의 첫 방송을 지켜본 날, 나는 그 말이 어떤 방식으로는 맞고, 또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까운 친구가 인터넷 방송에 나온다는 것, 그것도 섹시한 옷을 입고 나온다는 건, 신기하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다. 평소 털털한 성격인 R은, 방송에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오빠'라고 불렀다. 회사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고 했다. 나는 연습한 대로 남자인 척하면서, R의 외모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누나'라고 부르며 몸매를 칭찬하는 일은, 괴상하다 못해 어딘가 모르게 묘한 느낌이었다. R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의 예쁘장한 여자애가 혼자 앉아있으니, 곧 시청자들이 들어왔다. 내가 여기서 놀랐던 건, 바로 시청자들의 태도였다. 무척 무례하고, 성적인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만원, 이만 원 정도의 돈을 보내면서 R의 외모를 성희롱 수준으로 칭찬하거나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R은 내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으니 그들을 더 북돋으라고 말했다. 분위기를 타야 후원이 더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날 R은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만일 그녀가 받은 모든 성희롱이나 욕설을 고소한다면, 합의금으로 저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액수이기도 했다. 모든 게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선 분명히 돈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채팅을 치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었다.
아, 형님! 이 X은 몸매 라인이 끝내줍니다. 춤 한 번 시켜보십쇼.
이른바 R의 방송 컨셉은, '중년 남성들의 짓궂은 농담에 억울해하는 예쁜 여자애'였다. 어디서 소문이라도 났는지, 다들 한 마디씩 건네려고 몰려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인터넷 방송을 자주 보는 사람들은 서로 오픈 채팅을 하거나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며 친분을 유지한다고 했다. 아마 그런 데서, 막말을 던져도 받아주는 방송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돌았던 모양이다.
시청자들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지금 룸살롱에 와있다느니, 아내에게 들키면 큰일 난다느니 하는 말을 쏟아냈다. 그런 사람들이 내 친구를 괴롭히는 걸 보고 있으려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성희롱 쪽으로 대화 주제가 흘러갈 때면, 난 주제를 돌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내 존재는 점점 더 튀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누군가 내 닉네임을 언급하며 물었다. “야, 너 혹시 여자 아니냐?”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나는 시청자들이 자주 쓰는 말투를 흉내 내며, 그 안에 어떻게든 섞여들 수밖에 없었다. R과 나는 주말이면 함께 카페에 가고, 가끔은 밤을 새워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 친구를 저런 식으로 말하다니. 나는 채팅창에 말을 던지면서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내 채팅에 누군가 별풍선을 쐈고, R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R은 내게 따로 메세지를 보내, 그런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한마디로 R은 도무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기분이 나쁜 건 맞지만, 어차피 자기를 진짜 아는 사람들도 아니니 별상관없다고 했다. 후원만 해준다면 괜찮다는 것이었다. 난 R이 얼마나 마음이 여린지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더더욱 그녀가 다르게 보였다. 어떤 분야든 간에, 얼굴을 드러내고 방송을 하려면 저 정도는 돼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방송에 들어가 채팅을 쳤다. R은 틱톡 노래 같은 걸 틀고 춤을 추는 리액션을 자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오우야" 같은 말을 쓰는 게 내 일이었다. 형님, 누나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면서, 그 안에서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설정한 나이는 10대 초반. 덕분에 수능이나 모의고사 같은, 학생이 아니면 모를 법한 얘기들은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가끔 20대 초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시청자들이 아직 이런 거 볼 나이가 아니라며 나를 타이를 땐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만든 가짜 역할에, 누군가가 진짜로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만들어낸 ‘남학생 팬’은 어느새 단골 시청자가 되었고, R은 그런 나를 귀엽다며 방송 중에 자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방송은 활기를 띠었고, R이 버는 돈도 점점 늘어났다. R은 고맙다며 가끔 비싼 밥이나 선물을 사줬다. 방송 밖에서 매일 방송에서 보는 R을 만나자 신기하기도 했다.
R과의 유대감이 깊어짐과 동시에, 내가 이 판에 완전히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청자들이 남긴 말에 웃고, 누가 들어오면 반가워하고, 별풍선 수치에 따라 내 기분도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일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혹시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봐, 휴대폰에서 어플을 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시청자 중 한 명이 내게 쪽지를 보냈다.
야, 혹시... 너 그쪽 사람이냐?
그날 이후, 진짜 이상한 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