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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익준 Nov 20. 2018

식어버린 마음을 이제사 덥히려니

 몸에 닿는 물이 자꾸만 차게 느껴져 더 뜨거운 쪽으로 수도꼭지를 밀어붙인다. 금방 뜨건 물이 떨어진다. 겉 피부가 빨갛게 되고 말아야 안쪽까지 따끈하게 데워지려나. 미지근한 물로 목욕하기를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자꾸 뜨거운 물을 찾는다. 계절 탓을 하려고 보니 자리에도 없는 겨울 탓을 하기 뭐하다. 출발은 했지만 길이 막히는지 조금 더 있어야 온다는데, 결국 제일 만만한 나이 탓을 해본다. 찬 것을 그리 좋아하던 녀석. 냉동실에 돌얼음을 가득 채우고 한 겨울에도 차디찬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약간 차갑다 싶은 미지근한 온도로 샤워를 즐기던 소년은 작년즈음부터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거울 속엔 왠 '젊어 보이는'(나름의 기준에 따르면) 30대 사내가 서있다. 나이는 못 속인다는 생각을 벌써, 그것도 샤워를 하다가 덜컥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차갑던 시절의 나, 그러니까 '소년'은 뜨거움을 식히고 있던 중 이었는지도 모른다. 속 안에서 끓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저 속은 사시사철 펄펄 끓으니 찬물을 들이붓지 않고 어찌 배겼을까? 그 끓던 마음은 흔히 말하는 '욕심'혹은 '열정', 또는 '치기' 셋을 조금씩 버무린 정도의 느낌이었음을 기억한다. 안에서 열이 나니 바깥에서야 폭풍우에 쌀쌀한 바람이 불든, 볼링공만한 우박에 얻어맞든, 서리를 온 몸에 두르든, 비에 쫄딱 젖어 들어오든 추울리가 없었다. 밖에서 뭍혀온 추위는 대충 미지근한 물에 씻겨내려보내고, 터벅터벅 걸어나와 냉장고에 찬물 한잔 들이키면 그것으로 추운 것은 단번에 원상복구되던 시절이다.


 이제는 폭풍이든, 서리든 간에 추운 것은 구별할 필요도 없이 그저 매 한가지다. 그냥 날이 추우면 몸도 춥고 시리다. 복숭아뼈까지 내려오는 패딩에 속바지로 몸을 둘러싸도 빈틈을 찾아 바람이 콕콕 찌르고 들어온다. 이유를 찾아보자면 아마도 추위에 민감한 쪽 보다는 속에서 끓던 것이 식은 쪽이다. 그래서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이 시리고 차다. 바깥에서만 데우다 보니 자꾸 뜨거운 물만 많이 뿌린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마음을 어떻게든 끓여보려고 하는데 이미 식은 것을 다시 덥히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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