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버둥은 배신하지 않았다. 몇 주 뒤, 편의점 야간 파트타임 자리를 얻었다. 아르바이트 이력서에 토익점수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시대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다. 낮과 밤을 포기했지만 그 대가로 죽지 않을 권리를 얻었다. 생활이 극적으로 변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위장은 조용해졌다. 하루가 180도로 뒤바뀐 삶은 사라지지 않는 피로를 몰고 왔지만, 가리고 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재판은 지지부진했다. 미숙 아줌마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여전히 건물주를 탓하고 있다고 했다. 사기 의도가 없었다며 기소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항소를 했고, 그 때문에 변호사도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형량을 줄이려던 변호사의 전략은 아버지의 고집 앞에서 무력해졌고, 재판은 헛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재판은 아버지의 판결을 앞두게 되었다.
“민호야, 잘 지내니? 아줌마야.”
판결 전날 밤, 미숙 아줌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 네… 아줌마. 안녕하세요…”
진열대를 정리 중이던 나는 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너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니?”
“아… 목소리요? 하루 종일 말을 안 해서 목이 잠겼나 봐요.”
설명은 피로를 부른다. 적당한 핑계를 골라 던졌다. 수화기 너머로 공허한 참견이 이어졌다.
“아유~ 왜 사람이 말을 안 하고 살아~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대화도 하고 그래야지~”
“아… 네…”
“근데 민호야. 혹시 내일 시간 되니?”
나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비어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의 구석을 응시했다.
“내일이요? 아… 재판 때문에 그러시나요?”
“응, 내일이 아빠 판결 선고 나오는 날이잖아~ 혹시 민호도 같이 갈 수 있나 해서~”
“아…”
알맞은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재판 일주일 전부터 다시는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다는 혐오와,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다는 기묘한 갈증이 교차하고 있던 중이었다.
“혹시 바쁘니?”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제가 왜 굳이 거길 가야 하나 싶어서요… 좀 고민 돼요.”
“에이~ 그래도 아빠인데 가 보는 게 좋지 않을까? 민호가 아들이잖아~”
아들. 그 신경질적인 단어가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내 심장을 꿰뚫었다. 조정실에서 마주했던 이 점례 아줌마의 악에 받친 비명이 다시금 귓가에 맴돌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부정할 수 없는 혈연의 굴레. 아무리 도망치려 발버둥 쳐도,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결국 아버지의 파편일 뿐이었다. 몇 날 며칠을 괴롭히던 고민은 아들이라는 한마디에 허무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네… 가야죠.”
도망칠 곳은 없었다.
다음 날, 법정 312호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무거운 문 너머에서는 아버지의 재판에 앞서 이름 모를 청년의 판결이 한창이었다.
법원은 입구를 지날 때부터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가방 속을 무심하게 투시하는 X-RAY 검색대, 셔츠의 주름을 칼같이 세워 입은 변호사, 곧 경매가 열릴 법정 앞에서 낮은 소리로 웅성거리는 군중들까지. 모든 것들이 생경한 풍경으로 망막에 맺혔다. 피고의 신분으로 법원을 찾아왔을 때는 판결이 내려진 것도 아닌데, 죄의식에 압사당해 있었다. 주변을 살필 여력조차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타인의 불행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의 신분이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보안 요원들의 태도 역시 전보다 부드러웠다. 명의(名義)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은 이들에게, 법원은 생각보다 다정하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조용히 방청인석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단상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술김에 옆 테이블에 있던 남자의 코뼈를 주저앉혔다고 했다. 시비의 발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판사는 서류를 기계적으로 넘기며 중얼거리듯 판결문을 읊었다. 소리는 작은 데다 빠르기까지 했고, 그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정의를 집행한다기보다는 밀린 업무를 털어내려는 모습이었다. 퇴근 시간에 쫓기는 애달픈 월급쟁이 A. 단상 위에 놓인 권위 또한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판결은 순식간이었다. 남자의 행위에 이견이 없다는 판사의 짧은 부연 설명 뒤로, 징역 6개월이 선고되었다. 그와 동시에 방청인석에서 무너지는듯한 비명이 터졌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중년 여성의 신파가 법정의 정적을 깨트렸다. 이어서 군중의 웅성거림이 소음처럼 번졌다. 판사는 잠시 재판을 중단하더니 남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을 향해 무언의 시선을 던졌다. 정숙을 요구하는 경고였다. 이어서 한 번만 더 소란을 피우면 강제 퇴정시키겠다는 사무적인 협박이 덧붙여졌다.
재판이 재개됐다. 판사는 남자에게 재차 6개월을 선고했고, 기계적이고 익숙한 말투로 항소 절차를 설명한 뒤 법정에서 퇴정시켰다. 나는 그 무미건조한 공정을 보며 깨달았다. 법정은 영화 속의 화려한 무대가 아니었다. 치열하게 오가는 주장과 반론 같은 건 없었다. 그곳은 누군가의 불행을 서류로 분류하고 처리하는 지루한 공장이었다. 우리의 무미건조한 인생이 그러하듯 말이다.
다음은 아버지의 차례였다. 아버지는 아까부터 피고석 뒤에 있는 대기석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빠른 재판 진행을 위해 다음 사람이 미리 대기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마치 조립 부품처럼. 미숙 아줌마가 법정 문을 밀고 들어온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주차 자리가 없어서 늦어졌다는 흔해빠진 변명이 뒤따랐다. 재판이 시작되자 판사가 아버지의 사건 번호와 이름을 불렀다. 먼저 퇴정한 남자의 자리로 옮겨 앉은 아버지가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네!”
우렁찬 대답이 울려 퍼졌다. 씩씩한 목소리가 마치 훈장이라도 받으러 온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몸을 감싼 수감복과 손목을 옥죄고 있는 하얀 포승줄이 아버지의 현주소를 증명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어 나무로 된 단상 앞에 섰다.
판사의 입술이 다시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여전히 낮고 빠른 소음이었다. 아무리 신경을 곤두세워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전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건에 걸쳐…’, ‘의도적으로…’와 같은 몇몇 음절만이 파편이 되어 허공을 떠다녔다.
“따라서, 피고인 이 범재를 징역 2년에 처한다.”
고맙다고 해야 할까. 판사는 마지막 형량만큼은 또렷하고 큰 발음으로 내뱉었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는 기괴하리만치 당당한 태도로 대답했다. 불필요할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였다.
“2년은 너무 많은데… 한 1년 생각했는데… 변호사가 1년 정도로 해 준다더니 아무것도 한 게 없네… 돈만 날린 거잖아… 아빠 어떡하니, 2년을 어떻게 지내… 거기서 필요한 영치금도 만만찮을 텐데…”
미숙 아줌마의 우는 소리가 옆자리에서 새어 나왔다. 지긋지긋한 신파의 재방송이었다. 나는 판사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도 판사는 다음 공정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는 듯했다. 입으로는 아버지에게 항소 절차를 읊조리고 있었지만, 눈은 이미 책상 위에 쌓인 다른 서류들에 꽂혀 있었다.
판결은 허무하고도 순식간에 끝이 났다. 남자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퇴정을 알리는 명령이 내려졌고, 판사는 책상 위에 쌓인 서류 중의 하나를 손에 집어 들고 페이지를 넘기며 훑어내렸다. 재판의 끝과 시작의 사이를 틈타 법정이 다시 어수선해졌다. 어떤 이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다른 어떤 이들은 그대로 법정에 남아 다음 재판을 기다렸다. 판사는 이 소란이 익숙하다는 듯, 여전히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볼일이 없어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군중의 소음을 틈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법정 밖으로 나왔다.
판결은 끝이 났지만, 혀끝에는 여전히 떫은 맛이 남았다. 공기 중을 떠다니던 판사의 말 중 ‘전과가 있다’든가 ‘의도적으로’라는 퍼즐 조각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2년. 아줌마는 그 숫자에 안타까워하며 신음했다. 하지만 내게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저 인과에 따라 산출된 건조한 결과물일 뿐이었다. 후에 ‘아들이라면 마땅히 슬퍼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훈계를 들었을 때도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속으로 의아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더는 아무것도 슬프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쾌한 것도 아니었다.
아까 코뼈를 부러뜨린 남자의 어미도 그랬다. 나는 여자의 탄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해자의 벌에 대해 슬퍼하는 것은 지독하게 이기적인 연극이었다. 제 자식의 형벌 6개월을 피해자의 고통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의 어미. 법정 어딘가에 있었을지 모를 피해자의 가족은 어미의 울음소리에 다시 한번 난도질당했을 게 분명하다. 미숙 아줌마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줌마는 명백하게 피해자인 내 앞에서, 가해자를 향한 안타까움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그것은 배려의 부재라기보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이 마비된 자의 무정함에 가까웠다.
그날, 내 눈에 비친 모든 인간은 뒤틀려 있었다. 진짜 피해자의 얼굴은 지워졌고, 각자가 세상에서 유일한 희생양인 양 굴었다. 제 일상의 균열만을 비명으로 호소하는 일방적인 인간들.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구역질이 났다. 그러다 문득, 나 역시 그 비열한 집단의 일원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이닥쳤다. 발밑이 꺼지는 듯한 아찔한 공포였다. 종잡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의 파도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어디로든 좋으니 증발해 버리고 싶었다.
“…괜찮니, 민호야?”
주차장으로 향하던 내내 침묵하고 있던 나에게 미숙 아줌마가 말을 건넸다. 아줌마는 내가 아버지의 재판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틀린 짐작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받은 충격이 아줌마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아, 네. 괜찮아요.”
응당 그래야 할, 적당한 대답을 던졌다.
“그래? 그럼 다행이구… 재판 보느라 고생했는데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아줌마가 사 줄게.”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30분이었다. 재판이 시작되고 끝나는 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낼 2년의 세월이 고작 10분이라는 시간 만에 기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아줌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르바이트 출근까지 시간은 충분했고, 공짜 밥을 거절할 만큼 내 자존심은 배부르지 않았다.
“여기야. 먹고 싶은 걸로 2인분 시켜놔. 아줌마는 주차하고 들어갈게.”
자동차는 번화가 근처에 있는 먹자골목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리자 아직은 후텁지근한 열기가 피부에 들러붙었다. 전날 밤의 한바탕 소란이 끝난 골목은 오후의 태양 아래 눅눅하게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줌마가 알려준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한낮에도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는 가게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른 메뉴는 모두 낯선 것들뿐이라 익숙한 이름인 갈비로 2인분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물을 들이켜며 기다리고 있자, 아줌마가 들어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타이밍 좋게 선홍색 살점들이 은색 접시에 담겨 나왔다. 양념이 배지 않은 생갈비의 육질이 낯설었다. 아줌마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집게로 쥐고 고기를 불판 위로 던졌다.
핏기가 가신 살점은 점차 노릇한 냄새를 풍기며 갈색으로 변해갔다. 고기를 뒤집고 버섯이며 김치, 마늘을 올리는 손놀림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나는 바삐 움직이는 아줌마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얼굴을 찔러댔다.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물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자, 먼저 먹어.”
아줌마가 잘 익은 고기 몇 점을 앞접시에 담아 건넸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접시를 받아 철제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자 부드러운 지방의 풍미가 혀끝을 감쌌다. 기분 좋은 맛이었다.
“어때, 맛있지?”
“네, 맛있네요.”
“여기가 이 동네 맛집이야, 맛집. 아줌마는 엄청 자주 오거든. 가격도 싼 데 고기 질도 좋아. 민호도 자주 오고 그래~ 진호도 데려오고.”
“아, 네.”
짧게 대답했다. ‘그럴 돈이 있다면요’라는 말은 씹고 있는 고기와 함께 목구멍 뒤로 넘겼다. 그 뒤로, 한동안 대화는 끊겼다. 불판 위에서 기름이 튀는 소리와 쇠젓가락 부딪치는 소리만이 침묵을 대신하고 있었다. 아줌마는 바쁘게 손을 놀렸다. 고기를 기름장에 찍었다가 쌈장을 덧칠한 다음, 상추를 펴서 그 위에 얹었다. 입안 가득 살점을 밀어 넣고 우적거리는 동작들. 아줌마는 그 원초적인 행위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나 또한 잠시나마, 텁텁한 현실을 고기 향 뒤에 숨겨두기로 했다.
“근데 민호야.”
“네?”
고기 2인분이 다 사라질 때쯤, 아줌마가 툭 말을 던졌다.
“너 전에 아줌마가 최경자라는 사람에 대해서 물어봤던 거 기억나니?”
최경자. 두서없이 튀어나온 이름이 열기 위에 흩어졌다.
“아, 네…”
기억의 저편에서 희미한 이름 하나가 떠올랐지만, 그것뿐이었다.
“아줌마가 좀 알아봤는데, 그 사람이 네 아빠가 만나고 있던 여자인 거 같더라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빠 핸드폰 있잖니. 그걸 구치소에서는 못 갖고 있으니까, 아줌마가 아줌마 주소로 해서 받아서 확인해 봤거든? 근데 아주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였나 봐. 문자에 사랑한다 뭐 한다, 난리도 아니더라고.”
이야기가 대체 어디로 흘러가려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아, 네.’라며 맞장구를 쳤다.
“아줌마는 아빠를 그렇게 도와줬는데, 뒤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니? 그치?”
“네… 그건 그렇네요…”
다시 한번 적당히 맞장구를 쳤지만, 내 관심사는 불판 위에 까맣게 그을린 갈빗대에 머물러 있었다. 아버지가 누굴 만나든, 그들이 어떤 관계이든 내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아줌마의 고자질은 끝날 줄 몰랐다. 아줌마는 아버지와 최경자 씨가 주고받은 은밀한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나에게 고발했다.
따분했다. 무언가 내 흥미를 끌 만한 것이 없을까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줌마와 나 둘 이외에 아무도 없는 식당 안에, 관심을 가져볼 만한 게 있을 리 만무했다.
“내가 말이지… 그때 아빠가 제주도로 여행도 데려다주고 그래서, 그걸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다른 여자한테도 그러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
“제주도요?”
처음으로 아줌마의 말에 반응했다. ‘제주도’라는 생뚱맞은 말 덕분에.
“응, 제주도. 찜질방 닫기 2개월 전쯤인가… 나랑 같이 여행 가자고 해서 제주도로 다녀왔었거든. 3박 4일로… 민호는 몰랐니?”
“아…”
“아빠가 민호한테 다 말해두고 온 거라고 했었는데?”
나흘간의 공백, 그리고 제주도. 흩어져 있던 편린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기 시작했다. 찜질방에서 쫓겨나기 몇 달 전 예고도 없이 사라졌던 아버지. 문자도, 전화도 닿지 않던 나흘간의 실종. 적막 속에 홀로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나의 모습.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하며 끔찍한 상상으로 밤잠을 설치던 시간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바빴다’는 세 글자로 침묵하던 무표정한 얼굴. 그 모든 장면이 맞물려 움직일 줄 모르던 육중한 톱니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결론.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화는 나지 않았다. 명치 끝에서 새어 나온 허탈한 웃음만이 잠시 경련처럼 일그러졌을 뿐이었다. 비웃음은 금세 잦아들었다. 찰나의 소란 뒤로 아줌마의 소음이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면회하러 가서 대판 뭐라고 했더니 오히려 화를 내더라고. 그런 관계 아니라고 괜히 오해하지 말라나. 근데 문자 내용이 이렇게 빤히 남아 있는데 누가 믿겠니? 그래도 거기 들어가서 의지할 데라곤 나밖에 없으니까 아주 나한테 매달리는 모양이더라고. 잘해보면 나만 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잖아. 민호도 알지?”
“아, 네….”
“그래. 아줌마랑 아빠랑 잘 되게 민호가 좀 많이 도와줘.”
“제가… 도울 게 있기는 할까요…”
“아줌마랑 친하게 지내주기만 해도 아줌마 도와주는 거지~”
“도와주고 계신 건 아줌마죠… 중고차도 그렇고, 변호사분 소개해 주신 것도 그렇고요.”
“에이, 그게 뭐 도와준 거라고. 아들 같으니까 그냥 하는 거지.”
“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다 먹었으면 일어날까?”
집까지는 아줌마가 태워다 줬다. 차 안에서도 아줌마의 입은 쉴 줄을 몰랐다. 아버지와의 관계, 배신, 그리고 미련. 나는 기계적인 끄덕임과 추임새로 그 모든 소음을 받아냈다. 공허한 대답으로 일관했지만, 아줌마는 모르는 듯했다. 오히려 다행인지도 몰랐다.
대로변에 차를 세운 아줌마는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멀어졌다. 짧은 눈인사로 대신하고 동네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 발을 들이자마자 긴 하품이 터져 나왔다. 지루함이 육체를 잠식하고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평소에 가지 않던 주택가 골목 쪽으로 발을 옮겼다. 조금 덥기는 했지만, 걷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세제 거품을 씻어내는 세차 물줄기, 가지마다 주황빛 무게를 더해가는 감나무… 건조하지만 생생한 풍경들이 가을 햇살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재판장의 시멘트벽 냄새와 아줌마의 끈덕한 수다로 오염되었던 의식이 조금씩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산책을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현관의 녹슨 우편함 앞에 멈춰 섰을 때, 내 이름이 박힌 낯선 봉투 하나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발신인에는 ‘세무서장’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