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야, 아줌마야. 잘 지내니?”
11월. 초겨울의 냉기를 뚫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의 선고 이후, 미숙 아줌마는 나의 응답 여부와는 상관없이 연락 횟수를 늘렸다. 대화의 궤적은 늘 일정하게 겉돌았다. 생활, 동생, 식사. 의미도 없는 질문들이 어떤 날에는 글자로, 어떤 날에는 소리로 핸드폰 너머에서 소음처럼 쏟아졌다.
“네, 잘 지내요.”
“밥은 먹었니?”
“아뇨 아직요.”
“이긍… 밥은 잘 챙겨 먹어야지.”
“이따 일 나가서 먹으려고요.”
“일? 아~ 알바?”
“네.”
“그래~? 잘하고 있네! 힘들진 않니?”
“아르바이트가 다 똑같죠 뭐. 다를 거 없어요.”
“그래, 요즘 날씨 엄청 추워졌는데 감기 조심하고~ 아빠 면회 갔다 오면서 생각나서 연락해 봤어.”
“면회요?”
“응~ 아빠가 이제 구치소에서 교도소로 이송되셨거든.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다녀오고 있어~”
“네…”
“아빠가 민호 얘기 많이 하더라…”
“…”
“면회 한 번 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던데… 다른 사람들은 가족이나 자식들이 면회 오고 그러니까 그게 부러우셨나 봐… 계속 그 얘기를 꺼내시더라고…”
“아…”
“민호도 한번 안 올래? 많이 바쁘니?”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 내기가 좀 힘들어서요…”
“그래도 아빠인데, 시간 내서 한 번 보러 오는 게 낫지 않을까?”
질문은 같은 궤도를 맴돌았다. 아줌마가 원하는 문장을 뱉어내기 전까지, 핸드폰의 통화 종료 버튼은 오늘도 작동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차가운 공기를 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입력해야 할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남은 건 내 입으로 직접 결괏값을 출력하는 것뿐이었다.
“네… 시간 되면요. 쉬는 날 생기거나 하면 가 볼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출근 잘하고~ 또 연락할게~”
문제를 맞히자, 통화는 즉시 종료되었다. 이불을 개고 출근을 준비했다. 욕실 타일에 반사된 냉기가 피부 안쪽을 찔렀다. 수도꼭지를 틀자 뜨거운 물이 아가리에서 쏟아졌다. 비용을 지불하는 한, 방 안의 시스템은 멈추지 않았다. 형광등이 켜지고, 전자레인지가 돌아갔다. 책상 서랍에 처박아둔 고소장의 숫자들이 떠올랐다. 방구석에 쌓아둔 아버지의 거대한 짐덩어리가 보였다. 노선은 그대로였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박스는 기계에서 기계로 저항 없이 실려 갈 뿐이었다.
덥힌 몸에 낡은 점퍼를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현관 우체통에 하얀 봉투가 꽂혀 있었다. 발신인 최 문기.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그 자리에서 봉투를 뜯었다. 이름은 낯설었지만 숫자는 익숙했다. 2,000만 원. 보증금. 고소장. 이 점례와 같은 서식이었다. 마찬가지로 말미에는 계약서가 증거로 첨부되어 있었다. 인감 대신 붉은 지장이 찍혀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최 문기. 남탕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아저씨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법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전에 작성했던 답변서 파일을 불러온 다음 이름과 금액 칸만 지웠다. 방금 받은 고소장에 있던 데이터를 빈칸에 그대로 채워 넣었다. 제출 버튼을 눌렀다. 업로드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다시 신발을 신었다.
편의점에 도착해 폐기 상품 더미를 뒤져 김밥 한 줄을 골랐다. 점장은 묵인했다. 규정 위반이었지만 한 끼 식비가 0원으로 처리되었다. 포장을 뜯고 꽁다리를 베어 물었다. 차가운 김밥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카운터에 있는 앉아 맞은편의 벽시계를 보았다. 2시 31분. 바늘은 아까부터 제자리였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자 도어벨이 울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매일 같은 담배를 사던 남자는 오지 않았다. 빗자루를 들었다. 타일 바닥을 쓸고 냉장고 매대의 캔 음료 라벨을 정면으로 돌려놓았다. 시계는 여전히 2시 31분이었다.
“이 민호!”
카운터 뒤의 담배 매대를 정리하던 중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보았다. 도어 벨의 종은 움직이지 않았다. 냉장고의 낮은 진동음만이 실내를 채웠다. 순간 가슴 안쪽이 짓눌렸다. 심장 박동이 늑골을 때렸다. 냉장고 소리가 시야 밖으로 밀려나며 이명이 터졌다. 가슴을 손으로 쥐고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시야가 검게 일렁였다. 평형감각의 소멸.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머리가 접이식 문에 부딪히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손을 휘저었지만 잡히는 것은 공기 뿐이었다. 쿵 소리가 났다. 등 뒤로 또 한번의 충격이 전해졌다. 매대를 따라 미끄러진 몸은 그대로 바닥과 충돌했다. 그리고 암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로 담뱃갑들이 쏟아졌다. 정수리를 때리는 종이 상자의 타격음이 일정한 박자로 반복되었다.
“야, 민호야. 매장에서 쓰러지면 어떡하냐? 너 크게 다쳐서 산재 처리라도 하게 되면 내 입장이 어떻게 되겠어. 일 늘려달라고 해서 배려해 줬더니 일하다 쓰러지고 말이야… 너 혹시라도 여기서 다치고 그래서 문제 생기면, 나도 계속 알바 쓰기 힘들어져. 뭔 말인지 알지?”
오전 9시. 교대하러 온 점장은 내 머리의 검붉은 혹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됐고, 병원이나 가 봐. 오늘 저녁엔 나오지 말고. 내가 카바칠테니까.”
점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오늘 저녁에는 나오지 마라’. 문장은 고막을 거쳐 ‘앞으로는 나오지 마라’는 통보로 번역되었다. 머리의 통증은 뒷순위였다. 당장 하루 일당의 손실값이 먼저 머릿속에서 산출되었다. 강제로 주어진 공백. 24시간의 유예 기간이 발생했다.
퇴근길, 정형외과에 들렀다. 초진 신청서를 작성하고 대기석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X-RAY를 촬영했다. 그리고 다시 대기석. 병원 바닥에 깔린 대리석이 천장의 백색광을 튕겨내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모니터 속 흑백 사진을 가리켰다. 단순 타박.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약 꾸준히 바르시고, 상태는 계속 체크하세요. 혹시라도 구역질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병원으로 오시고요.”
의사가 덧붙였다. 추가 검사 불필요. 진료실을 나와 치료실로 향했다. 간단한 소독과 함께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 하나가 붙었다. 처치는 그걸로 끝이었다.
수납을 기다리는 동안 영수증에 찍힐 숫자 단위를 계산해 보았다. 1만 3천 원. 비용은 예상보다 적었다. 옆 약국에서 3일 치 약 봉투를 받았다. 패딩 주머니 깊숙이 봉투를 쑤셔 넣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얀빛이 눈 안쪽을 찔렀다. 아침 햇살이었다. 시린 통증이 밀려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거리를 나섰다.
“어? 민호 오빠?”
눈의 통증이 잦아들 무렵,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렸다. 각 잡힌 스커트와 블라우스, 검은 코트를 걸친 여자가 서 있었다. 환청은 아니었다.
“민호 오빠 맞지? 아닌가? 혹시 이 민호 씨 아니신가요?”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또각거리는 구두 굽 소리가 보도블록을 두드렸다. 나는 여자의 얼굴을 뚫어져라 살폈다. 낯익은 이목구비가 기억을 떠올렸다.
“아, 네. 맞긴 한데…”
“아! 맞네! 아씨, 잘못 본 줄 알았잖아. 오빠 나야! 슬기! 이 슬기!”
슬기. 이름과 함께 흐릿했던 얼굴에 초점이 맞았다. 경영학과 후배. 졸업 후에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귀 뒤로 넘긴 단정한 머리와 정장은 기억 속의 모습과 거리가 있었지만, 얼굴은 일치했다.
“오빠 잘 지내지?”
슬기가 어깨를 툭 쳤다. 가벼운 터치였다.
“아, 슬기구나. 오랜만이다, 야. 나야 뭐, 잘 지내지. 넌 어떻게 지내?“
“나야 맨날 똑같지. 취업 준비. 지겨워 죽겠어. 근데 머리에 그건 뭐야? 웬 반창고?”
“알바하다가 부딪혔어. 별거 아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매끄러운 광택의 검은 가죽 구두가 보였다. 그 옆으로 내 낡은 회색 패딩 소매가 눈에 들어왔다. 소매 끝단이 닳아 하얀 안감이 드러나 있었다. 소매 끝을 말아 안쪽으로 접어 넣었다.
“으이구, 조심 좀 하지. 그나저나 밥은 먹었어?”
슬기가 물었다.
“어? 아니… 이제 퇴근이라 안 먹긴 했는데… 근데 밥은 왜?”
“엥? 퇴근? 이 시간에?”
“야간 알바하고 있어서.”
“아아~ 글쿠나. 야간 알바면 빡세겠네. 뭐 하는데?”
“그냥 편돌이.”
“아하~ 야간 편돌이? 그럼, 집 가기 전에 밥이나 먹구 들어가자. 나도 너무 일찍부터 면접이라 아침도 못 먹고 나왔거든. 괜찮지?”
“아… 어, 어…”
“순댓국 어때? 내가 먹자고 한 거니까 내가 살 게.”
“아, 응… 그래. 고마워.”
괜찮지 않았다. 얼마나 친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출 0원의 실리는 거부할 수 없는 중력으로 작동했다.
“아니 근데, 남친이 갑자기 지는 못 가겠다는 거야~! 진짜 어이없지 않아? 당장 호캉스 전날인데!”
24시 국밥집.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앞에는 김이 식은 뚝배기 두 개가 놓여있었다. 슬기의 뚝배기 옆에는 초록색 유리병과 투명한 잔 하나. 슬기는 면접을 망쳤다는 이유로 소주 한 병을 따로 주문했다. 아침 10시의 술상은 건너편에 앉은 노인의 상차림과 같은 모양새였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더니 말야…”
슬기는 남자 친구와의 다툼을 테이블 위에 쏟아냈다. 소주병은 이미 절반이 비어 있었다. 대답할 말은 없었다. 슬기 뒤편의 벽걸이 TV에서 음소거 된 아침뉴스가 흘러나왔다. 뉴스 자막을 눈으로 좇았다. 환율 상승, 정치인의 실언, 축구 국가대표 팀의 경기 일정. 그사이 슬기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남자 친구, 가족, 길에서 본 어떤 커플의 다툼… 지금은 새로 데뷔한 남자 아이돌의 이야기였다.
“오빠! 듣고 있어?”
슬기가 나를 불렀다. 순댓국 위에 뜬 기름기를 걷어내던 숟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였다.
“어, 듣고 있어…”
“근데 왜 반응이 그래? 오늘따라 리액션이 너무 별론데?”
'오늘따라'. 슬기의 말로 짐작컨데 과거의 우리는 꽤 친한 사이였던 모양이었다.
“아… 요새 좀 피곤해서 그래. 아무래도 낮밤이 바뀌다 보니까… 방금 퇴근한 거기도 하고…”
“헉… 미안. 내가 괜히 밥 먹자고 했나? 괜찮아?”
“아냐 아냐, 사과 안해도 돼. 괜찮아. 이따 집 가서 바로 잘거야.”
“뭐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머리에 그것도 그렇고…”
슬기는 내 이마의 하얀 반창고를 가리켰다.
“진짜로 별거 아냐. 그냥 매대 정리하다가 부딪친 거야.”
시선을 테이블로 내렸다. 나무 식탁 위, 쇠젓가락 하나에 고춧가루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잘 살펴봐. 요새 젊은 사람들도 이상한 병 많이 걸리고 그런대. 아줌마 아저씨들 걸리는 성인병 같은 것도 걸린다던데… 우리라고 안전하란 법 없잖아.”
“응. 알았어… 걱정 고마워.”
“그나저나, 오빠는 그… 유학 간다고 하지 않았나? 호주였지? 뉴질랜드가? 맞나? 암튼 준비는 잘 되고 있어?”
“아, 워홀? 뉴질랜드 아니고 호주…”
“아, 맞다 맞다, 워홀이었지. 아~ 오빤 좋겠다, 워홀도 가고… 난 맨날 그지같은 면접이나 보러 다니는데…”
“많이 힘든가 보네…”
대답은 자동 출력되었다. 손톱 끝으로 젓가락에 들러붙은 고춧가루를 긁어냈다. 붉은색 파편이 공중으로 튀었다가 추락했다. 낙하지에는 검은 옹이구멍이 뚫려 있었다.
“아~ 장난 아냐, 진짜. 오빠도 해봐야 알아. 자소서 지어내는 것도 지긋지긋해. 면접관은 맨날 이상한 거나 묻고… 그리고 엄마 아빠도 맨~날 잔소리고.”
“그렇구나.”
입술이 기계적으로 열렸다가 닫혔다. 정보 없는 음성 신호의 송출. 그뿐이었다.
“진짜, 엄빠때문에라도 써준다는 데 있으면 그냥 어디든 빨리 취직하는 게 답인 거 같아. 미치겠어. 취업은 언제 하니, 그래가지고 결혼은 또 언제 할 거니, 30은 되기 전에 결혼은 해야 하지 않겠니, 나이 먹어서 노처녀 되면 애는 또 어떻게 낳을거니… 듣고 있으면 정신 나간다니까 정말로?”
슬기는 앞에 놓인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다시 한 잔을 넘치기 직전까지 가득 채웠다.
“아니, 근데 나라고 이러고 싶겠냐고… 말이야 아무 데나 가는 게 낫겠다고 했지만, 회사들 조건이 다 개판인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초봉 보면 그게 진짜 사람이 먹고살라는 돈인지 의심스러워. 그럴 바엔 속 편하게 알바나 하는 게 낫지. 요즘 시급 생각하면 그게 더 많이 벌겠다!”
슬기는 다시 한 잔을 들이켰다. 슬기의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올랐다.
“나 이러다 진짜 우울증 걸리겠어. 정신병 걸릴 거 같아. 이민 가고 싶어, 진짜로. 우리 엄마 아빠는 대체 왜 날 여기서 낳았나 몰라. 승희 봐봐, 아빠가 미국 대학 보내주고 생활비도 다 대준다잖아. 오빠도 승희 알지? 자퇴했던 애.”
“아, 응. 대충은.”
“걔네 집 돈 진짜 많나 봐. 학교 그만두자마자 미국 가서 지낸다나 봐. 아~ 부럽다, 진짜.”
“그러게.”
숨을 내뱉고 물 한 잔을 들이켰다. 알루미늄 컵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우울증 자가테스트? 뭐 그런 게 있길래 해봤는데, 11점인가 나왔더라고. 10점 넘으면 우울증이라던데, 내가 정신병 걸리겠다는 게 진짜 엄살이 아니라니까? 한번 봐볼래?”
슬기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백라이트가 켜진 액정 위로 결과지가 보였다. ‘11점’. ‘주의 깊은 관찰과 관심이 필요’. 슬기의 시선은 그 문구에 고정되어 있었다. 머릿속에서 책상 위에 내팽개쳐둔 서류 하나가 겹쳤다. 수많은 0이 붙은 액수. 11이라는 숫자가 거대한 자릿수 사이로 흩어져 사라졌다.
“오빠도 한 번 해볼래? 내가 링크 보내줄게.”
슬기가 다시 잔을 비웠다. 소주병 안의 투명한 액체는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테스트?”
“어, 금방 해. 지금 해봐.”
“아냐, 나중에 따로 해볼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링크만 보내 놓을게 그럼. 궁금했는데, 쳇.”
“아, 응. 해보면 결과 알려줄게.”
“그래, 그럼. 내가 봐 준다~”
뭘 봐주겠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소주 한 병이 더 비워질 때까지 슬기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대학 시절의 파편과 졸업 후의 근황들이 이어졌다. 대화는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소음의 분리수거였을 뿐이었다.
소주 두 병이 다 바닥나자 슬기가 일어났다. 헤어지는 길에 내 손을 잡고 수직으로 몇 번 흔들었다. 제자리에서 살짝 뛴 것도 같았다. 알코올 냄새 섞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검은 코트의 뒷모습이 손을 흔들며 지하철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돌렸다.
‘오빠 오늘 오랜만에 봐서 넘 즐거웠어! 담에 또 봐~ 바빠도 자주 좀 보자!! ㅋㅋ’
진동음이 울렸다. ‘그래, 또 보자.’ 조심히 들어가라는 문자열을 입력하고 전송했다.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국밥집에서부터 계속 졸음이 쏟아졌다. 반복된 하품의 횟수는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세지 않았다.
버스는 가속과 감속을 반복했다. 관성이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차창은 히터 열기로 뿌연 김이 서려 있었다. 소매로 유리면을 긁어냈다. 밖에는 가지도, 서지도 못하는 금속 더미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무채색의 풍경. 나는 눈을 닫았다.
암전. 익숙한 어둠이 찾아왔다. 띵동거리는 정류장 안내음이 들렸다. 유압식 기계의 피스톤 소리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