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사랑이 필요한가 보다.
신은 나에게
삶의 과제를 내린다.
나를 광야로 내몰아
내 속의 모든 추함과
더러움,
어두움들을
낱낱이 드러나도록 한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이야 말로
은혜다.
나는 그제야
진짜 나를 본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내가 아닌
‘진짜’의 나를 마주한다.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그 경험 후에야
나는 진정으로 나와
화해하고
나를 끌어안을 수 있다.
내가 욕망하는 것에 대해
진실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내 내면의
어두움이나 수치심 같은
부정적 감정들과 연결되어 있더라도
이것이 나 자체라는 사실을
되려 기쁘게 받아들이게 된다.
나를 형성하는
긍정과 부정의
모든 모습을 받아들인 후에야
나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일, 돈,
사랑, 인간관계,
삶의 가치 등
모든 부분에서
진짜로 솔직해진다.
고정관념과 가식들은
저 멀리 날려버린다.
그 모습이
이상적인 내 모습이 아니고
다소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못났으며
내세울 만하지 않은
내면의 괴물 같은 모습이라도
나는 나를 받아들인다.
그제야
나는 나를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나를 받아들였다 해도
이런 솔직한 내 모습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는
다 내 비칠 수 없다.
스스로에게는 자유로움을 얻었지만
여전히 타인에게 대한
자유로움은 얻지 못한다.
어쩌면 사랑은
그래서 존재하는 게 아닐까.
모든 타인에게 나를 드러낼 수는 없고
또 드러낸다 해도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에
내 존재가 자유로울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닐까.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도
아무 조건 없이
참아주고 받아주고
기다려주는 네가,
그래서 더더욱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