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 충분함에 대하여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by 이키드로우

무엇을 해내야

내 삶은 가치로운 것일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가치롭다고들

말하곤 한다.


맞다.


하지만 그 ‘맞음’이

머리에서 가슴을 지나

온몸을 통해

체감되기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언제부터 나는

‘해 내야 한다’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을까?


생산적이지 못한 시간은

단순히 허비된 시간으로 치부되고

어떤 만남도 어떤 경험도

생산적인 결과물로 치환이 되어야

뭔가 안심이 되는,

얼핏 보면 별문제 없이

되려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이 무한 순환의 고리에

나는 언제부터 빠져들게 된 것일까?






네 살 난 막둥이를 보며

생각해 본다.


그냥 걷기만 해도,

밥을 입에 넣기만 해도,

살짝 웃음을 짓거나

기본적인 단어만 말해도,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사랑받고 기쁨이 되는 상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로 불리는 타인에 대한

각종 선택과 책임에

굴레 씌워지는 것이긴 하지만,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는

어린아이를 대하듯

존재 자체로

스스로를 사랑해 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10여 일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하게 된 상황을 겪으며,

다행스레 회복이 되어

다시 일터로 나가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픈 몸과 건강한 몸 사이의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일에 착수하지 못하고

일을 미루고 흐트러지는 나를 보며,


또 이일을 계기로

이 전의 모든 삶들에 대해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하는

엄격한 잣대를

칼같이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가지긴커녕

강하지 못하고 미약한

나란 존재를

강하게 질타해 버렸다.


자신에 대한 질타는

타인의 질타보다 더 강력해서

나 자신을 쉽게 무너뜨린다.

실제로 나는

나를 겨냥해 놓아 버린

활시위 탓에

가슴 어딘가에

빵구가 나버렸다.






자신의 가슴에

스스로 만들어 버린 구멍은

나 스스로 다시 메꿔야 한다.

최소한 지금은 그래야 한다.


그래서

나 자신을 질타한 나를

다시금 반성했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강하게 질타한 나 스스로를

되려 혼내주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말을 되뇌며

속삭여 보았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기뻐해주고 고마워해주고

사랑해 주는 것처럼

나 스스로에게도 그리해 주자고.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수고하고 있다고.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사랑받고 있는 존재라고.

괜찮다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토닥거리며 속삭여줘 보았다.







일시적 위안일지는 몰라도

마음이 한결 가볍다.


또 언제

나 자신과 싸울지 모르겠지만

오늘 나 자신과 화해를 하며

마음은 이전보다 한결

산뜻하고 명랑해졌다.


배웠다.

완벽하게 몸으로 체감되지 않는

그런 위로의 말들이라도

때로는 그런 말이

내 삶에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해되지 않아도

일단 그냥 받아들여 보는 것도

내 삶의 행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