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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사과

by 자진유리


깨달음은 서로의 사랑으로 창조된 새 몸으로부터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자연이 그렇게 되게끔 장치를 심었다. 그러나 적자생존을 비롯한 모종의 현상으로 그것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기미를 느낄 때 우리는 또한 본능적으로 생각을 고치고 행동을 바꾼다. 모두는 생명을 존속하기 위해 스스로를 복제, 분열시키는데 끔찍하게도 정신만 분열되는 것이다.


가시나무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면 그 숫자만큼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약에서 그랬듯이 셀 수 없는 혼돈가운데 수많은 사랑을 잉태하고 두려움과 기쁨의 실체를 눈앞에 생생히 마주하여 그들을 영광의 이름들로 축복했어야 마땅했을까.


사랑의 가능성을 제몸속에만 줄곧 간직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그 가스와 먼지들이, 혼백들이, 몸속을 떠돌다 지쳐 하나둘 자리 잡는 게 아닐는지. 때문에 결코 생명이 될 수 없는 분열된 정신들을 고독의 날붙이로 떼어내며 살을 에는 고통을, 은하가 찢어지는 아픔을 홀로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들. 종교들. 인간이 꾸민 모든 방편들. 그들에게는 필연 거부할 수 없는 물질적인 또한 정신적인 가난이 들이닥친다. 그로부터 인간은 삐뚤어지거나 숭고해질 수 있음을 알겠다.


사랑이 제 일을 하지 못할 때 별은 파괴되고 의미도 따라 분열한다. 그것들은 사랑의 자손인 분노, 증오, 결핍, 불안, 걱정, 두려움, 그리움 등의 이름이다. 그의 자손들은 갈수록 불안정하다. 그 현상을 세간에서는 사회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직 사랑의 문제다.


씨앗 속의 사과는 셀 수가 없지만 사과 속의 씨앗은 셀 수 있다. 그것이 문득 슬픈 아침에 손가락 하나도 쉽사리 접지 못하는 사과를 베어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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