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 참아보자 한 것이 12일이 지났다. 성경에서 12는 완전수이고 아무 인생에나 덧대어도 미신과 과학 사이에서 얼추 설명이 되었는데 역시나 이 순간이 지나면 담배와도 완전히 작별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삶과도 안녕일 것 같았다. 담배만 끊으려 한 것인데 커피도, 음악도, 이른 아침 낮은 조명도, 말고도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예고 없는 단수처럼 끊어졌다. 새 하루도 더는 필요 없었다. 필요들이 없어질수록 세상은 더욱 춥고 소란했다. 나는 대부분 귀를 틀어막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래도 머리카락은 삐져나와 시큰거리고 심장은 요동치며 어둠을 팽창시켰다.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생명은 가슴 안에서나 광장에서나 무자비했다. 내가 어디에 머물건 그곳의 놀음에 맞장구치지 않으면 꼭지로 밀려나 성능에 따라 화산이나 수빙이 될 거였다.
저가 몰아낸 생명이 넘쳐 다시금 저를 덮치지 않길. 땅을 보고 기도하던 사람들은 어느 날인가 두 다리로 일어서야만 했다. 일어서야만 보이는 죄와 빛, 욕망, 사랑, 그밖에 모든 신의 이름들은 이제 아무리 고개를 쳐들어도, 머리가 열려도 닿지 않는다.
12일은 12년 같았다. 아니면 12초 같았다. 12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 설사를 했고 그 뒤로는 쭉 변비였다. 딸꾹질을 하다가도 트림이 났고 배가 고픈데 설거지만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 누우면 몸살을 앓았고 앓다가 정신을 놓으면 악몽이었다. 낯선 기차역과 공중목욕탕, 탈의실에서 담배가 맥거핀으로 작동했다.
48시간이 지나니 담배 생각은 가벼운 구름처럼 지나갔다. 그마저도 굳이 하늘을 바라보니까 대충 걸려있는 구름이었다. 그 앞서 24시간은 대충은 아닌 구름 속으로 자꾸만 뛰어들려는 짐승을 죽기 살기로 붙잡아야 하는 게임이었다. 짐승은 구름으로 내달리며 한 여자를 떠올렸다. 여자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걔는 손만 잡아도 서던데?" 짐승의 발기는 종일 삭지 않았고 싸고 싶어도 쌀 수 없었다.
"구름! 구름!"
짐승의 폭주를 누그러뜨리려 어느 날은 운동을 했는데 몸이 몹시 가벼워졌음을 느꼈다. 어쩌면 몸이 가벼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약간은 운동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났는지도 몰랐다. 짐승은 군말 없이 운동을 시작했는데 스스로를 찢어 죽일 듯이 폭력적이었다. 폭력은 자위 같기도 하고 자해 같기도 했다. 매일 이렇게 위해를 가하면 금세 몸짱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몸짱이 되든 지금보다 키가 몇 센티 더 자라든 피부가 매끈해지든 짐승에게는 아무 쓸모도 없고 재미도 없는 변화였다.
하릴없이 짐승은 제풀로 침대에 묶였지만 눈알은 자유로워서 타란티노 감독과 좀비, 귀신을 쫓아다녔다. 배꼽에 털이 나기 시작할 무렵처럼 피와 폭력, 자극과 공포를 원하고 있었다. 담배는 짐승의 억제기였을까. 아니면 반대로 담배의 성능이 그것일까. 담배는 늘 점잖았기 때문에 쾌락인 줄 몰랐다. 탐닉이라는 글자에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담배 대신 선택한 것들은 담배보다 폭력적이었다. 사탕, 과자, 아이스크림은 폭력적이다. 개중에서도 토마토사탕은 특별히 야릇하다. 그에 비해 글쓰기는 사탕처럼 달라붙지도 않고 맛도 안 나서 재미가 없다. 이렇게나 괴로운 데다 무용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담배를 연거푸 피워야 했는지도 몰랐다. 모르긴 몰라도 식물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부러워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열흘 넘도록 커튼을 열지 못했고 화분에 물을 주지도 않았다. 나만 가끔 이불을 걷고 나와 마른 목을 축였다.
3일째부터는 담배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다른 생각도 일절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샤워를 언제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먼지와 빨랫감이 얼마나 쌓여있건 아무렇지가 않았다. 매일이 더없이 느리고 평온했다. 다만 이 길이 가끔 슬퍼 보였다. 12일째에도 그랬다. 담배를 피울 의욕도 없고 자신도 없었다. 피워야 할 이유도 없었다. 피우기 싫었다. 평생 공짜래도 아니오였다. 그러다 코딱지를 팠나 보다. 지금 담배를 피워버리면 어떻게 될지. 과연 내 몸이 아직도 담배를 원할지 같은 쓸데없는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아질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동안 못내 참도 힘들었는지 삶이 조금 견딜만해진다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마저 품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음은 12일 동안 빚어진 무엇이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억지로 피워보기로 했다. 담배로 스트레스를 줘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나 구경해 보기로. 이제 와서 담배를 원하게 된다면 그것대로 우스운 일이었다.
커다란 장막이 내리우며 머리가 오그라들었다. 압력이 높아지며 블랙홀을 예감했다. 나머지가 간신히 반짝였다. 어쩌면 반짝이는 것이 비로소 관측됐다. 그것이 집중이나 영감처럼 느껴졌다. 무엇들이 단절, 마비, 비활성됨으로써 어긋난 조합들이 낯선 감각으로 재탄생되었다. 가벼운 명상에 들었을 때와 유사한 감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저변에는 알맹이 없는 밤송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모두가 납작 엎드려 삐쩍 말라가고 있다. 대체 언제 썩어 없어질까. 담배가 그동안 많은 것을 대신해 줬다는 것을 알겠다. 그리고 대신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손을 대왔다는 것도 알겠다. 13.2도가 왜 이렇게 추운 걸까. 잠이나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