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없는 두 번째 열흘을 지내고 있다. 아직은 카운트가 신경 쓰이는 수준. 직전에 열이틀까지 다녀온 경험치가 있으니 이번엔 한결 가뿐하지 않겠어. 그까짓 고통, 혼돈... 그러니까 우울, 불안, 짜증, 초조, 분노, 무기력, 자살 유혹 같은 거라면 몇 번이고 기꺼이 맞아들이겠다는 각오였지.
맘속을 던전이라고 친다면 똑같은 좌표에 똑같은 몬스터가 똑같은 시점에 등장하지 않는 것과 같았지. 던전의 형태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도 이번에야 눈치를 챈다. 최초의 탐험은 있었지만 마을로 돌아온 뒤 다시 탐험을 이어나가는 경험은 없었지. 그런 데다 휴식도 정비도 없이 오락가락 들쑥날쑥하게 만들었다. 마음을. 그래서 맘이 여린 마음은 죽고 싶어 했다. 1회차에는 도대체 왜 사나, 담배 없이 무슨 낙으로가 화두였다면 2회차에는 그에 대한 답으로써 죽음이 급부상했다. 애석하게도 죽음은 대왕고래 같아서 실컷 압도나 당할 뿐 잠수함 타듯 할 수는 없었다.
2년 남짓 동안 온갖 빌어먹을 것들을 끊었다. 일을 끊었고 사람을 끊었고 정신과 약물을 끊었고 안경을 끊었다. 모두 아주 오래된 것들이자 관습적인 것들이었다. 그것들의 유혹과 수많은 부작용들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졌는가 하면 깡도 깡이지만 담배의 보조가 컸다고 생각되는데 그 담배마저 끊고 나면은... 남은 것은 남는 것은 저기 저 줄기차게 떠오르는 태양, 목숨뿐이었다. 목숨아. 이 빌어먹을 놈아. 너를 어떻게 요리해 줄까에 대해 한동안 열성적이었다. 돌이키면 충동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이성적이었다. 그런 해석이 꼭 입자와 파동, 패트와 매트 같았다. 돌연 쌍쌍바가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반 가르지 않고 양손으로 막대 잡고 다람쥐처럼 귀엽게——옴뇸뇸
니코틴, 타르 따위 담배의 서비스 성분들은 지금쯤이면 모두 몸 밖으로 배출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는 넘겼지만 이제부터가 본게임일 것을 모르지 않는다. 폐허. 죽음과 혼돈. 재구성. 번데기의 인내. 못해도 수개월간은 불시로 울룩불룩 댈 것이고 오락가락할 것이다. 두렵지만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영 날개는 펴지 못한다고 해도 허물은 찢고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통 가운데 변화의 신비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연한 변화가 느껴지는 쪽은 아무래도 몸뚱아리다. 염증, 알러지 요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탓인지 오랫동안 경직돼 있던 혈관이 느슨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서도 대표적으로 고질처럼 앓아왔던 응꼬가려움(항문소양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거짓말. 항문 주변에는 신경이 많이 분포해 있는데 그간 담배가 원활한 교통을 방해해 온 모양이다. 이제 오래 앉는 데도 몸을 뭉그적거리지 않게 되었고 밤중에 수시로 뒤척이지도 않는다. 아무도 날 괴롭히지 않는다. 무엇도 나의 평안을 깨뜨리지 못한다. 기분을 다스리려 명상 따위 하지 않아도 되고 권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아도 된다. 과민성이 대폭 줄어서 예전 같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담배를 찾았을 상황이 아주 부드럽고 유연하게 지나가버린다. 그것이 글을 쓰는 중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심각함이 없다. 허허. 헤헤. 기분의 기본이 몹시 산뜻해져서 하루아침에 웃상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아침에는 눈 뜸과 동시에 콧노래가 났다. 얘는 누굴까.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이 미친 마음 같아선 지금 새벽 다섯 시 반인데 뛰쳐나가 동네 사람들 여기 나 좀 보세요 엉덩이로 이름 백번 쓰고 싶었다. 기쁨을 온몸으로 쏟아내다가 또 준비해간 금연 홍보 피켓을 흔들어재끼다가 이 거지 같은 대한민국으로 매일 다이빙 해야만 하는 가엾은 존재들 거저 몽땅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 비흡연자가 부럽다는 생각에 미친다. 에너지 좋겠네. 해내지 못할 일이 없겠네. 그러니 맘껏 까불댈 수도 있었겠네. 행복하겠네. 쓸데없이 비관하거나 괜히 심각하진 않겠네. 삶의 의지 충만하겠네. 좋겠네. 흡연자와는 삶의 형질이 극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네. 난이도가 애초에 다르잖아. 효율도 다르고. 방향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감히 수준이 다르잖아. 영혼이 다르잖아 영혼이... 장담컨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서로는 외계인이야. 둘이는 아예 다른 세계야. 안개 낀 호수와 푸른 초장이야.
처음으로 담배 없이 뭔가를 썼다.
기특해서 딱 한 모금만 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