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기념

by 자진유리


앞자리가 4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2였는데... 어느덧 3을 지나 4네요. 20일 무렵 혼란스러워하는 저를 독려해 주시던 분이 생각납니다. 40일 차에 이제 겨우 숨쉬기 가능하다고요. 정말 그런 듯합니다. 이제야 걸음마 같아요. 그런데 첫걸음마 때보다 훨씬 힘든 것 같습니다. 다 자란 머리를 가누기가 너무 힘들고 어디에도 안길 품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오늘 또 무슨 의미를 억지로 지어먹고 꾸역꾸역 걸어가야 할까요. 청승을 떨면서도 담배 한 모금 생각조차 없다니 이건 또 이것대로 쓸쓸해집니다.


숫자 4는 1, 7과 비슷한 속성입니다. 봄 같은 것이지요. 김에 봄기운을 빌려 겨우내 미뤄왔던 청소를 했습니다. 살면서 이토록 깊숙이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적이 또 있었나 싶습니다. 나날이 기록을 경신하는 추세 같기도 하고요. 나이를 먹는 걸까요. 아니면 어디가 아픈지도요. 열이 많은 편이라 겨울을 좋아했는데 올겨울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추위를 많이 탔습니다. 너무 추워서 아팠습니다. 아프다 보니 각종 질병들의 전조와 증상에 대해 검색해 보기도 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히 에너지가 줄고 약해지는 게 당연한 건지요.


신라면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신라면은 과거에 비해 퍽 매워졌다고 하는데요. 맵기는 스코빌 척도로 확인할 수 있는데 2012년 1,320스코빌(SHU)에서 2022년 3,400스코빌(SHU)로 10년 동안 꾸준히 상승해 왔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는 내가 약해진 게 진실이 아닌 것이죠. 세상이 강력해지고 세상의 기준이 높아진 것입니다. 신라면은 왜 점점 매워지게 됐을까요. 기업의 의도일까요. 아니면 소비자 입맛의 변화일까요. 입맛은 또 사회구조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요.


뜬금없이 웬 신라면인가 했더니 저는 본래 국가대표 맵찔이인데 담배를 끊고 매운 음식을 곧잘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맵다 못해 얼굴이 저린 음식을 왜 돈 주고 사 먹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그 심정을 조금 알겠습니다. 하지만 매운맛도 궁극적으로 스트레스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흡연처럼 일시적으로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으로 느껴질 뿐이죠. 자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평안에 이르길 바라면서 동시에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쾌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쾌락 이후의 허무는 더 큰 자극을 향합니다. 과연 중첩과 얽힘의 세상입니다. 이러한 중독의 시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이른 아침 잠옷바람으로 거리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소년을 봤습니다. 흡연자를 낮추볼 일은 아니지만 화분에 물을 주다가 본의 아니게 내려다보는 꼴이었습니다. 소년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는 듯 자꾸만 구석으로 꺼졌습니다. 결국 남의 집 앞까지 옮겨 가 담뱃재를 떨고 가래침을 뱉습니다.

언젠가의 내 모습인 것만 같아 아찔했습니다. 이제라도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만 생각해 보면 흡연 말고도 굳이 안 그래도 되는 일들이야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알아차리며 또한 마음과 세상을 공부하는 데 금연은 가난과 더불어 내 인생에 찾아온 고마운 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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