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가 똑 떨어진 초저녁부터 몸을 조금 관찰해 봤다. 3시간이 지나니 손발이 따뜻해졌다. 겨울에 들면서 발가락 군데군데가 벌겋게 부어오르는, 알아본 바 동창 증세가 있었는데 금방 나아질 수 있겠다는 기분에 들었다. 그새 피가 잘 도는 게 신기했다.
3시간이 지나고 나자 본격적으로 담배 생각이 비죽비죽 올라왔다. 그때마다 가운데 손가락을 가볍게 물고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해본다든지 흡연에 이르게 된 외력(사회/기업)으로의 분노, 스스로를 향한 무력감을 동원해 충동을 넘겼다. 말이 넘긴 것이지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3분 정도 견디고 나니 충동은 차츰 잦아들었다.
30분마다 제법 높은 파도가 치는 모양이었다. 지난 아침에는 그 파도를 넘지 못했다는 것을 넘고 나서야 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3초마다 넘실대는 잔물결도 보인다.
잔물결도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거칠어지는 듯했다. 파도를 넘으려 할 때마다 골짜기처럼 한숨이 났다. 연거푸 한숨 쉬는 꼴을 보기가 싫어서 잘 시간이 아닌데도 홀랑 이불속에 들었다. 한숨 쉬는 꼴 대신으로 ~장송葬送의 프리렌~이라는 만화를 봤다. 프리렌은 억겁의 시간 대부분을 마족에 대적하기 위해 자신의 마력을 더욱 계발하는 것이 아닌 마력을 제한하는 수행을 해오며 살아왔다. 마치 중생이 도를 닦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마족은 왜 그런 영문 모를 짓을 하는지 우스워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수많은 마족을 물리칠 수 있었다. 마력 제한은 인류를 속이는 마족을 반대로 속일 수 있는 강력하고도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속여야 살아남는, 법을 지키면 바보소리 듣는 현대사회에서도 엘프소녀할머니(프리렌)의 가르침은 살아남기 위해 더 강한 유혹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에 충실하며 겸손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거면 담배라는 마왕도 물리칠 수 있을까.
나도 힘멜 같은 용사가 될 수 있나.
그 앞서 나는 용사가 되길 진정 바라는 게 맞나.
모르겠다.
그냥 담배가 피우고 싶다.
다음날 아침엔 어쩐지 몸이 가벼웠다. 정신도 제법 맑은 느낌이었다. 곧장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불쑥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참을 이불속에 웅크려 비행기 사고 소식에까지 이르렀다.
올해는 왜 이렇게 몽땅 거지 같지.
담배 피우듯 한숨을 길게 내쉬고 겨우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겨우겨우 세수를 하고 겨우겨우 커피를 내렸다. 그러고는 몇 모금인가 커피를 홀짝이며 멍하니 앉아있다가 30분어치의 파도를 처맞았다.
부서지며 말했다.
도대체 왜 살지.
그러더니 그만 아침일기에 ~왜 살아야 하는지 더없이 모르겠다~고 적고야 말았다.
아빠 얼굴을 흉내 낸 마족이 혀를 차며 '쯧... 그냥 펴'라고 말했다.
엄마를 닮은 형체는 굳은 내 얼굴처럼 잠자코 아무 말이 없었다.
도대체 왜 사는 거지.
담배를 사러 가는 발걸음은 지난번처럼 가볍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몹시 불쾌하고 침울했다. 오토바이 한 대가 스치며 덜컥 지난밤의 분노를 떨궜다. 그제야 고개를 쳐들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거리엔 오토바이만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구르는 소음과 들끓는 진동이 아득해질 때까지 하나하나 꼬집어 노려보며 덩달아 끓는 부아를 움켜쥐고 날카롭게 입술을 굴렸다.
씨발 도대체 왜 사는 거지.
울긋불긋한 손발을 드러낸 채로 집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머리서부터 아스팔트 같은 딱딱한 것이 땅거미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뭐가 자꾸 끼네...
그것은 얼굴로, 가슴으로, 두 다리로 점점 번져내리웠다. 그대로 황금향의 저주에 잠식될 것만 같았다. 아니면 용사 힘멜의 동상처럼 파랗게 굳어버릴 것 같았다.
힘멜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예수 같은 용사의 예쁜 마음들은 모두 어디 간 걸까.
새벽에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을 것 같이 생겨먹은 젊은 녀석이 재활용 컵을 집 앞에 버리려다가 동상처럼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오토바이처럼 삐걱대며 사라졌다. 그 뒤로 낡은 등산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잔기침을 하며 굽은 몸 한걸음한걸음을 언덕으로언덕으로 삐걱삐걱 밀어 올렸다.
도대체 왜 사는 걸까.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원래 이랬나.
원래 이런 걸 조금 다독여보려고, 억눌러보려고, 위로해보려고, 줄곧 담배를 피웠던 건가.
모르겠다.
뭔가가 잘못됐다.
뜻이 잘못되었든 순서가 잘못되었든 방향이 잘못되었든,
그러나 담배가 잘못을 알지 못하도록 어지러웠다.
내가 너무 추하다.
위로는 담배뿐이 없다는 게 불쌍해죽겠다.
종일 담배 피우는 일이 전부 같아 서러워죽겠다.
새들은 대체 뭐라고 지저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