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겸손

by 육순달



미소 지으며

수능 한파 모른다는

겨울의 겸손












내내 달리기만 하면 하이쿠는 잘 안 된다. 달리다가도 아름다움(자기다움과 예쁨은 물론 삶이 겪는 모든 모습) 앞에 멈추고(귀 기울임), 곁에 잠시 앉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 또 달리고, 멈추고..., 이와 같이 띠용띠용 운동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두 다리와 하이쿠가 동시에 달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공간 및 의식이 확장되는 순간인데 인간의 지각은 미력하고 불안정하므로 사고가 날 위험이 높아진다(까불지 말자). 지금처럼 휴대폰에 메모를 하며 달리는 것을 포함한 모든 운행사고가 그렇다. 사고에는 망상도 매연처럼 뿜어져 나온다. 각종 사이비와 신비, 영성, 종교, 예술 등에서 마치 스스로가 각별히 특별하다 느끼는 상태가 그렇다.


산에 드나들수록 인간(이성)은 생명을 바로 세우고 잘 보살피라(인간의 몸은 상당히 자유로운 편)는 게 틀림없다는 계시나 사명 같은 것이 정수리에 내리 꽂힌다. 그러니 어떤 순간에든 생각을 잘해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을 잘해야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될 때면 생각이 없는 편이 낫다. 따라서 이 몸은 겨울을 향해 몸을 써서 찬기에다 열기를 쑤셔넣고 있고 지금은 방석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문자를 찍어가며(우주를 건드려) 미지와의 조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계를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그대 역시 이 몸에겐 외계인이나 진배없다). 물론 가만 누워 숨만 쉬어도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이니(왜인지는 각자 생각해 보거나 느끼면 좋겠다, 가만있어도 되게끔, 생명은 자유롭도록 배려되어 탄생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은 산을 세 바퀴 반을 돌았는데 둘째 바퀴부터 등산객들이 나에게 하나둘 길을 묻기 시작했다. 아마 그 둘째 바퀴부터 몸이 풀리고 마음도 풀리며 자연히 잔잔한 미소를 띠게 되어 그런 것이리라(아니면 멀쩡하게 생긴 놈이 반바지만 입구 혼자 흐뭇하게 학학대고 있으니 이 구역의 미친놈 내지는 고인 물 느낌을 받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걸 알아보고 괜히 말을 건네는 것이다(지혜롭다는 것, 전파가 터지지 않는 숲속, 그런 데다 하늘도 볼 줄 모른다면 그대는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느낌? 맞다. 처음에는 다 느낌으로 시작된다. 느낌의 갈래의 왕복운동이 경험치이자 지도이자 지식이 되는 것이다). 물음이 나를 진동시키면 나는 금세 배를 부풀려 느낌 가득한 알을 낳는다. 그들은 알을 줍고 새로운 길을 향한 발걸음을 낸다. 웃으면 복이 정말 온다. 미소는 사랑의 통로이자 가장 아름답고 믿음직한 생명의 언어다.


고맙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저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주십니다.


과연 겨울은 그렇다. 겸손의 겸은 言(말씀 언) + 亻(사람인변 인) + 秉(잡을 병)으로 이루어져 있고, 손은 辶(쉬엄쉬엄 갈 착) + 孫(손자 손)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손자 손은 糸(가는 실 멱) + 丿(삐침 별)로 되어 있으며 잇다, 연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오늘의 귀한 경험은 겨울이 알려준 겸손 덕분인 것이다. 나는 여세를 몰아 어르신들이 동그랗게 앉아 있는 정자 한구석에 낙엽처럼 뻗어누웠다. 바둑알이 찰찰대는 바둑알통을 베고서.


결혼 45주년(...) 꽃다발(...) 안 하던 짓(...) "허구 싶어서 헌 게 아니라(...)" 여자는 잔잔한 걸(...) 46년 살면서 몰랐지(...) 잔잔의 정을 모르잖아 우리는(...) 우리는 줄거리 갖고 얘기 허지 나뭇잎처럼 미세한 걸 중점 두지 않잖아(...) 맞아(...) 예쁜 꽃잎... 단풍......


모처럼 사람에게서 미소를 한가득 얻는다. 슬슬 으슬으슬한데 막걸리도 한사발 얻었으면 좋겠다.












작가들과—감당 가능한 수준만큼의—교류가 생기며 별수 없이 경계했던 경험을 하게 됩니다. 타인에게서 나를 읽는 것, 나에게서 조금 낯선 냄새를 맡는 것이 그렇습니다. 샴푸를 바꿔 쓰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사 점심시간에 부대찌개를 같이 퍼먹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하나의 빨대로 음료를 돌려마시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통로가 열리면 낯선 교통에서 오는 멀미와 망상이 있는데 오늘 아침엔 그것에 대해 관찰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내 본고장으로 돌아오려는 세포들의 의지와 노력도 발견합니다. 이런 알아차림 없이 살면 흔히 나를 잃어버린다는 그것이 되죠. 그러니 먼저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유리하겠습니다. 나를 잃어버림은 물론 나도 모르게 추잡하고 더러운 것에 덧씌워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불가피 정신없이 바빠야만 할 적에 자기를 인식하고 돌볼 겨를이 솔직히 어딨겠습니까. 겨를이 없으니 방법도 당연히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들고 지칠 땐 억지로라도 순간순간 감사 포인트만 잘 찾아내도 위대한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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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