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솟을까

by 육순달



겨울 속 나도

낙엽 한 장 덮어야

시가 솟을까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시작된 하이쿠. 그런데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는 걸(산행에만 치중돼 있다는 걸) 탁상달력이 상기시켜 줍니다. 괴테의 말마따나 나는 심신 헤아리길 좋아하고 그 안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일에도 소질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하이쿠로는 그러질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재 형식이다 보니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가는 걸지도요.

27. November
산으로 가서 보물을 찾기 전에, 먼저 내 두 팔 안에 있는 보물을 충분히 활용하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독일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때와 장소, 시간, 또 마음까지 성에 찰 때, 상황에 맞는 복장과 행동까지 마치 패션과 매너처럼 갖출 때, 이 모든 것이 한걸음으로 익숙해졌을 때, 드러나는 것은 진정한 하이쿠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이 겨울에는 우연이 적당히 섞인 일상 속에서 하이쿠를 포착할 수 있는 신경을 주되게 사용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은 저 산이 하이쿠를 내주지 않으면 어쩌나... 이 작은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느새 100여 편 가까이가 적금처럼 쌓여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아마 평생 제대로 쓰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갖가지 보험과 그밖에 상업적인 예비는 인간이 진정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못 됩니다. 그것들은 다만 두려움과 불안의 모둠전(실체)일 뿐입니다. 심신 미약을 나타내는 지표이니 많다고 자랑할 게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것이죠. 나이 들수록 삶에 대한 믿음도 자신도, 자식조차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돈을 쉬이 내버려 순환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회라는 거대한 인간의 피로 삼았으면 혈액순환을 잘 시키십시오. 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마십시오. 제자리에 충실하고 그 자리에서 삶의 충만한 기쁨을 발견하십시오. 어느 자리나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사랑과 고통은 모든 겹을 동일한 두께로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중간에서 욕심부리고 삥땅치면 불필요한 곳에 혈이 응축돼 병이 되고 병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너도나도 번져 발끝부터 썩습니다. 발끝에서 저 혼자 빠르게 멀어진다 한들 더 많은 죽음만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셀 수 없는 남의 업까지 꽁꽁 싸매서 말미에 병원으로 모조리 퍼붓다가 멸망하는 엉뚱하고 안타까운 시나리오입니다. 그 앞서 기꺼이 사랑을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한겨울에도 낙엽을 비집고 얼굴을 내미는 새싹들을 보았습니까. 낙엽의 사랑 덕분입니다. 다 된 몸 누가 어여삐 봐주고 몸은 또 무슨 미련이 남아 병원을 자꾸 들락거립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 그만 낮은 곳을 향하십시오. 낙엽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용기로 향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과 함께 하십시오. 낙엽은 낙엽답게 제때에 골고루 분해되는 게 이롭습니다. 향기롭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물론 기분 좋습니다. 하지만 가을처럼 잠깐이면 충분하고 값지지 않을까요.



중간에 소변을 보다가...


뜨겁고 노오란 오줌으로...

겨울에게 뭔가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눈물보다도

촛불이라도


(...)


하다못해 통조림 공장에서라도 일했다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하이쿠도 줄기차게 다가왔을지 모를 일. 하이쿠를 하루로 볼 것이냐, 방충망에 끼인 가련한 빗물들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이 차가운 손끝에서... 아무튼 입술과 굴뚝같은 것을 말해야 한다. 따뜻한 거, 촉촉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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