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하늘과 숲과···

by 자진유리


어제는 산사 중심도 아니고 변두리도 아닌 땅에 대충 뉘인 돌(주변에 벤치가 많이 있지만 자연석에 엉덩이를 끼워 맞추는 맛이 좋음)에 앉아 아빠다리 펼치고 줄기 같은 긴 팔로 턱을 괴어(얼굴을 꽃으로 바꾸어) 광합성하고 있는데 일차례 바람이 불더니 바다내음이 훅—정신을 차려보니 여긴 산중이고, 다만 내 앞에는 자갈과 모래. 바다냄새는 바닷물이 아닌 흙에서 왔나 보다(나의 기억은 전부 흙에 저장된 냄새였구나). 뒤이어 큼큼한 향냄새가 추억을 황급히 덮고... 아, 어디인들 어둠에 다한 폭죽놀이 그 바다로구나.


사놓고 안 입길 잘했던 남자는 팔기도 팔고 나누기고 나누고 버리기도 참 많이 버렸는데—실은 내가 천사였구나 기분으로—들떴을 때 쓸어 모았던 화려한 옷가지들 앞에 설 때면 기가 막혀 한숨이 푹푹 과연 보통내기는 아니로세 싶다가도 어느 날은 진실로 알 것만 같으니 과연 새것과 헌것은 거기 없고 모두 이 마음 안에만 있도다 한오백년 옷걱정은 없으리: 인간은 썩지도 않는 걸 참 잘 만들어. 따라서 오래오래 효용을 발휘할 수 있는 것들이니 빈티지로 보는 눈을 떠야지 물려받거나 돌려 쓰는 것에 대한 박탈감 언짢음 따위 콤플렉스는 없어야지 과거라면 그저 후지고 촌스럽게만 본단 말야. 간과하는 게 있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 게 없다는 거야. 인간은 1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1만 년은 관점에 따라 한순간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야. 다만 열광(힘)의 포커스만 외계인처럼 우주를 떠돈다고. 오늘은 어디를 침략할 수 있을까—이경규보다 눈알을 굴리는. 그런 민족을 많이 갖고 있는 몸뚱아리들이 있지.


야채 트럭에 이어서 오늘은 컴퓨터–모니터–에어컨–냉장고–피아노··· 어째선지 식욕이 돋는다, 떡볶이는 어쩌다 한 번 해 먹을까 말깐데, 떡, 어묵, 파, 말고도 다짐육에, 통마늘에, 소시지에, 양배추에, 표고버섯, 삶은달걀, 라면사리(맵기만 하고 드럽게 맛없는 라면으로), 두부까지 넣어 먹을 생각에 몹시 들뜨고 말았네, 가만있자 고추장 대신 크림스프로 할까, 말차 유행처럼 얼그레이 엑기스를 뽑아다 향미를 더해볼까,


밀리의 서재—밀리로드라는 걸 알게 됐다. 브런치가 알려줬다는 게 웃프다. 낯선 동네라 그런지 잠깐은 정신이 샤방샤방했다. 들썩이고 있는 뚜껑 몇 개를 들춰보니 다 고만고만하니 별 일도 아니로구나.


<어제 멈춰 선 장면들과,>

야한 김말이
당최 무슨 열매인지 모루쿠다(챗지도 모름)
자주–빨강—분홍—베이지까지 단풍은 온갖 루즈를 다 갖고 있으니 샘날만하다

새 모이를 생아몬드와 건포도로 바꿨다. 어미새처럼 오물오물 씹다가 뱉어서 준다. 멸치볶음도 그렇지만 건포도의 쨍한 맛을 조금이나마 희게 하려는 심산에다 작은 새들이 아몬드를 일일이 부리로 깨서 먹는 걸 보고는 추운 겨울 에너지를 또한 조금이나마 아껴주기 위한 작은 배려이다. 주먹이나 도구로 부수지 않고 굳이 사람 입속에 들어갔다 나와 침까지 듬뿍 발라져야 하는 까닭은 나중에 브랜 스타크처럼 까마귀에 빙의하기 위한 속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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