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만 한 사과 한 알을 씻쳐 먹으며 커피 물을 끓인다. 40시간 정도 속을 비워두면 사과의 힘을 잠시나마 똑똑히 느낄 수 있는데 가장 먼저 눈이 또렷해진다. 눈이 또렷해지면 눈부신 아침햇살이 아기 발가락으로 망막을 간지럽히며 커피 향은 더없이 그윽해지고 라디오의 실없는 사연을 읽는 목소리도 사랑스러워진다. 그로부터 각종 행동연쇄가 일어나는데 김에 별일이 없다면 주에 한두 번쯤은 호흡을 낮추고 모든 섭취(음식, 정보 등)와 배출(배변, 땀, 쓰레기, 생각, 감정, 창작 등의 가공)을 삼가기로 한다. 가만 보면 이 시대에 버릇처럼 매일 먹고 싼다는 것은 왠지 어리석고 엉뚱해 보인다.
오늘 아침 다른 하나가 또 뿌리를 내밀었다. 남은 녀석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뿌리 만드는 건 고달프니까 둘째는 셋째 나오면 손 잡고 같이 가기). 역시나 말리든 자르든 신선하든 따위 형편은 그닥 중요치 않아 보인다. 오직 생사를 함께 하는 극한에의 끈끈한 유대감, 서로를 위하고 희생하는 정신이 기적을 일으키고 생명을 피어나게 한다. 여자의 얼굴은 나날이 희미해져만 가는데 전우의 얼굴은 여전히 또렷한 것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