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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회재 Apr 09. 2024

오징어는 바닥에서 유영한다

절제




하나가 더 도착했을 때는 말라비틀어져있었다.

손을 거의 데지 않아 말라비틀어져있었다.

처음부터 훈제족발은 말라비틀어져있었다.

술도 어디론가 자꾸말라없어진다.

어디론가 컥컥말라없어진다.


그러자 맛보기 보쌈을 하나 더했다.

대화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맞아 그날. 너도 있었다고? 다음날 점심 너머까지 마신 날? 그런데 너가 블루스톤 자전거 사건을 어떻게 알아?”


하나가 해방의 문을 열고 들어 왔을 때부터 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슬픔에 잠식되어 이십 대의 막차를 떠나보내버렸을 때.

멈춰 세우지 못했을 때.

정류장에 나가보지도 못했을 때.

판의 미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 깊은 숲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이제와 헤아리기로 너의 길을 좇았다면 어땠을까.

신은 거친 돌산이 아닌 시커먼 바닷속으로 나를 내던져버렸다네.

산 꼭대기 너의 두 손 보이지 않았네.

내 두 무릎은 시커먼 바닷속이었네.

벌써 그랬다네.


어느덧 술병 여섯이 보인다.

그러나 내 속의 무엇은 영구히 안정되어 있음을 알았다.

이것은 술을 얼마나 쏟아붓든 두개골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나든 잔잔하고 선명하겠다.

그 잔잔하고 선명한 것을 확대해 보면 무수히 작은 간지럼들이 서로 부딪치고 떨어지며 놀고 있다.

빛.

역시 빛은 머리가 아닌 다른 데 있구나.

 


출렁출렁한 몸들이 오징어를 산 채로 잡는 친구네 가게로 향한다.

여 왔으면 들르지 않을 수 없다.

머릿속이 밝게 부시기 시작한다.

어두운 가게 안 집어등 하나 켜있고 친구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가.

사람들이 오징어를 너무나 좋아하는 바람에 이른 시각 문을 닫으려는 찰나 우리가 왔지롱.


오징어 없어도 돼.

이 바라 우리가 오징어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반갑다.

녀석은 급하게 불을 켜고 무언가를 휘젓는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뭐였지.

오징어 없었는데 뭘 해줬더라.

노래를 불러줬나.

집어등 어느새 오색찬란 색을 입고 벽걸이 티브이가 가라오케로 막 변하고 그랬던가.


이곳에서 나는 늘상 많이 취했기 때문에 친구를 안으려 한다.

너무 기특하고 멋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친구는 늘 똑같이 말한다.

(땀이랑 오징어 때문에)더럽다고.

그러면 나도 늘 똑같이 대꾸한다.

상관없어.

그러고는 내 맘대로 콱 안는다.

오징어는 이렇듯 안아주기에 유리하다.

오징어가 여자였다면 무조건 이 품에 안길 텐데 보는 눈이 참 없구나.

문득 매번 같은 꼴이 반복된다 생각이 들자.

이제는 그만두련다고.

속으로 다행이야.

축가는 무슨.




오징어들이 또다시 어디론가 흘러간다.

오징어 2가 껍질을 흘려도 달려와 덮어주고 손을 흔든다.

춤추는 오징어 떼와 시간을 횡단하는 초인.

우리 완전 조명받고 있어.

큰일이야.


어디 가.

그래서 어디 가는 건데.

가보면 알아.

네가 좋아할 거야.


귀가 열리자 깊은 바닷속.

조개들 부딪치고 소라고동 노래한다.

빛나던 포식자들 천장에 매달려 춤추고 그림자들 눈망울만 굴리며 숨죽여 있다.

더듬거리며 나 또한 숨죽일 자리를 찾는데 우와

인어공주가 나를 스쳐지나 피아노 앞에 가 앉는다.

인어공주는 결국 피아노로 말하게 되었구나.

당신은 잘 지내고 있었구나.

당신도 잘 지내고 있겠구나.

이런 데 오면 종잇돈 주는 거라고 아빠가 그랬는데.

주섬주섬 아무것도 없네.

멀어져 간 사람아.


인어공주님 나는 18번이 아직 없고 록커도 아니에요.

그런데 목소리가 왜 안 나오죠.

내 빛은 멀쩡한데.

당신은 인어공주가 아니었군요.

잘 안 보여서 몰랐어요.

다리를 모으고 있는 줄 몰랐어요.

다리가 여덟 개로 찢어져있는 줄 몰랐어요.

그러니까 돌려줘요 내 목소리.


나 소리 없이 마음으로 노래할 때.

전부를 드러내면 안 되겠구나.

나에게 시작되어 나에게 끝난다면 아무런 틈도 없겠구나.

무대 밖으로 내가 아닌 모두의 씨앗을 던져야 하는구나.

저들 안에서 피어나게 될 씨앗을.

그게 씨앗인지 코딱지인지 모르면 또 안 되고.

아주 작은 싹이 돋아나 있는 상태로 던져줘야.

저들이 품고 자라겠구나.

빼꼼 나온 상태로.

빼꼼하게 드러나도록 해야겠구나.




"$#%#^*^^*$^&$%&$%$%&"

괜한 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투표를 하란다.

나 어릴 적 들리던 소리인데 우리는 아직도 어리구나.

마이크 들고 꽥꽥.

트로트 틀고 쨍쨍.

창문에 모기장을 달고 방충망을 쳐도 가락이 있는데.

오징어젓 조개젓 새우젓 창란젓도 없으면서.

쟤들은 너무 대단한 것 같아.

부끄럽지도 않은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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