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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an 27. 2021

#89 개학이 바꿔놓은 일상

평소 9시에 일어나다가 오늘은 새벽 6시 반에 잠에 깼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서 출근 준비로 바쁜가 보다.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에 갔는데 "헉"하고 깜짝 놀랐다. 낯선 여자가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안경을 쓰고 자세히 보니 출근한다고 풀 메이크업한 아내다. 학교 선생님인 아내는 방학 동안 화장을 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한 달간 맨얼굴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신부화장에 놀라서 잠이 확 깼다.


방학 동안에는 아내가 요리를 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내와 둘째는 방학 내내 요리를 했다. 요리를 너무 사랑했던 나머지, 요리 한번 하고 나면 주방이 초토화되었다. 특히 베이킹을 좋아하는 둘째가 요리를 하면 주방을 넘어 거실까지 밀가루 반죽 가루가 여기저기 발견된다. 정말 미스터리 한 일이다. 베이킹은 주방에서 했는데, 그녀의 하얀 흔적은 집안 곳곳에서 발견된다.


설거지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설거지 시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설거지하는 동안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니 설거지 시간이 즐거워졌다. 요즘 Emily in Paris를 보고 있는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전에 프랑스 시골 도시에서 살던 추억도 떠오르고 코로나 때문에 여행 못해서 우울한데, 화면을 통해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도 든다. 물론 프랑스 사람들 특유의 똘레랑스도 떠오른다.


우리나라는 서비스 최강의 나라다. 인터넷 설치 요청하면 다음날 바로 기사님이 오신다. 식당에서는 벨을 누르면 종업원이 달려온다. 프랑스는 이와는 완전 반대의 나라였다. 인터넷 설치 요청하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고, 그것도 기사의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 식당에 벨은 없고, 웨이터를 소리 내어 부르면 엄청난 결례이기 때문에 웨이터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계속 숨 막히는 눈치전쟁을 벌여야 한다. 한국에 살다가 프랑스에 가면 엄청나게 불편하지만, 반대로 노동자로써 일하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다. 점심시간은 두 시간이고, 근무시간은 칼같이 지킨다. 저녁 7시만 지나면 식당과 바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 하긴, 나도 지난 한 달 동안 아내가 살림을 도와주어서 프랑스 사람처럼 살았다.


개학을 하고 나니 이제 온전히 내가 살림을 다시 해야 한다. 한 달간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려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뭘 먹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집에 있던 떡을 대충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구운 달걀을 단백질로 주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고 하니 내심 기뻐하는 눈치다. 어떻게 해서라도 야채를 먹이려고 하는 엄마와는 달리 아빠는 입이 즐거우면 장땡이다. 그래서 라면도 종종 끓여먹고, 배달 음식도 시켜준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아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비밀리에 진행해야 한다. 배달 음식이라도 시켜먹고 나면 수많은 재활용 쓰레기를 아내가 보기 전에 모두 치우고, 라면을 먹은 날에는 집에 라면 냄새가 베이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쓴다.


개학해서 점점 바빠지던 와중에 어떤 회사로부터 글을 써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회사 홈페이지에 매거진 코너를 만들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 매거진을 운영해 줬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막상 제의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믿고 일을 맡겼는데,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나 보다. 회사 있을 때 받았던 스트레스와는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였다. 회사 있을 때는 일을 잘 못해도 혼나면서 배우면 되는데, 프리랜서는 일을 못하면 혼나지 않고 일이 끊긴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다. 회사 가기 싫은 날은 출근 안 해도 되고 집에서 츄리닝 차림에 침대에 엎드려서 일해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터넷과 노트북만 있으면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   


방학 때는 아내가 있어서 주부의 경제 매거진도 거의 매일 쓸 수 있었는데, 개학하고 나니 매일 쓸 수 있을지 걱정인데, 일단 되는데 까지는 해 볼 생각이다. 이렇게 에세이를 쓰든 경제 매거진 글을 쓰든 타인과 소통하고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참 좋다. 담배 회사에서 일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다. 왜냐고? 담배 회사에선 열심히 일하면 일할 수록 사람들이 죽어가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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