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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Feb 09. 2021

#91 아수라 백작


회사 다닐 때는 돈을 물쓰듯 썼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쇼핑과 여행으로 풀었다. 애당초 스트레스를 안 받았으면 쇼핑도 안 했을 텐데, 스트레스와 쇼핑을 번갈아 가면서 반복했다. 회사에서 야근을 많이 하니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인형과 장난감을 원하는 대로 사줬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아빤데, 아빠 대신 인형을 대신 줬다.


회사 관두고 주부로 사니깐 스트레스가 없다. 그렇다고 살림살이가 쉽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살림살이는 나 스스로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적다. 아무래도 주부생활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그래서, 필명도 주부로 정했다.


주부로써 유일한 스트레스는 오늘 저녁 반찬 뭐하지 정도다. 매일 같은 반찬을 내어놓으면 입이 까다로운 여자 세명이 성질낸다. 화를 내는 것은 아니고 내가 차린 밥을 무시해 버린다. 조용히 빵에 잼 발라 먹거나 컵라면 먹는다. 열심히 만든 음식이 무시당하면, 다음날 내가 남은 거 다 먹어야 한다.


스트레스가 적으니 쇼핑에 쓰는 돈도 자연스레 줄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아이들과 토 나올 정도로 시간을 많이 보내주니,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전혀 없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MBA까지 한 잘 생긴 아저씨가 세끼 밥 챙겨주고, 온라인 학습도 도와주고, 놀아도 준다. 심지어 기분 좋으면 용돈도 준다. 오히려 내가 돈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딸이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나 낳았으니 책임져야지!" (말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아내를 닮았음이 틀림없다.)   


글 쓴 지 7개월이 지나고 있다. 아직 버는 게 미천해서 대부분의 생활비는 아내의 월급으로 충당한다. 아내가 생활비를 풍족히 주지만 이상하게 아내가 번 돈은 마음껏 쓰기가 좀 그렇다. 불로소득이 아닌 아내의 스트레스와 교환해서 받은 돈인지라, 예전처럼 펑펑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최대한 아껴 쓴다.


회사 다닐 때 다니던 미용실이 있었다. 번쩍번쩍한 인테리어에다가 프랑스에서 공부한 헤어 디자이너 샘에게서 머리를 잘랐다. 조금 비싼 가격이지만, 한 달에 한번 내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비싼 돈 주고 머리를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살림을 살면서부터는 아내에게 머리를 부탁했다. 지난 주말에도 평소처럼 아내에게 머리를 부탁했다.  


"자기야, 나 머리 좀 깎아주세요~"

"네, 좋아요~"


아내는 내 머리 깎는 걸 이상하리 만치 좋아한다. 머리를 깎을 때면 머리카락이 옷에 묻지 않도록 팬티만 입고 의자에 다소곳이 앉는다. (나체로 가만히 앉아 있어서 좋아하는 것인가?) 머리 갂을 땐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다. 아내에게 말도 시키지 않는다. 아내가 집중력을 잃으면 내 머리에 고속도로가 생길지도 모른다. 흡사 전기톱과 같은 굉음을 내는 러시아제 이발기를 들고 있는 아내는 영화 미저리의 여주인공처럼 엷은 미소를 짓는다.   


"자기야, 고개 좀 밑으로 숙여봐요."

"자기야, 귀 좀 잡고 있어 봐요."


귀 주변을 손질할 때에는 이발기의 굉음이 바로 옆에서 들리기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나도 모르게 손과 발이 오므라든다. 그렇게 오른쪽 귀 주변을 다 손질할 때 즈음 이발기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음이 들리더니 삐비빅 소리를 마지막으로 멈춰버렸다. 아무리 전원을 다시 껐다가 켜도 한번 죽은 이발기는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럴 수가, 왼쪽 머리는 덥수룩 한데, 오른쪽 머리는 깔끔하잖아! 아수라 백작이 따로 없구나!'


아내는 이런 나의 애타는 마음도 모르고 머리 모양 웃기다면서 막 웃는다. 그리고, 돈 그만 아끼고 다시 미용실로 가라고 부추긴다. 머리 깎는 비용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머릿속을 갑자기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 깎는 비용이 너무 아깝다. 그 돈이면 평소 못 먹는 한우도 먹을 수 있다. 미국산, 호주산도 아닌 한우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 시대인지라 항시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에 날 알아보는 학부모님들도 없다. 그러니깐 머리 모양쯤 이상해도 괜찮다.


이발기를 다시 사자니, 너무 비싸서 아내에게 일단 눈썹 가위로 나머지 이상한 부위의 정리를 부탁했다. 아내가 조그마한 눈썹 가위로 열심히 삐뚤빼뚤한 곳을 정리해 주었다. 아내가 다 자르고 난 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이미지 출처 : https://newsyam.k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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