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여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자면 누구라도 캠핑을 꿈꾸게 된다. 지나가는 차마다 트레일러를 끌고 다닌다. 귀여운 2인용부터 웬만한 집 한 채는 돼 보이는 대가족용 트레일러까지. 뿐만 아니다. 차 지붕에 카누나 카약을 얹어서 달리는 차, 트렁크 뒤에 가족수대로 주렁주렁 자전거를 달고 달리는 차, 보트나 요트를 끌거나 싣고 다니는 차.
여름엔 다들 일은 안 하고 놀러만 다니나 싶어지는 광경이다. 하긴, 캐나다의 긴긴 겨울을 버티려면 이 환상적인 자연을 즐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가족 역시 캐나다에 온 첫 해에 텐트를 샀다. 남들처럼 트레일러는 못 끌어도, 텐트 하나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몇 년째 이곳저곳 캠핑의 재미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 캠핑의 재미라는 것이 한국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요즘 말로 '갬성'이 캠핑에도 자리를 잡으면서 그것이 캠핑의 또 다른 재미가 되어주는 듯하다. 캐나다에는 '갬성캠핑'이 없다. 캠핑용품부터 투박함 그 자체다. 앉을 수 있으면 의자고, 음식이 담기면 접시다. 한국처럼 요모조모 쓸모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캠핑용품은 찾기 어렵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캠핑장에서 설거지를 할 수 없다. 환경보호를 위해서지만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설거지물을 흘려보내면 그 음식 냄새가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을 유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캐나다 캠핑장 숲에는 곰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향이 나는 치약도, 물 한 컵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 (너구리나 곰은 절대 귀여운 동물이 아니므로!!)
만약 설거지를 하고 싶다면, 본인이 설거지통을 가져와야 한다. 설거지를 마친 그레이워터는 변기에 버려야 하기 때문에 세제는 생분해되는 것으로 소량을 사용해야 한다. 변기에 버릴 설거지물에는 당연히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접시에 묻은 음식물은 설거지 전에 깨끗이 닦아 쓰레기통에 따로 버려야 한다.
그러니 갬성 플레이팅이 웬 말인지. 이 복잡함이 번거로워서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품을 쓴다. 우리 가족도 그렇다. 평소에는 일회용품을 정말 지양하지만 일 년 중 캠핑 때만은 예외다. 대신 플라스틱 말고 퇴비화가 가능한 제품을 사용한다. 그런 제품은 오랫동안 음식을 담아놓으면 흐물흐물해지고, 누리끼리한 것이 갬성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가족이 찾은 최선의 방법이다. 이 좋은 자연을 즐기러 와서 동시에 자연을 헤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갬성캠핑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캐나다에 있는 캠핑장이 주립공원 안에 속해 있어 모든 사이트의 기본 세팅이 똑같기 때문이다. 나무로 된 피크닉 테이블과 낡고 오래된 파이어 핏. 그러니 캠핑의자와 텐트만 있으면 맛있는 음식도 해 먹을 수 있고, 불멍도 문제없다. 다른 특별한 장비나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캐나다 캠퍼들 중에는 트레일러 발을 세우는 사람은 있어도 ‘갬성 캠핑용품’ 발을 세우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다들 그냥 그저 그런 비슷한 모양새로 캠핑을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이 갬성 없는 투박한 캠핑이 딱 알맞다. 내게 캠핑은 오로지 공기 좋은 자연 속에서 쉼을 갖는 것.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캠핑에서 쉼을 갖는 것은 꽤 전략이 필요한 일이다. 알전구를 달고 예쁘게 플레이팅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짐을 늘리고 뒷정리를 감당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 부부는 쉼을 가지고, 아이들은 즐거울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편이다. 사이트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낡고 오래된 나무 테이블 위에 내가 좋아하는 빨간색 식탁보 하나를 까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추구하는 캠핑에 딱 맞는 노동의 정도이다.
캐나다 캠핑에 갬성은 없어도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가족이 아닐까. 대가족 단위의 캠퍼들이 참 많다. 한 곳에 오랫동안 트레일러를 정박해 놓고 이모네 식구도 왔다 가고, 삼촌네 식구도 왔다 간다. 그중엔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기도 있다. 엄마 아빠가 물놀이를 가면 할아버지가 아기를 보고, 다음 날은 또 다른 사람이 번갈아가며 아기를 본다. 해가 지면 그 낡고 오래된 파이어 핏에 대가족이 빙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마시멜로우도 구워 먹고. 캐나다에 가족이라고는 우리 네 식구뿐인 내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그러다 올해 여름, 캠핑장에서 정말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캠핑카를 보았다. 옛날 고무대야같이 붉그죽죽 한 색깔의 봉고차였다. 2층에 한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아주 낮고 좁은 공간을 만들어 개조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봉고차가 내게 그 어떤 갬성보다 더 갬성으로 다가온 것은 그 캠핑카의 주인 때문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 두 분이서 정말 단출한 물건들로, 느릿느릿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름답다는 것은 저런 거지. 갬성이란 저런 거지..!’ 나중에 우리 부부도 나이가 들면 장비 말고 사람으로, 사랑으로, 갬성 발 좀 세워봐야겠다. 캐나다 캠핑에 갬성은 없어도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