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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Aug 19. 2021

캐나다의 캠핑은 이런 것

캐나다의 여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자면 누구라도 캠핑을 꿈꾸게 된다. 지나가는 차마다 트레일러를 끌고 다닌다. 귀여운 2인용부터 웬만한 집 한 채는 돼 보이는 대가족용 트레일러까지. 뿐만 아니다. 차 지붕에 카누나 카약을 얹어서 달리는 차, 트렁크 뒤에 가족수대로 주렁주렁 자전거를 달고 달리는 차, 보트나 요트를 끌거나 싣고 다니는 차.


여름엔 다들 일은 안 하고 놀러만 다니나 싶어지는 광경이다. 하긴, 캐나다의 긴긴 겨울을 버티려면 이 환상적인 자연을 즐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가족 역시 캐나다에 온 첫 해에 텐트를 샀다. 남들처럼 트레일러는 못 끌어도, 텐트 하나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몇 년째 이곳저곳 캠핑의 재미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그 캠핑의 재미라는 것이 한국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요즘 말로 '갬성'이 캠핑에도 자리를 잡으면서 그것이 캠핑의 또 다른 재미가 되어주는 듯하다. 캐나다에는 '갬성캠핑'이 없다. 캠핑용품부터 투박함 그 자체다. 앉을 수 있으면 의자고, 음식이 담기면 접시다. 한국처럼 요모조모 쓸모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캠핑용품은 찾기 어렵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로는 캠핑장에서 설거지를 할 수 없다. 환경보호를 위해서지만 안전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설거지물을 흘려보내면 그 음식 냄새가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을 유인하기 때문이다. 특히 캐나다 캠핑장 숲에는 곰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는 향이 나는 치약도, 물 한 컵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 (너구리나 곰은 절대 귀여운 동물이 아니므로!!)


캠핑장 근처 곰이 출현한 시간과 장소를 적어 둔 메모판 @캐사사


만약 설거지를 하고 싶다면, 본인이 설거지통을 가져와야 한다. 설거지를 마친 그레이워터는 변기에 버려야 하기 때문에 세제는 생분해되는 것으로 소량을 사용해야 한다. 변기에 버릴 설거지물에는 당연히 음식물 찌꺼기가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접시에 묻은 음식물은 설거지 전에 깨끗이 닦아 쓰레기통에 따로 버려야 한다.


그러니 갬성 플레이팅이 웬 말인지. 이 복잡함이 번거로워서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품을 쓴다. 우리 가족도 그렇다. 평소에는 일회용품을 정말 지양하지만 일 년 중 캠핑 때만은 예외다. 대신 플라스틱 말고 퇴비화가 가능한  제품을 사용한다. 그런 제품은 오랫동안 음식을 담아놓으면 흐물흐물해지고, 누리끼리한 것이 갬성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가족이 찾은 최선의 방법이다. 이 좋은 자연을 즐기러 와서 동시에 자연을 헤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갬성캠핑이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캐나다에 있는 캠핑장이 주립공원 안에 속해 있어 모든 사이트의 기본 세팅이 똑같기 때문이다. 나무로 된 피크닉 테이블과 낡고 오래된 파이어 핏. 그러니 캠핑의자와 텐트만 있으면 맛있는 음식도 해 먹을 수 있고, 불멍도 문제없다. 다른 특별한 장비나 준비물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캐나다 캠퍼들 중에는 트레일러 발을 세우는 사람은 있어도 ‘갬성 캠핑용품’ 발을 세우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다들 그냥 그저 그런 비슷한 모양새로 캠핑을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 부부에게는 이 갬성 없는 투박한 캠핑이 딱 알맞다. 내게 캠핑은 오로지 공기 좋은 자연 속에서 쉼을 갖는 것.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캠핑에서 쉼을 갖는 것은 꽤 전략이 필요한 일이다. 알전구를 달고 예쁘게 플레이팅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짐을 늘리고 뒷정리를 감당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 부부는 쉼을 가지고, 아이들은 즐거울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편이다. 사이트마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낡고 오래된 나무 테이블 위에 내가 좋아하는 빨간색 식탁보 하나를 까는 것. 그 정도가 내가 추구하는 캠핑에 딱 맞는 노동의 정도이다.


식사 준비 하는동안 함께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종알종알 수다 중인 자매. 수다를 떨 수 있을만큼 자랐다는 것이 감동..!


캐나다 캠핑에 갬성은 없어도 빠질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가족이 아닐까. 대가족 단위의 캠퍼들이 참 많다. 한 곳에 오랫동안 트레일러를 정박해 놓고 이모네 식구도 왔다 가고, 삼촌네 식구도 왔다 간다. 그중엔 걷지도 못하는 어린 아기도 있다. 엄마 아빠가 물놀이를 가면 할아버지가 아기를 보고, 다음 날은 또 다른 사람이 번갈아가며 아기를 본다. 해가 지면 그 낡고 오래된 파이어 핏에 대가족이 빙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마시멜로우도 구워 먹고. 캐나다에 가족이라고는 우리 네 식구뿐인 내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그러다 올해 여름, 캠핑장에서 정말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캠핑카를 보았다. 옛날 고무대야같이 붉그죽죽 한 색깔의 봉고차였다. 2층에 한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아주 낮고 좁은 공간을 만들어 개조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봉고차가 내게 그 어떤 갬성보다 더 갬성으로 다가온 것은 그 캠핑카의 주인 때문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 두 분이서 정말 단출한 물건들로, 느릿느릿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아름답다는 것은 저런 거지. 갬성이란 저런 거지..!’ 나중에 우리 부부도 나이가 들면 장비 말고 사람으로, 사랑으로, 갬성 발 좀 세워봐야겠다. 캐나다 캠핑에 갬성은 없어도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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