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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Jan 19. 2021

투폰 말고 노폰(No-phone number) 교사

얼마 전, 한국 교사 지인이 물었다.


"캐나다 학부모들은 선생님이랑 어떻게 연락 해?"

"쪽지로 하는데. 왜?"

"아, 뭐 메신저 쪽지 같은 거?"

"아니, 진짜 쪽지. 종이에 써서 아이 편에 보내지. 알림장에 쓰던지."

"야ㅠㅠ 대박이다. 나 작년부터 투폰 쓰거든."


투폰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왜 투폰을 쓰는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전화번호 하나가 개인의 사생활을 담아내는 세상이니까. 전화번호를 저장만 하면 누구에게나 나를 친구로 추천해주고, 프로필 사진도 공개된다. 퇴근 이후에 업무상 이유로 울리는 전화벨이 반가울 리 없다. 주말이나 밤늦은 시간에 학생이나 학부모의 연락을 받아야 하는 일도 자주 있다. 투폰은 프라이버시 마지노선만은 지키고 싶은 교사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캐나다 교사와 학부모는 서로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물론 학기 초에 비상 연락처를 수집하지만 교사가 아닌 학교 차원에서 관리한다. 학생의 전화번호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성인인 교사가 미성년자인 학생의 번호를 수집하는 것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행동이다. 학생이든 학부모에게든, 개인 전화번호를 고지하는 교사는 아무도 없다.


대신 글로 소통한다. 학부모가 교사에게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어젠다(Agenda)라고 불리는 알림장에 써 둔다. 교사는 그 밑에 답장을 쓰고 아이 편에 집으로 보낸다. 조퇴나 결석, 빠뜨린 준비물 전달처럼 즉각적인 연락이 필요한 사항은 학교 오피스에 전화를 걸어 비서에게 전달한다. 긴 이야기가 필요할 때는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 혹은 대면상담을 요청할 수도 있다. 요즘에는 학급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그 안에서 소통하기도 한다.


작년 말, 충남교육청에서 교사에게 투폰, 투넘버를 지원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주말이나 밤늦은 시간에 불필요하게 걸려오는 항의 전화, 폭언과 폭설, 성희롱 등 학부모로 인한 교권침해를 막기 위함이라 했다. 교사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감사한 일이나 조금 의아했다. 너무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교육 예산이 소비되어야 할 만큼 핸드폰 번호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까? 핸드폰 번호 때문에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면 투폰이 아니라 노폰(No-phone number)을 장려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핸드폰 말고도 교사와 학부모가 소통할 수 있는 경로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알림장, 메신저, 이메일. 물론 모든 학부모가 메신저나 이메일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럴 때는 9시부터 5시까지 언제나 오픈되어 있는 학교 교무실 전화가 있다. 근무 중에는 어차피 수업 중일 교사의 개인 핸드폰 번호가 필요할 이유가 전혀 없다.


캐나다에서 자녀의 담임교사 핸드폰 번호를 모르고 지낸 지 벌써 3년 차다. 교사가 선택하고 안내한 방식대로 1년은 학급 메신저로, 2년은 메일로 소통했다. 전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더 자주, 더 편하게 소통하고 있다. 메신저나 이메일은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통화에 비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덜 하기 때문이다. 충남교육청에서 투폰과 함께 통화 녹음도 지원한다고 하던데, 메일은 녹음할 필요도 없다. 보내는 순간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는다. 말로 하는 전화보다 글로 쓰는 메일은 감정을 조절하고 예절을 갖추기도 쉽다.


업무 시간 외 교권 침해가 심각해서 소중한 교육예산을 들여 투폰, 투넘버에 통화 녹음까지 교육청에서 지원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낭비되는 예산도 예산이지만, 투폰, 투넘버를 가져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다. 디지털 단식,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나 있는 핸드폰도 피곤하다고 느끼는 사회 아닌가? 투폰 말고 노폰(No-Phone number) 하자. 그래도 아무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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