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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Jan 14. 2021

교사가 함께 일하고 싶은 교장

한국 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선비'라고 불리던 교감 선생님이 계셨다. 학교 안에서나, 회식에서나 늘 단정하고 청렴하셨다. 누구에게도 권력을 내세우지 않으셨다. 누가 보아도 깨끗하고 점잖으신 분. 함께 일하는 동교 교사들 모두 '우리 교감 선생님 정도면 양반이고 선비지.' 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만난 교장 중에 두 명은 지금까지 만난 교감, 교장과는 느낌이 달랐다. '훌륭한 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 교장은 내가 밴쿠버로 파견 갔을 때 출근하던 학교의 교장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던 어느 날, 교사휴게실에서 어떤 교사와 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교사의 자녀가 학교에서 발표회 같은 걸 하는 모양이었다. 그 발표회를 가려면 연가를 내거나 외출 혹은 조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그 교장이 교사에게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You don't miss an important moment in your life that will never come back."

(인생에서 다신 돌아오지 않을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마.)


그녀는 교사 인생의 행복도 중요하게 생각해 주는 리더였다. 사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한국에서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나라 교직문화는 다소 안전지향적인 편이다. 불리한 여론 때문인지, 사회로부터 높은 사명감을 기대받는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누구도 교사 개인을 대변해주거나 책임져 줄 수 없는 교육 공무원 조직의 특성 때문인지, 되도록이면 변화와 갈등을 피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교사의 희생이 당연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연가는 고사하고, '학생들을 방치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하는 학교의 우려 때문에 학기 중에는 조퇴 한 번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교직 문화에서도 교사의 개인사를 존중해주고 그 행복을 응원해주는 리더십이 나올 수 있을까? 연가나 조퇴 여부를 떠나, 그런 리더와 함께 일한다면 인간적으로 존중받으며 근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왼쪽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교장. 손이 많이 가는 유치원 수업을 도와주고 있다..


두 번째 교장은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장이었다. 학교 트위터에 산타 앞치마를 맨 교장 사진이 올라왔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전 교직원에게 커피와 도넛을 샀단다. 직접 카트를 끌고 돌아다니며 커피를 따라주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리더가 직접 카트를 끌며 나눠주는 커피와 도넛은 수고에 대한 인정이고 격려다. 커피 한 잔은 정말 별 것 아니지만, 리더의 인정은 큰 동기부여가 된다. 나는 학부모일 뿐인데도 그런 교장에게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행복한 학교, 행복한 교사의 혜택이 고스란히 학생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다니는 학교의 리더가 내 딸을 가르치는 교사의 수고를 알아준다는 것이 참 고맙고 든든했다.


교사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과에 따른 보상이 뚜렷하게 주어지지 않는 직업이다. 높은 도덕성과 사명감을 기대받는 탓에, 나는 학교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것 같은데도 정작 사회에서는 칭찬보다 욕만 얻어먹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를 알아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고픈가 보다. 내 인생의 행복을 응원해주고,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는 리더가 학교에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그거 하나면 매일 아침, 좀 더 가뿐한 마음으로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행복한 얼굴로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사들에게 커피와 도넛을 나눠주고 있는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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