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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빈 Jul 18. 2023

밥을 먹을 수 있는 방법

질문을 던져라

언론홍보의 주 업무는 남들이 유일하게 쉬는 '점심시간'에 이뤄진다. 기자들과 만나 밥을 먹으며 소통하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 사람마다 다른데 난 기본적으로 점심에 밥을 잘 못 먹는다. 단 5초의 정적도 견디기 힘들고 만약 정적이 흐르면 '그래 내가 일하러 나왔지 밥 먹으러 나왔나'란 생각에 숟가락을 놓고 대화를 시도한다. 미팅이 끝나면 간단히 또 뭔가를 먹는 한이 있어도.


그런데 정말 메뉴가 탐 날 때가 있다. 혹은 그날은 너무 배가 고파 '계속 먹고 싶다'는 욕구가 강할 때가 있다. 


오늘은 5초의 정적도 허용치 않으면서 적절히 밥 한 술 뜰 수 있는 기법(?)에 대해 풀어보려 한다.


첫 만나는 어색한 사이일 때. 아이스브레이킹으로 꺼내는 소스 몇 가지.


인사가 늦었다. 그간 이런저런 이슈때문에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경쟁사 담당자들은 만나 봤냐. 

-> 인트로로 적당한 소스들. 아직 메뉴가 나오기 전, 간단히 서로에 대해 탐색하는 시간. 저걸로 대략 15분 정도는 뺄 수 있다.


업계 주된 이슈에 대해 먼저 설명. 우리 회사는 이렇게 대처하고 강조하는 부분은 이렇다. 

-> 음식 나오고 상대가 밥을 먹을 때 간간이 뱉어줄 말들. 저 중에 관심있는 화제가 나온다면 상대방이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기 시작. 그럴 때가 밥 한 술 뜰 수 있는 기회. 


여기서 포인트는 선배려 후식사다. 초반엔 상대방이 메뉴에 집중할 때라 내가 판을 깔아야 한다. 넌 먹어라, 난 떠들테니... 대개 남자 기자들이 빨리 먹는 편이기 때문에 약 15분만 집중해서 떠들면 된다. 우리 회사 자랑만 겁나게 하고 가끔 업계 짜리시들을 하나 둘 던지면 된다. 아직은 상대가 식사에 더 집중할 때다. 우린 모두 배고프니까. 넌 떠들어라, 난 먹을테니 모드다.


자, 상대 식사가 끝났다. 이제 내가 먹을 차롄데, 나 혼자 먹고 상대방이 뻘쭘하게 앉아있는 모양새가 좀 그렇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씩 던진다. 


여름휴가 어디 가세요? -> 블라블라~ -> 나는 식사

지금 업계 현황이 좀 어때요? 우린 이런 거 강조해서 기획기사 나갔음 좋겠는데 다른 데는 어떤 지 잘 모르겠어서요~ -> 블라블라~ -> 나는 식사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들이 맘 놓고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을 주면서, 난 경청하는(사실 밥에 집중) 자세를 보이는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질 것이다. 



만약 1:1이 아니라 2:2나 5명 이상 모이는 그룹형이다, 여기서 내가 팀장으로서 대화를 주도해야 하는 압박감이 있다, 이럴 경우엔 정말 다양한 소스를 준비해 가야 한다. 그들은 미팅을 통해 업계 현황을 듣고 싶은 것이 물론 우선적 목표겠지만, 상대방에 대한 탐색, 얘가 나랑 결이 맞는지 계속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도 들어간다. 아니면 사실 걍 맛난 밥이나 술에만 집중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됐든 노트북들고 미팅하는 자리가 아니고 '밥'과 함께하는 미팅이기 때문에 좀 유~한 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일 얘기 35/잡 얘기 65가 경험상 가장 적당한 것 같다.


난 그래서 TV를 많이 본다(응?). 신규 프로그램, 릴스/숏츠 유행하는 거, OTT에서 뜨는 콘텐츠, 장르별 영화 유명한 것들...웬만하면 다 챙겨본다. 물론 다 볼 수 없으니 썸머리 유튜브나 기사로 학습한다. 그럼 수많은 프로 중 적어도 한 두개는 얻어 걸린다. '어 저도 그거 보는데, 00 너무 웃기지 않아요?'라는 코드가.


유통은 말할 것도 없고, IT나 금융 담당이라 해도 단순히 예능 콘텐츠만으로도 업계 얘기까지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다. 어떻게? 좀 극단적 예를 들어 본다면.


범죄도시 3 보셨어요? -> 이번에도 천만 넘었지만 손익분기점이... -> 요즘 영화 손익분기점 넘긴 게 00 외엔 없다는 평균치가 -> 근데 이게 OTT랑도 같이 산출해야 하는 시대 -> 요즘 OTT에서 넷플이 1위지만 00이 더 치고 올라오는데 그 이유가... -> 그래서 넷플이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사업까지 벌이는데... -> 이런거 보면 오프-온라-오프 이런 구조가 여전히 현 시대상황을 잘 반영하는..


마동석 얘기에서 OTT 산업까지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는 뼈대다. 그래서 홍보인의 자질 중 하나가 잡학다식이다. 걍 이것저것 다 알고 있음 좋다. 그렇다고 우주생명체와 화성에 인간이 언제 갈 수 있냐 등의 심오한 얘기까지 알 필요는 없다. 관심도 없다. 누구나 아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Z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잡학이 필요하다.


팁 하나 더. 오늘 비가 온다? 점심메뉴가 회거나 전(술과 곁들임)집이다. 뭐 이렇다면 대개 아이스브레이킹으로 '비 올 때 왜 회가 안 좋다는지 아세요?' 라거나 '소주/막걸리의 기원이 뭔지 아세요?' 라거나 '이 집 사장님이 ~인데 여기 유명해진 이유가..' 이런 잡학을 미리 준비해가도 좋다. 내 말을 잘 들어주면서, 나를 재밌게 해주는 사람... 싫어할 사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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