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유를 못해서 그런가?
육아휴직은 2년으로 계획했다. 일찍 결혼한 친구가 "엄마가 3년은 아기를 키워야 사춘기 때 당당할 수 있다." 라고 했다. 엄마가 키워야 무난한 사춘기를 보낼 수 있다는 말, 사실은 근거가 없을 수 있지만 왠지 믿음이 갔다. 기관에 보내지 않고 2년은 키우고 싶었다. 3년은, 가정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먼 곳으로 발령이 나서 휴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어릴 때 주말부부는 어려울 것 같아 내린 결론이었다. 울며겨자먹기로 아기의 돌이 지나자 복직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육아시간이란 것은 없었다. 8시경에 출근을 하고 5시까지, 아이를 보기는 어려웠다. 아기는 괜찮을 텐데... 엄마인 나는 왜그리 아이가 보고싶었을까? 내 안에 꿈틀거리는 분리불안을 경험했다. 단유를 하지 않은 상태여서 퇴근하자마자 수유를 했다. 숨가프게 먹는 아기를 보노라면 또 얼마나 미안하던지. 밤 늦도록 살을 맞대며 놀아주었다. 두 남자가 나만을 기다리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는 했다. 부담을 넘어선 강한 모성은 피로감도 잊게 했다.
남편은 1년 휴직을 했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고 아빠가 육아를 하는 것도 큰 축복이었다. 그러나 3개월이나 지났을까? 남편은 복직을 하겠다고 했다. 육아 보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겠노라고. 그러나 직장에서는 이미 1년 휴직을 신청했기에 중간 복직은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전만이라도 아기를 기관에 보내길 원했다. 육아휴직중인데 아기를 기관에 보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나는 매우 강경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했나 싶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리 결정할 것 같다.
아이는 아빠와 오전에는 문화센터를 갔다. 엄마들 틈에 낀 유일한 아빠, 그 당시만 해도 생경한 상황이었으나 지금 생각하면 흐뭇해진다. 남편은 그 1년동안 아이와 더욱 친해졌고, 육아의 어려움을 백번 이해해서 이후에도 함께 육아를 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서툰 육아에 잠은 흔들리는 차에서 재웠으며, 나 몰래 영상을 보여줬다고 했다. 영상 보는 것 보다 기관에 가는 게 낳았으려나 후. 기관을 늦게 가다보니 떨어지는 것이 더 힘들어서 발버둥을 치는 아이를 울며 보내기도 했더랬다.
남편이 그렇게 꼬박 1년을 고분분투 하는 동안 나 또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매우 힘들었다. 몸은 직장에 있지만 두고온 아이 생각에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퇴근하자 마자 보고싶었던 아이와 못다한 시간을 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때로는 동료들과 편안하게 차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와 일에서 오는 성취감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워킹맘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오롯히 육아만 할 때는 일을 하고 싶더니 막상 일을 하고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아이만 보더 그 때가 참 아름답게 추억이 되었다.
꼬박 2년 동안 집 육아를 한 덕분에 아이는 서서 걸으며 몇 마디 단어를 구사할 수 있을 때에 어린이집에 갔다. 다들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 육아휴직을 많이 하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과감히 패스할 수 있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골고루 받고 자라며 1학년 때에도 무난하게 학교에 적응했고 휴대폰을 쥐어주지 않아도, 물론 학교의 콜렉트콜로 전화를 하곤했지만 스스로 학원과 집을 오갔다. 남편도 다시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후배 동료들이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면 마음껏 축복해준다. '뭐가 중헌디.' 비록 월급이 반토막, 아니 거의 없어져도 아이와의 시간과 어찌 바꿀까? 엄마, 아빠를 매우 필요로 하는 그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 그것은 돈을 주고도 바꿀 수 없지 않을까? 육아휴직을 하면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는 것을 몸소 경험했지만 다시 돌아가면 꼭 2년을 하고 말았을테다. 나는 비록 분리불안을 겪었지만 아이는 아빠와 함께 였기에 안정감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열 살 아들, 요즘도 나에게 집착하는 거 보면... 사랑이 고픈가? 사랑은 양 보다 질이라고. 분명 퇴근하고 엄청 놀아줬는데 왜그럴까? 하하하.
다음 편엔 유아기 열혈맘, 나도 천재를 낳은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