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재를 낳았나?
빠르면 12개월이면 걷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15개월이면 대부분 잘 걷는다. 나의 아이는 17개월이 되어도 걷지 않았다. 늦깍이 초보맘이었던 나는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네 발로 엄청 잘 기어다녔기 때문이다. 그의 엄지발가락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하셨단다.
'설마... 걷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하고 말이다. 아뿔싸.
아이가 엄마의 손을 놓고 혼자 섰을 때, 환호했다. 엄마 보다 '아빠'를 먼저했다. 단어를 말할 즈음,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럴 수도. 남편은 유일하게 '아빠'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하기도 했다. 어쨌든, 첫 단어가 엄마가 아니었어도 아이가 단어만 말했을 뿐이지만, 부모는 기적을 본다. 그러면서 슬 착각하기 시작한다.
'설마... 내가 천재를 낳았나? 하고 말이다. 아뿔사.
온갖 한글책과 영어책을 읽어주었다. 온갖 장소를 데려갔다. 돌을 제주에서, 두돌은 오키나와, 세돌은 괌이었다. 오키나와에서 본 돌고래는 지금도 기억한다. 괌에서 본 마술공연도 잊지 못한단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라 아이가 자동차에 퍽 관심을 가져서 자동차로 학습을 하기도 했다. 자동차는 숫자와 한글, 영어를 배우기에 최적의 물건이었다. 번호판은 숫자를. 옛날 번호판엔 한글도 있었다. 또한 자동차의 브랜드는 영어를.
gym보리라고 아이들 통합놀이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당시 과한 사교육이었다 생각이 들지만. 더 많은 자극을 주고 싶었기에 아낌없이 지원하고 싶었다. 도서관 프로그램을 검색해서 6~7세를 위한 미술활동에도 매주 토요일에 참여를 했다. 종종 미술관, 박물관엘 갔고 좋은 공연이 있으면 서울이라도 달려가 함께 했다. 7세 때에는 주 2회 수영학원과 미술학원을 보냈다.
어린이집에 간 아이가 3세였나? 4세였을 때였다.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을 친구들에게 설명했나보다. 그걸 들으신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매우 똑똑하다고 말씀하셨다. 드디어 나 아닌 타인에게 인정을 받다니. 정말 아이가 똑똑한가?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는 뭐든 잘 한다고 칭찬해주셨는데... 아이가 1월생이라 그러기도 했고, 칭찬을 후하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엄마들이 가장 열정적일 때가 자녀가 유아기 때인 것 같다. 마치 고1 때, 모두 서울대를 꿈 꾸는 것 처럼. 고2가 되면 '인 서울'을 계획한다. 고3이 되는 순간, 국립대나 공립대... 아니 4년제 대학만이라도 하며 현실을 깨닫는다. 나도 그 현실을 7세에 깨달았다. 우리 아이는 4세... 아니 5세가 되면 읽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열혈맘이었는데... 아이가 학교를 가자 현실로 돌아왔다.
아이가 변한 게 아니다. 내가 변한 것이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바랐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갈수록 기대가 커지는 지. 더 더 더를 외치기만 했다. 17개월까지 걷지 않아도 무디었던 그 마음, 기는 아이의 엄지발가락을 보며 대견했던 그 마음이 변했다. 무조건 사랑스러웠는데... 자꾸 다른 또래 아이들과 비교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말았다.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아름다운 사람 -나태주-
아름다운 사람
눈을 둘 곳이 없다
바라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니 바라볼 수도 없고
그저 눈이
부시기만 한 사람
너의 속도를,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련다. 오늘도. 내일도. 나의 입술과 나의 마음이 너의 무궁한 미래를 보지 못하여 네게 상처 주지 않기를 바란다. 너를 향한 나의 입술이 늘 미소를 머금고, 나의 마음이 늘 뜨겁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