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센터 입문

6개월

by 다정한

1월에 출산을 하고 창밖으로만 세상을 보았다. 그 조그만 아기를 데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0일을 지나고 비로소 아기를 없고 문 밖을 나갔다. 그때가 따뜻한 4월이었다. 유난히 아름다운 봄, 아이에게 꽃을 보여주고, 나무를 가리키며 어떤 색인지, 어떤 품종인지 재잘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봄의 기운을 받아 용기를 내었다. 9월부터는 문화센터로!


아기를 위한 프로그램 하나와 나를 위한 프로그램 하나. 이렇게 공평하게 두 개를 신청했다. 6개월 이상의 아기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을 위한 오감놀이라고 해서 아이들도 노래를 듣고, 악기를 만지며 나름의 시간을 보낸다. 사실 이 또한 엄마를 위한 것일 수 있겠다. 다른 아기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육아의 외로움과 지루함은 문화센터에 감으로써 다소 해소가 되었다. 또한 나를 위한 캘리그래피도 설레는 시간이었다. 하얀 화선지에 먹으로 예쁜 글을 쓰는 일. 물론 나는 주로 아기를 업고 있었다. 아기를 위한 프로그램이 끝난 뒤라 아기는 주로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에 아기가 무거운지도 몰랐다. 사실, 무거울 시기는 아니다.


아기가 잠을 자지 않는 시간에는 아기도 똑같이 수강생이 된다. 캘리그래피 강사님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엄마가 그리는 것을 본다. 울면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잠깐 밖에 나갔다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함께 하는 수강생들의 배려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하고, 전시회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전시회 작품은 사진 또는 그림에 자신이 가장 쓰고 싶은 문구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나여서 좋다. 너라서 고맙다.'라고 쓰고 아이의 100일 사진을 넣었다. 나는 출산을 하고 비로소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오롯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나의 몸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 매우 신비했고 감사했다. 그것은 어느덧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늘 부족하기만 한 것 같은 나였는데. 늘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는데. 정체된 듯한 육아의 시간 속에서 사실 나는 새로 태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기대가 K장녀인 내게 늘 무겁기만 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큰 사랑이었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너무 늦게 알았던 것이다. '나'라는 생명도 사실 어마어마하게 소중하고 귀했다는 것을.

캘리그래피.jpg

다음은 복직 그리고 분리불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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