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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코다테와 노보리베츠 사이

2025년 3월 홋카이도 여행 2일 차

by 조아

이번 홋카이도 여행의 첫날은 하코다테 로프웨이를 이용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매우 단순하고 순조로웠다. 하코다테 로프웨이는 늘 하코다테에 올 때마다 이용했기에 강풍이 불면 종종 운행을 안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필 이때 강풍으로 이용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Y에게 세계 3대 야경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지난 여행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도 아쉬웠는데 Y는 얼마나 아쉬웠을지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세계 3대 야경인 하코다테의 밤을 이곳에 왔다면 꼭 봐야 한다고 바람만 잔뜩 불어놓은 격이라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안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신 로프웨이를 타는 비용으로 징기스칸 다이코쿠 하코다테 고료가쿠점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은 셈 치면 모두에게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빠듯한 일정으로 공항에서 점심도 거른 체 출발하느라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숙소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이 숙소는 하코다테에서 처음 묵는 숙소로 온천 거리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동안 하코다테를 방문할 때는 하코다테 유노카와 온센 유미 투 아카리 리조트에서 묵었기에 지나가며 몇 번 보았던 곳이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숙소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투숙객도 몇 명 없어 더욱 좋았다.


다다미 방이라 바닥에서 자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올해의 첫 홋카이도 여행으로 긴장했던 몸이 뜨거운 온천욕으로 풀어지며 금방 잠들었다. 여행 총책임자이신 선배님께 오늘의 일정은 어제 자기 전 미리 확인했는데 9시 고료가쿠 공원 방문부터 시작한다고 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지난 여행부터 오타루, 하코다테, 아사히카와 동네 한 바퀴 달리기 콘셉트로 여행 중 달리기를 했기에 이번에도 가능하다면 여행지에서 달리기를 하고 싶었다. 대신 지난번처럼 5km 내외의 짧은 거리를 달리는 것보다 10km 정도 달리면서 숙소 주변을 더 많이 눈으로 보고 담고 싶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달릴 준비를 하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여벌의 옷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어제 입은 반팔티 위에 윈드스토퍼만 입고 달렸다. 러닝화도 없어서 신고 온 에어포스 1 하이를 신고 달려야 했는데 러닝화가 없다는 것은 달리기를 할 때 그 어떤 핑계가 되지 않았다. 달리고 싶은 욕망을 가득 품고 한 시간 여를 달렸고 약속한 아침 온천 시간은 8시에 맞춰 방으로 들어갔다. 달리기로 뭉친 근육을 온천욕을 하며 풀어주고 오늘의 일정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숙소의 대욕장은 크기는 작았지만 노천탕이 잘 만들어져 있었고 우리들만 있어 여유롭게 즐기기 좋았다.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는 하코다테에서 고료가쿠 공원과 제비오, 츠타야 서점을 구경하고 오후에 노보리베츠로 가는 코스가 어제보다 거리상으로도 시간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숙소에서 고료카쿠 공원도 가까워 9시에 출발에 금세 공원 옆 주차장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고료카카 타워에 올랐다. 별모양이라 별공원이라고 불리는 고료가쿠 공원은 개항 전 요새로 사용되다가 이제는 하코다테 사람들이 휴식과 산책을 하는 곳이 되었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벚나무를 보며 벚꽃이 피었을 때 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이번에도 들었다. 타워에 올라 공원 주변을 보며 아침을 먹기 위해 고료가쿠 공원 옆 ‘럭키 삐에로’라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럭키 삐에로 고료가쿠코엔마에점으로 ‘럭키 삐에로’라는 브랜드는 하코다테에만 있는 패스트푸드 체인이다. 외관이나 내부 인테리어는 살짝 B급 감성을 불러오지만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창의적인 발상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차이니즈 치킨버거 세트를 주문했는데 탄산음료가 아닌 우롱차가 나오는 특이한 메뉴이다. 하코다테 사람들이 차이치키라고 부르는 이 메뉴는 햄버거의 번은 부드러워 먹기 편하며 매콤 달콤한 소스가 있는 가라아게가 3개나 들어 있어 푸짐하게 한 입 베어 먹을 수 있다. 머그컵에 담겨 있는 럭키포테이토는 사이드 주문 인기 1위 메뉴로 큼직한 사이즈에 미트, 화이트소스, 치즈가 섞여 있어 한국에서 먹었던 감자튀김과는 다른 독특한 맛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지만 햄버거, 감자튀김과 어울리지 않는 우롱차의 아쉬움을 근처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 마시고 배드민턴 용품과 러닝화 구매를 위해 Super sports Xebio로 향했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하코다테에 오는 이유가 다분히 있을 정도로 다양한 스포츠 용품이 있는 곳은 우리에겐 쇼핑의 성지이다. 선배님과 Y는 배드민턴 용품 코너로 나는 러닝화 코너에서 각자의 쇼핑 시간을 보냈다. 하코다테 동네 한 바퀴를 할 때 에어포스 1을 신고 달려서 그런지 발바닥에 물집이 조금 잡혀 있어 한국에서 품절 대란이 일어난 아식스 노바블라스트 5를 구매했다.


한국보다 가격이 6천 원 정도 비쌌지만 한국에서는 품절이라 구매할 수 없고 면세 혜택까지 받으면 그렇게 가격 차이가 안 난다고 느껴 고민 없이 구매했다. 다만 ‘푸마’라는 브랜드에 대한 편견을 깬 나이트로 모델을 신어본 경험은 노바블라스트 5 사이에서 잠시 고민을 하게 만들었지만 나이트로 모델 가격을 보고 아식스 노바블라스트 5를 구매했다. 처음 신어보는 아식스 러닝화는 달리기를 하기 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주변의 평가 때문에 늘 신어보고 싶었지만 한국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온라인 매장만 운영하는 아식스의 정책 때문에 착화해 보기 어려워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었다.



선배님과 Y는 마음에 드는 배드민턴 용품이 없었는지 생각보다 일찍 내가 있는 러닝화 코너로 왔고 한국보다 저렴한 아미노 젤까지 구매한 후 츠타야 서점으로 갔다. 항상 후문으로 들어가다 이번에는 정문 주차장으로 들어와 조금 어색했지만 드넓은 츠타야 서점을 구경하고 1층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막간의 여유를 즐겼다. 아직 하코다테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았지만 벚꽃 에디션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코다테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즐겼고 서점을 나와 차를 타고 오후의 일정을 위해 노보리베츠로 향했다.




노보리베츠는 홋카이도 온천의 성지로 지옥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항상 밤 9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도착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오후 3시에 도착하여 다이이치 타키모토칸에서 체크인을 한 후작년 5월 가족 여행 때 먹었던 환상의 수프커리집, ‘도산코 프린’이란 식당으로 향했다. 삿포로 시에서 몇 번 수프커리를 먹었지만 내가 먹어 본 수프커리 중 가장 맛있는 집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환상의 맛이라 함께 먹고 싶었다. 디저트로 푸딩도 먹을 수 있어 아이도 좋아했던 곳이라 고민 없이 추천했고 선배님과 Y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맛있게 먹으니 더 좋았다. 특히 온센 에그 푸딩은 반숙 계란이라 비릴 줄 알았는데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라 깜짝 놀랐다.


수프커리를 먹은 후 노보리베츠의 상징인 지옥계곡으로 향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 30주년 기념작, <라플라스의 마녀>에서 나오는 황화수소 냄새가 가득한 이곳은 언제라도 유황 온천수가 넘칠 것 같다. 계란 노른자 썩는 냄새가 풍기는 지옥계곡은 최근 보수 공사를 했는지 이동하기 편했고 언제 와도 변함없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동절기라 오유누마 연못을 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지옥계곡에서 한가로이 노는 사슴 무리를 보며 이곳의 깨끗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옥계곡을 구경한 후 숙소로 돌아와 홋카이도 최고의 온천을 즐겼다.


다이이치 타키모토칸은 노보리베츠를 방문할 때마다 묵는 숙소로 대욕장이 정말 크고 다양한 탕이 있어 온천욕을 즐기기 최고의 명소이다. 호텔 규모도 커서 밖을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부대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어서 가격이 비싸서 그렇지 가족여행을 할 때 묵으면 좋은 곳이다. 특히 대욕장 아래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수영장이 있어 인기만점이다. 개인적으로 수영장보다 더 좋은 곳은 노천탕인데 머리는 차갑고 몸은 뜨거운 상태로 지옥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유황 가스를 보며 온천욕을 즐기는 최고의 매력이라 자부한다.


처음 묵는 서관은 대욕장과 가까워 1일 2 온천을 하기 너무 편했고 다다미방의 어색함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온천욕으로 나른해진 몸을 이불속에 누이며 둘째 날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내일은 홋카이도 동북부 지역의 관문인 아사히카와로 향한다. 처음 가보는 대설산 국립공원도 궁금하기도 하지만 Y에게 온통 하얀 눈으로 가득한 비에이를 보여줄 생각에 조금 설렌다. 홋카이도 여행이 처음인 Y도 나름 만족하는 눈치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고 노보리베츠의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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